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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의 TMI

놓쳐버린 다큐멘터리 영화에 부쳐

by KOSAKA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인 스튜디오 지브리 작품들은 한국 극장에서 상영된 일본 애니메이션 누적 관객 수 톱10 중 다섯 편을 차지할 만큼 전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을 받아 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웃집 토토로》 등은 각기 수십만 명의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단순한 흥행을 넘어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 역시 브런치스토리 프로필 사진에 토토로 자작 사진을 걸어 둘 만큼 지브리 팬임을 자처한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개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도 직장이 일본인지라 의도치 않게 놓칠 듯 하다. 오늘이 개봉일이라는데..홍보 내용에는 “감독의 일대기와 창작 과정을 심층 취재”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다큐멘터리 장르로 스크린에 올라온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매체가 예술 장르로서 얼마만큼 인정받고 있는지를 실감했다. 감독의 숨결, 제작 현장의 공기, 스토리보드 한 컷 한 컷에 담긴 집념과 고민—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기가 계속된다면 조만간 안노 히데아키도 다큐멘터리로 다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창조자 안노 감독 역시 한국에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하고 있으니, 그의 내면 세계를 비춰 주는 기록물이 나온다면 분명 관객의 관심을 끌 것이다. 다큐멘터리란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창이다. 제작 현장의 고된 순간, 실패에서 배운 교훈, 성공 뒤에 감춰진 불안과 열정—이 모든 것은 관객이 작품 뒤편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욱 공감하게 만드는 요소다.


나는 50대 중년이지만, 애니메이션·SF·케이팝 등 이른바 ‘서브컬처’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놓지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취향이야말로 ‘정신적 노화 방지제’인지 모른다. 애니메이션은 내 안의 동심을 일깨우고, SF는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게 하며, 케이팝은 세대 간 공감의 다리를 놓아 준다. 만약 어느 날 이러한 문화에 흥미를 잃는다면, 그것은 호기심과 모험심이 시들었다는 경고일 것이다.


여러분들도 잘 아는 내용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글을 클릭하고 들어왔다는 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이므로 미야자키 하야오 TMI 톱10을 한번 뽑아보자.


1. 아버지의 비행기 부품 회사 출신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린 시절 전투기 방향타를 제작하던 ‘미야자키 비행기’ 가문에서 자랐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전투기에 장착되는 정교한 부품이 폭격과 맞물려 만들어지는 현장을 보며, 그는 항공기술의 가능성과 전쟁의 잔혹함을 동시에 경험했다. 이러한 경험은 이후 《천공의 성 라퓨타》나 《바람이 분다》 등 작품 속 비행 장면에 깊이 스며들어, 단순한 비행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 전쟁과 평화’ 사이의 복합적인 감정을 담아내는 원동력이 된다.


2. 스토리보드 우선 작업 방식
대부분 애니메이션 감독이 대본을 먼저 완성한 뒤 그림을 그리지만, 미야자키는 대사 없이 스토리보드를 먼저 완성한다. 그는 캐릭터의 동작과 장면 전환을 시각적으로 구상한 후, 그 위에 대사를 입히는 방식을 고집한다. 이로 인해 애니메이션 현장에서는 즉흥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도 곧바로 반영되어, 스토리보드 한 컷마다 살아 숨 쉬는 긴장감과 디테일이 살아 있도록 만든다.


3. 반전(反戰) 메시지의 뿌리
전후의 황폐해진 일본 풍경과 어린 시절 목격했던 도시의 파괴는 미야자키 작품 전반에 깔린 반전 메시지의 근간이 된다. 그는 전투기가 아닌 자연과 생명을 그리며, 전쟁의 상흔을 거울 삼아 평화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오우무(巨蟲)와 인간의 갈등을 그리듯, 전투가 아닌 상생의 방식을 통찰하게 하는 감성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에서 비롯된다.


4. ‘Ghibli’라는 중동 어원
스튜디오 지브리라는 이름은 사하라 사막의 열풍을 뜻하는 아랍어 ‘ghibli(غِبْلِي)’에서 유래했다. 미야자키와 동료들은 ‘새로운 바람을 불러오자’는 의도로 이 이름을 택했는데, 의외로 중동의 언어에서 따온 이국적 어원이 한국 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이름에는 전통적 일본 애니메이션 틀을 넘어 세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겠다는 강한 포부가 담겨 있다.


5. 유럽 현지 로케이션 리서치

《마녀 배달부 키키》나 《마루 밑 아리에티》 같은 작품에서 유럽풍 건축물과 풍경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배경은, 미야자키가 직접 스웨덴의 스톡홀름·비스뷔 등을 방문해 수십 롤의 필름으로 기록한 덕분이다. 그는 현지 골목길의 타일 패턴과 빛이 건물 벽에 반사되는 미묘한 색감까지 세밀하게 관찰해, 애니메이션 배경화에 반영함으로써 관객에게 마치 그곳에 와 있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한다.


6. 수만 장의 손그림 스케치
미야자키는 감독이면서도 주요 장면의 키 프레임을 직접 손으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바람이 분다》만 해도 10만 장 이상의 컷을 손수 스케치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이 같은 ‘하드코어’ 제작 방식은 그의 세심한 연출 철학을 잘 보여 주며, 수천 명의 애니메이터가 참여하는 대규모 스튜디오 작품임에도 핵심 장면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기 위한 그의 집념을 엿보게 한다.


7. 수차례 은퇴 선언 뒤 귀환
작품을 완성할 때마다 “은퇴하겠다”고 선언하지만, 미야자키는 곧 다시 창작 현장으로 돌아온다.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는 과정은 그의 스토리텔링에 대한 깊은 열망과 아직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는 증거이다. 이렇게 완성된 마지막 작품이라 하더라도, 그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쌓아 두고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창작자이자 이야기꾼이다.


8. 디즈니·픽사와의 굳건한 우정
애니메이션 업계 거장인 픽사 스튜디오와도 깊은 교류를 이어 왔다. 존 래싯터 전 픽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미야자키 작품을 통해 영감을 얻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으며, 두 스튜디오 간 상호 방문과 초청 상영회가 이뤄졌다. 이러한 친분 관계는 국경을 넘어 애니메이션을 매개로 한 예술적 교류와 존중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9. 만화판 『나우시카』의 완벽주의
미야자키가 직접 연필로 그린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원고는 완벽을 기하기 위해 몇 번이고 챕터를 수정하거나 철회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는 세피아 톤 잉크로 인쇄된 만화판에서조차 세부 장면 하나하나를 다듬는 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일부 장면은 출판 직전까지도 삭제했다. 이 같은 집요함은 그의 이야기 속 디테일과 설득력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10. 서구 문학·과학서로부터 받은 영감
『나우시카』를 비롯한 여러 작품의 세계관은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일본 민담 「곤충을 사랑한 여인」, 고문·농업사·생태학 관련 서적 등 다양한 서구 문학과 과학서에서 차용한 요소들로 풍성하게 구성되었다. 미야자키는 문학적·학문적 자료를 바탕으로 픽션을 탄탄히 다진 뒤, 자신만의 이미지와 철학을 얹어 독창적인 판타지 세계를 창조해 냈다.


(...유튜버 과나가 만든 '그거아세요'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짝사랑하는 여자와 모처럼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는데 마땅히 할 얘기가 없어 '귤에 붙어 있는 하얀 거 이름은 귤락'이라는 둥 엉뚱한 TMI들을 얘기하는 슬픈 가사의 노래다. 짝사랑하는, 했던 남성들은 특히 꼭 들어보길 권한다. 막 공감된다.)


이처럼 미야자키 감독의 다층적 경험과 집념이 작품에 스며들어, 그 자신을 넘어 관객의 마음에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다음에는 다큐멘터리 상영 기회를 꼭 잡아, 감독의 목소리와 호흡을 직접 느껴 보고 싶다. 그 순간, 영화관 어딘가에서 새로운 ‘ghibli의 바람’이 내 가슴에도 불어올 테니까.


바람이 분다. 구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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