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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 독서의 미학

4권을 병렬 독서 중. 재미있다.

by KOSAKA

우리는 흔히 책을 하나씩, 차례로 읽는 것이 독서의 기본이라고 배운다. 마치 커다란 정찬의 식사처럼,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차근차근 나아가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세상에는 꼭 한 권을 끝내야 다음 책을 시작해야 하는 법은 없다. 오히려 몇 권을 동시에 펼쳐 놓고 읽는 병렬 독서(parallel reading)는 독서라는 행위의 지평을 넓히고, 사고의 입체성을 강화하는 탁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병렬 독서는 문자 그대로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는 방식을 말한다. 겉으로 보면 산만하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방식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의도를 가지고 잘 설계된 병렬 독서는 오히려 독서의 깊이를 확장하고, 지식 간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독자 개인의 사고 패턴에 유연성을 더한다. 단일한 흐름의 독서가 선형적인 이해에 머문다면, 병렬 독서는 입체적인 사고를 가능케 한다. 독서를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에 따라 독서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그 목표가 넓은 이해, 창의적인 연상, 혹은 주제 간의 통섭이라면 병렬 독서야말로 가장 적합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역사책을 읽고 있다면, 동시에 문학작품이나 철학서적을 병행해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를 공부하며, 그 시대의 문학인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고, 철학적으로는 에라스무스나 몽테뉴의 글을 참고한다면 단순히 시대적 사건을 아는 것을 넘어서 그 시대의 정신, 감정, 세계관을 더욱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시대를 다양한 장르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곧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체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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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 4권을 병렬독서중이다. 재미있다.

이러한 병렬 독서는 단순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관계’를 중심으로 한다. 상호 연결성, 즉 책과 책 사이의 숨겨진 대화와 맥락을 스스로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이는 지식 소비가 아닌 지식 구성의 행위로 이어진다. 책 A의 문장을 읽으며 책 B의 개념을 떠올리고, 책 C의 관점을 가져와 그것을 비판하거나 보완하는 것이다. 이때 독자는 더 이상 수동적 소비자가 아니다. 독자 스스로 지식과 의미를 구축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병렬 독서의 가장 큰 장점은 ‘연결’이다. 현대 사회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문제들로 가득하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편적인 지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의 개념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다. 병렬 독서는 바로 이런 사고 능력을 길러준다. 경제학을 공부하며 사회학 이론을 병행하고, 그 배경으로 철학적 사고틀을 더할 수 있다. 이는 단지 지식의 총량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보는 눈의 초점을 확장하는 일이다.


또한 병렬 독서는 지루함을 덜어주는 데도 탁월하다. 어떤 책은 내용은 깊지만 문체가 건조하고, 또 어떤 책은 재미있지만 내용이 가볍다. 이럴 때 상반된 성격의 책을 병렬로 읽으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지적인 리듬감을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낮에는 분석적인 글쓰기를 위한 논문집을 읽고, 저녁에는 감성적인 에세이나 소설을 읽는 방식이다. 집중력의 피로를 최소화하면서 다양한 감각을 자극할 수 있다.


물론 병렬 독서에도 단점은 있다. 가장 큰 위험은 내용이 머릿속에서 섞이거나, 집중력이 분산되는 것이다. 이는 무계획적인 병렬 독서를 했을 때 생기는 문제다. 병렬 독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읽는다'는 것이지 '무작정 아무 책이나 여러 권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테마를 정하거나, 연계 가능한 관점을 중심으로 책을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컨대 "기후위기"라는 주제 아래, 과학적 분석서 한 권, 정책 분석서 한 권, 그리고 환경문제를 다룬 문학 작품 한 권을 구성할 수 있다. 이처럼 병렬 독서에도 나름의 전략과 구성 능력이 필요하다.


병렬 독서가 익숙해지면, 사고의 방식 자체가 바뀐다. 인간의 사고는 본래 병렬적이다. 우리는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간다. 독서 또한 그 복잡한 사고를 반영하는 도구라면, 병렬 독서는 그것을 더 자연스럽고 현실적으로 반영하는 방식이 아닐까? 오히려 한 권에 몰입해 전체를 꿰뚫는 능력과, 여러 권을 통해 구조적 사고를 키우는 능력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다. 어느 한 쪽만 고집할 필요는 없다.


현대의 정보사회는 과잉의 시대다. 책도, 지식도, 해석도 너무 많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한 것은 ‘읽을 줄 아는 능력’ 그 자체다. 병렬 독서는 읽기를 단순한 소비가 아닌 창조로 이끄는 방식이다. 여러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엮어가며 나만의 해석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독서의 기쁨이다.


마지막으로 병렬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선물은 ‘관점의 자유’다. 하나의 책은 하나의 관점만을 보여주지만, 여러 책은 다양한 관점을 동시다발적으로 제공한다. 우리는 그 사이에서 경계와 충돌을 경험하며, 자기만의 시각을 형성해간다. 책은 읽는 이의 수만큼의 독법이 존재하고, 병렬 독서는 그 독법을 다층적으로 구성하게 해 준다. 독서의 목적이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보는 것이라면, 병렬 독서는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가장 유연하고도 강력한 방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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