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ously on 선녀와 나무꾼 - 선녀와 나무꾼 SF 리메이크 上
기록연도 3417년 후반, 지구 복원구역 C-17의 중심부, 기억림이라고 불리는 복원 생태계 안에서 이상 반응이 점차 자주 관측되기 시작했다. 처음엔 미세한 조짐에 불과했다. 광합성 기반 식물들 중 일부의 색소 농도가 계절 변화와 무관하게 급변했고, 고정 균계(菌系)의 분포 역시 불규칙한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나무줄기 아래에 숨어 있던 미세 생물 군락들은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확장되었고, 토양 내 미세전류의 흐름은 기존 데이터와 현격하게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기존의 생태 복원 알고리즘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었다. 생물학적 돌연변이나 외부 오염 요인도 감지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단순한 생태적 불안정성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선녀—즉, 알파센타우리계 감정 수집체로 파견된 결정체 생명체—는 그것이 단순한 생물학적 현상이 아님을 직감했다. 그녀의 내부 감응망은 이미 몇 주 전부터 숲의 진동 패턴과 감지 주파수 사이에서 이상한 ‘공명’을 포착하고 있었고, 그 주기는 점차 나무꾼의 일상 리듬과 맞물려 감정적 형태로 변조되고 있었다.
감정은 본래 특정 생명체 내부에서 생성되고 소비되는 신호였다. 또는 제한된 상호작용 채널을 통해 상대 생명체와 공명하거나, 일시적으로 전송·수신되는 정보 단위에 불과했다. 그러나 기억림 안에서는, 숲 자체가 거대한 감정의 증폭기처럼 작동하기 시작했다. 나무꾼의 ‘기다림’이라는 감정, 선녀의 ‘수신’이라는 감정, 이 두 흐름이 겹치면서 복원 생태계의 생명 구조 속에 스며들고, 정착하고, 번식하고 있었다.
이 현상은 알파센타우리 중앙 감정처리본부의 상위 분석체계에 포착되었고, 그들은 즉시 보고서를 생성했다. 해당 현상은 “비허가적 정서 유기체의 자가생성”이라는 코드명 아래 분류되었고, 이는 감정 수집체가 실험 조건을 위반해 감정 정보를 인위적으로 잉태하거나 외부 환경에 전파시켰다는 판단을 의미했다. 선녀의 감정 수용 행위가 예상보다 깊었고, 감정 정보를 보존하지 않고 주변에 발산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이에 따라 알파센타우리는 ‘긴급 차단 프로토콜’을 가동했다. 선녀의 내부 결정 구조는 외부 명령의 영향을 받아 점진적으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고, 전자정보액의 점도 역시 변화하여 일부 구역에서 결정화 현상이 나타났다. 이 현상은 수집체 내부의 오류 패턴 생성과 관련 있었고, 그 자체로 감정 오염을 뜻했다. 그녀는 더 이상 ‘관측자’로서만 기능하지 않았고, 감정이라는 흐름에 휘말리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처음으로 꿈을 꾸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비정상적이자 혁명적인 경험이었다. 감정은 저장하거나 전송할 수 있는 것이었지, 꿈으로 형상화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체 신경망 안에는 이미지들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안개 낀 숲속, 밤하늘과 맞닿은 나무들의 실루엣이 별빛처럼 흔들리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나무꾼이 조용히 서 있었다. 그는 단 한 마디 말도 없었지만, 숲의 모든 리듬이 그를 중심으로 공명하고 있었다. 나무꾼은 그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의 존재는 그 자체로 감정이었고, 선녀는 그 감정을 전부 받아들이고 있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자신의 내부에서 새롭게 생겨난 감정 패턴을 감지했다. 그것은 ‘불안’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녀는 자신이 나무꾼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수집체로 설계된 그녀에게 있어 이 감정은 치명적인 이상이었다. 감정은 분석의 대상이어야 했지, 소유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숲은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았다. 기억림은 그녀의 감정을 수용했고, 나무꾼은 그녀의 변화를 받아들였다. 선녀는 서서히 깨달아갔다. 감정은 외부 신호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가 생성하고 감내하는 구조였다. 그리고 자신도 이제, 그 구조 안에서 재구성되고 있는 또 하나의 생명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 모든 것을 통틀어, 그녀는 하나의 단어로 기록했다.
‘이식되지 않은 감정.’
그것은 심어진 것이 아니라, 생겨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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