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남자의 양산

햇빛보다 더 강한 고정관념, 나는 왜 아직도 주저하는가

by KOSAKA

한국과 일본의 여름 풍경이 변하고 있다. 폭염과 기후 위기는 일상의 작은 습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남성들이 양산을 드는 모습이다. 예전에는 양산이 철저히 여성의 소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남자들도 햇볕을 가리고 체감온도를 낮추기 위해 망설임 없이 양산을 구입하고 있다. 두 나라의 흐름은 닮은 듯 다르다.


일본은 이 문화가 좀 더 일찍 자리 잡았다. 2000년대 후반부터 ‘쿨비즈(Cool Biz)’ 캠페인이 정부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처음에는 정장을 벗고 반소매 셔츠를 입도록 독려하는 정책이었지만, 점차 여름철 체온 상승을 막기 위해 양산 사용을 권장하는 쪽으로까지 확장됐다. ‘히가사’라고 불리는 양산은 원래 여성용 이미지가 강했으나, 폭염이 반복되면서 인식이 바뀌었다. 정부가 남성을 대상으로 “양산을 드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내놓았다. 일본의 주요 언론과 공중파 뉴스에서도 남성 양산 사용을 당연하게 다루었고, 백화점과 편집숍에서는 남성을 위한 심플한 디자인의 양산이 대거 출시되었다. 지금 도쿄나 오사카 한복판에 가보면, 직장인 남성이 밝은색 리넨 셔츠에 검은 우양산을 쓰고 걷는 장면은 크게 낯설지 않다. 일부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전체 양산 구매 중 20~25%가 남성 고객에게서 나온다고 한다.


한국의 변화는 더 최근에 시작되었다. 2022년부터 여름철 최고 기온이 매년 기록을 경신하자, 한국에서도 “양산이 필요한 물건”이라는 공감대가 빠르게 퍼졌다. 특히 2023년부터 백화점과 온라인 쇼핑몰에서 ‘우양산’(우산 겸용 양산)의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형마트에서는 남성 고객을 위한 블랙, 그레이 계열의 무채색 양산을 따로 진열하기 시작했다. 유통업체 통계에 따르면 여성 소비자 못지않게 남성 소비자 구매 비중이 10~15%에 달하며, 여전히 성장 중이다. 서울 시내 출근길에서도 일부 남성이 양산을 드는 모습이 목격된다. 다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는 ‘남자가 양산을 쓰면 뭔가 어색하다’는 시선이 남아있다. 어떤 이들은 “그래도 양산은 여성의 물건”이라며 선을 긋고, 어떤 이들은 “건강과 효율을 위해서는 신경 쓸 일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이 과도기적 풍경은 어쩌면 우리 사회가 고정관념과 실용성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왜 양산에 쉽게 손이 가지 않을까. 나 역시 폭염 속을 걸으며 양산을 쓴 사람들의 시원해 보이는 모습을 부러워한 적이 많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자외선을 막으면 피부 노화도 줄고, 체감온도가 몇 도씩 낮아지며, 열사병 위험도 덜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막상 양산을 사거나 펼치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진다. 그 불편함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


아마도 그 뿌리는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남성성의 규범에 닿아 있다. ‘남자는 양산을 쓰지 않는다’는 무언의 규칙은 사실 아무도 명문화해놓지 않았지만, 공기처럼 퍼져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양산은 언제나 여성의 소품이었다. 남성은 팔을 걷어붙이고 햇빛을 그대로 맞아내야 한다고 배운 것처럼 굴었다. 여름에 양산을 쓰는 남자를 본 적도 거의 없었다. 이런 문화적 각인이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양산에는 단순히 ‘필요한 도구’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덧씌워져 있다. 약간의 허영심, 꾸미기 위한 태도, 혹은 여성스러움 같은 인상이 결합돼 있다. 머리로는 “양산은 기능적 도구”라고 수십 번 되뇌어도, 마음이 완전히 납득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 상징성에 있다. 어떤 사물은 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표현’이 된다. 내가 양산을 펼치는 순간, 내 안에 배어 있는 남성다움의 껍질에 균열이 간다. 물론 누구도 비난하지 않겠지만, 나는 내가 가진 ‘남성다움’의 껍질을 스스로 깨뜨리는 용기가 부족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 거부감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지는 않다. 일본처럼 남성용 양산이 더 대중화되고, 한국에서도 언론과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앞장서서 “양산은 건강을 위한 도구”라고 꾸준히 말한다면, 내 마음의 경계도 서서히 옅어질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보다 올여름에는 길에서 남성들이 양산을 든 장면을 훨씬 더 자주 목격한다. 익숙함은 낯섦을 무디게 한다. 나만 해도 처음에는 남자가 양산을 쓰면 시선이 가던 것이, 요즘은 ‘합리적이네’ 하고 지나친다.


변화는 그렇게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일어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인간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고, 고정관념은 점점 실용성 앞에서 설득력을 잃어간다. 언젠가는 내가 아무 거리낌 없이 검정색 양산을 사서, 한낮의 햇볕 아래서 당당하게 펼치고 다닐 날도 올 것이다. 아마 그때쯤이면 “남자도 양산 쓰나요?”라는 질문조차 사라져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과 한국의 남자들은 여름 햇살을 피하기 위해 양산을 손에 쥔다. 나도 그들의 대열에 설 수 있을까. 이 에세이를 쓰는 동안만큼은, 내 마음속 문턱이 조금은 낮아진 것 같다. 그것이 작은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keyword
이전 21화일본은 어쩌다가 ‘성진국’이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