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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oSAC Feb 24. 2020

거식증 사회와 착한 사마리아인 Part.2

<- 이전 글 Part. 1 https://brunch.co.kr/@kosac/16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는 직접적인 소통과 관계 맺음을 통해 낯선 사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적대감이 안도와 친밀감으로 반전되는 경험을 한다. 그러한 경험 이후에는 오히려 그 낯선 사람을, 나와 다르기 때문에 매력적이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기 때문에 내 지식의 지평을 넓혀주며, 나와 다른 것을 추구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그렇다면 낯선 사람과의 직접적인 소통이 폐쇄적 사회성의 문제에 대한 처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방인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가 착한 사마리아인일 수 있으니. 하지만 만약 그가 착한 사마리아인 아니라면? 혹시라도 선한 미소 뒤에 내 등에 꽂을 비수를 감추고 있는 것이라면? 거식증 사회니 폐쇄적 사회성이니 그런 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이 사회가 어떻게 되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람? 설령 문제가 있다 해도, 그건 내가 감당할 이유도 없고 내 책임은 더더욱 아닌데, 뭣하러 내가 위험을 무릅써야 하는가? 안전에 대한 욕구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 욕구인 생존의 욕구와 닿아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은 절대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매개적 소통이 일어나는 주요한 공간은 인터넷과 SNS이다. 내가 누구와 소통할지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미리 가늠할 수 있고, 대화의 주제와 시간을 내가 정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전한 장소다. 하지만 이러한 안전은 낯선 사람을 거부함 또는 낯섦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확보되는 안전이다. 모두에게 내가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내가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최대한 나의 본모습을 감춰야 한다. 한마디로 대화 상대방과 차이를 드러내지 않거나 차이가 명확한 사람과는 말을 섞지 않는 것이 나의 안전을 위해 필요하다. 완벽하게 익명으로 참여할 수 있는 제한적인 공간들이 있지만, 진정한 소통이라 부를 만한 것이 일어나지 않는다. 상호 이해의 목적이 배제된 소통은 소통이라기보다는 혼잣말이나 감정적 배설에 불과하다.


 만약 우리에게 낯선 사람과 서로의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상호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안전한 소통 공간이 있다면 어떨까? 나와 다른 사람과 서로의 차이를 솔직하게 드러내도 무방하고 오히려 서로에게 유익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폐쇄적 사회성을 극복하고 ‘직접적인 소통’을 가능케 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서로 다른 생각을 사람들이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기반으로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집단 의사결정 플랫폼이자 서로가 착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공간인 Defora(디포라)를 만드는 이유이다. Defora(디포라)는 폐쇄적 사회성이라는 밈이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오늘날, 더욱 복잡하고 확대된 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성의 밈을 배양하고 퍼뜨리기 위한 배지가 될 것이다.



Defora가 궁금하시다면!    ->      defora.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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