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관용, 그리고 다가오는 경고
위 사진은 오사카 환락가인 기타신치의 풍경이다. 자체검열의 결과. 이하 관련 이미지 포스팅 없음.
‘성진국’이라는 별명은 일본을 따라다니는 낯설지만 익숙한 표현이다. 흔히 이 말은 일본의 성산업 발달이나 성인 콘텐츠의 범람을 가리키지만, 단순히 영상물이나 유흥업소만으로 설명될 수는 없다. 일본은 왜 성적으로 개방된 나라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을까? 그 이면에는 종교, 역사, 문화, 산업, 사회구조까지 얽힌 다층적인 맥락이 존재한다.
먼저, 일본은 오랫동안 성을 도덕적 죄악이나 수치심의 대상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온 사회였다. 한국이나 중국처럼 유교의 영향이 강한 사회에서는 성이 감춰져야 할 것,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졌지만, 일본에서는 성이 생명과 풍요를 상징하는 하나의 자연스러운 행위로 받아들여졌다.
이는 신토(神道)와 불교의 문화적 영향에서 기인한다. 신토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강조하는 종교로, 성을 ‘생명력의 표현’이자 ‘축복의 행위’로 본다. 불교 역시 금욕을 이상으로 삼지만, 성적 행위를 근본적인 악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게다가 일본에 전해진 불교는 융통성 있는 실천 중심이었고, 생활윤리와 성윤리를 철저히 분리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런 사상적 배경 위에 에도 시대(1603~1868)**의 대중문화는 성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우키요에(浮世絵), 특히 춘화(春画)로 알려진 관능화는 성행위를 유쾌하게 묘사했고, 당대의 중산층은 이를 예술로 감상하거나 혼수품처럼 준비하기도 했다. 성은 일상 속 유머이자, 부부애의 표현이었고, 금기보다는 생활 속 한 장면이었다.
여기에 일본의 독특한 사회문화가 더해진다. 일본은 흔히 집단주의 사회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강한 비간섭 원칙이 작동한다. 집단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구성원 간 충돌을 피하고, 서로의 생활을 존중하려는 문화는 ‘공적 통제 + 사적 자유’라는 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이런 비간섭적 개인주의는 성적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을 남의 일로 간주하며, 누구도 그것을 쉽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보수적이면서도 성문화에서는 놀라울 만큼 관용적이라는 이중성이 가능해진 것이다.
현대 일본에서 이런 성적 관용은 산업화된 형태로 뿌리를 내렸다. 2023년 기준, 일본의 성산업 시장 규모는 약 3조 엔(약 27조 원)에 달한다. 이는 한국(약 67조 원)의 34배에 해당하는 수치로, OECD 국가 중에서도 손꼽히는 규모다. 이 산업은 단순한 유흥을 넘어, 지방경제와 노동시장에까지 연결돼 있다. 풍속점, 성인용품 전문점, 테마형 러브호텔, 성인 콘텐츠 제작사 등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며, 일본 내 일부 지역은 이를 합법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다.
특히 도쿄의 가부키초, 오사카의 미나미, 나고야의 사카에 등지에는 ‘풍속가’라는 이름의 성인 문화 지구가 형성돼 있고, 심지어 일부 중소도시에서도 성산업이 관광자원화되어 있다. 일본 사회는 성을 억제하거나 금지하는 대신 제도 속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그러나 이처럼 개방적이고 자율적인 환경이 항상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진 않는다. 최근 몇 년간 일본에서는 성 관련 사회문제와 보건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매독(Syphilis) 감염의 급증이다.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2023년 매독 환자는 연간 1만 5천 명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젊은 층, 도시 거주자, 일부 원조교제 연루 사례에서 감염률이 급등하고 있어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또한, ‘다침보(だちんぼ)’라 불리는 거리 성매매 여성들의 재등장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교복 차림의 여성들이 유흥가 주변에서 고객을 기다리는 모습은 과거 1990년대 이후 사라졌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들어 SNS와 결합되면서 다시 퍼지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성진국’이라는 외피 너머에 놓인 관리 사각지대와 청소년 보호 실패를 드러내며, 일본 사회 내부에서도 강한 반성과 규제 움직임을 낳고 있다.
즉, 개방과 자율은 반드시 안전장치와 윤리기반이 뒷받침될 때에만 건강하게 작동한다. 일본은 오랫동안 성을 금기시하지 않는 사회를 유지해왔고, 그것이 때로는 매력적인 문화로 소비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성을 둘러싼 새로운 위기와 마주하면서, 자율이라는 이름 아래 방치되어온 문제들을 직시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성진국’이라는 타이틀은 결코 단순한 별명이 아니다. 그것은 일본이 만들어낸 특이한 문화적 궤적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사회 실험의 결과물이다. 그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관용은 도덕의 부재가 아니다. 오히려 복잡한 균형의 결과다. 일본은 지금, 그 균형의 무게를 다시 가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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