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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삼국지 비교기

같은 이야기, 다른 해석 — 영웅을 보는 두 사회의 거울

by KOSAKA

삼국지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지만, 그 생명력은 국경을 넘어 한국과 일본에서 더욱 강렬하게 꽃피었다. 중국의 고전소설 중에서도 삼국지는 유독 동아시아인들에게 깊은 감정을 일으키는 서사다. 혼란과 분열, 의리와 배신, 인물 간의 갈등과 이상이 뒤섞인 이 거대한 서사는 각국의 문화적 기질과 시대정신에 따라 다른 옷을 입게 된다. 특히 일본과 한국은 삼국지를 독자적인 방식으로 해석하고, 새로운 창작물로 재탄생시키며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거울’을 삼아왔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삼국지

일본에서 가장 대표적인 삼국지는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소설 『삼국지』다. 이 작품은 나관중의 연의를 바탕으로 하되 일본적 정서를 짙게 녹여낸 텍스트로, 1930~40년대 일본 대중문학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요시카와의 삼국지는 영웅 서사에 가깝고, 도덕적 미화가 강하다. 유비의 인덕은 더 찬란하게 빛나고, 조조는 악역이 아닌 실용적 영웅으로 그려진다. 일본 독자들은 유비보다 조조를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고, 이것은 단지 인물의 매력 때문만이 아니라 일본 사회가 가진 현실주의와 효율 중심의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 조조는 단호하고, 결단력 있으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통치자의 상징으로 일본인의 심리에 부합했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삼국지. 어딘가 낯익은 그림체.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만화 『삼국지』는 일본 전 세대에 걸쳐 읽히는 국민 만화로 자리 잡았다. 이 작품은 요시카와 에이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만화라는 형식을 통해 보다 직관적이고 생동감 있는 전투와 인물의 감정을 담아냈다.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서사를 단순화하고, 동시에 인물의 감정과 결단의 순간들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삼국지를 기반으로 한 게임, 애니메이션, 전략 시뮬레이션 등 일본 내 삼국지 콘텐츠는 계속 확장되었다. 현대에는 삼국지 인물을 경영 전략가로 해석하거나, 심리학적 리더십 모델로 분석하는 콘텐츠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반면 한국에서 삼국지의 대중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는 이문열이다. 그의 『삼국지』는 1988년에 처음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도 가장 널리 읽히는 삼국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이문열의 삼국지는 단순한 번역이 아닌, 작가 자신의 해석과 철학적 고찰이 덧붙여진 작품이다. 각 장 끝에 덧붙인 해설을 통해 그는 유비와 조조, 제갈량이라는 인물들에 대한 도덕적 질문과 정치적 성찰을 독자에게 던진다. 특히 조조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이자 군주로서의 책임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며, 유비는 도덕적 이상을 지키려는 고결한 지도자로 묘사된다. 이문열은 어느 쪽에도 완전한 승리를 주지 않으며, 오히려 두 가치의 충돌 속에서 독자가 스스로 답을 찾기를 유도한다. 그의 삼국지는 전통적인 유교적 가치와 한국 사회의 정서가 강하게 반영된 텍스트다.


2010년대 들어 황석영의 『삼국지』가 등장하며 삼국지 해석은 또 다른 국면을 맞았다. 황석영은 이문열과 달리 영웅 중심의 서사를 벗어나, 민중과 전쟁 속 인간의 얼굴에 더 집중한다. 그는 삼국지를 통해 당시의 민중이 어떻게 살았고, 어떤 고통을 겪었으며, 영웅들이 아닌 주변부 인물들의 서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보여준다. 황석영은 조조나 유비를 신격화하지 않고, 그들의 인간적인 모순과 선택의 딜레마를 부각시킨다. 그의 삼국지는 권력의 속성, 전쟁의 잔혹성, 인간 사회의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읽히며, 민주화 이후 한국 문학이 보여준 다원성과 사회의식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이문열(왼쪽), 황석영(오른쪽) 작가의 삼국지

이처럼 일본과 한국은 삼국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해석해왔다. 일본에서는 삼국지가 전략과 통치, 조직 리더십의 관점에서 읽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도덕과 의리, 인간관계의 측면에서 읽히는 경향이 강하다. 일본인 독자들은 조조를 존경하는 반면, 한국인 독자들은 관우와 제갈량을 숭배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삼국지는 ‘능력 있는 영웅’에 대한 찬양이 중심이라면, 한국의 삼국지는 ‘올바른 인간’에 대한 이상이 강조된다. 이 차이는 각 사회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간형, 지도자의 모습, 가치관의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이와 같은 차이는 삼국지를 단순한 ‘외국 고전’이 아니라, 각자의 시대와 문화를 비추는 거울로 만드는 힘이 된다. 일본의 삼국지가 냉철하고 분석적이며 다양한 장르로 재해석되는 반면, 한국의 삼국지는 따뜻하고 정서적이며 윤리적 메시지를 동반하는 서사로 발전했다. 두 나라 모두 삼국지를 자기화한 셈이다.


삼국지는 누구의 이야기인가. 그것은 중국에서 만들어졌지만, 한국과 일본에서 다시 쓰이고 해석되며, 각 나라의 문화와 정서, 가치관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해왔다. 조조를 영웅으로 여기는 일본과, 제갈량과 관우를 의로움의 상징으로 받드는 한국. 리더십의 의미, 인간관계의 윤리, 영웅 서사의 구조까지—양국은 삼국지를 통해 자기 사회의 이상을 투영해왔다.


이처럼 삼국지라는 동일한 이야기조차, 해석하는 사람의 문화와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가치를 부여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역사소설은 단순한 과거의 재현이 아니라, 현재의 문화적 욕망과 인식의 반영임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일본과 한국의 삼국지 해석은 단순한 취향 차이가 아니라, 두 사회의 문화적 성격과 세계관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창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는 단지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 각 사회의 현재를 비추는 문화적 거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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