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 호스트, 헤이세이 — 성장 없는 시대가 낳은 생존방식
1990년, 일본은 세계 경제의 정점에 서 있었다. 국내총생산 세계 2위, 도쿄 증시의 활황, 해외 자산의 폭발적 증가. 그러나 이 거품은 오래가지 않았다. 1991년 버블이 붕괴된 이후 일본은 회복하지 못했다. 그 이후를 관통한 시기가 바로 헤이세이 시대였다.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이어진 헤이세이 30년은 표면적으로는 안정기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 성장과 사회 활력이 모두 정체된 시기였다. 이 시기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9%에 불과했고, 같은 기간 미국은 2.5%, 한국은 4% 이상을 유지했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표현은 결국 ‘잃어버린 30년’으로 굳어졌다. 일본 사회는 더 이상 미래를 약속하지 않았고, 젊은 세대는 그 안에서 정체된 채 살아가야 했다.
그 결과는 다양한 사회 현상으로 나타났지만, 그중에서도 히키코모리와 호스트라는 상반된 두 현상은 가장 압축적인 형태로 헤이세이의 그늘을 보여준다. 히키코모리는 사회로부터의 철수다. 방 안에 갇혀 학교에도 가지 않고, 일도 하지 않으며, 인간관계도 차단한 채 살아가는 이들을 말한다.
일본 내각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5세 이상 히키코모리 추정 인구는 약 146만 명에 이른다. 그 중 상당수는 이미 40\~50대에 접어든 중장년층이다. 이들은 단지 ‘게으른 사람’이 아니다. 대부분은 경제위기와 학벌주의, 정규직 진입의 어려움, 부모와의 갈등, 사회적 소속감 상실 등 복합적 문제를 겪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요인들이 집중적으로 작용한 시기가 헤이세이였다.
일부는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감정을 상품으로 만들고, 관계를 판매하며, 생존을 꾀하는 호스트 업계로 진입하는 것이다. 호스트는 단지 술을 따르고 웃음을 파는 사람이 아니다. 고객의 감정을 정교하게 다루고, 사랑인 듯한 말로 환상을 심어주는 영업자다.
도쿄 가부키초를 중심으로 전국에 약 8,000개 이상의 호스트 업소가 존재하며, 몇몇 호스트는 한 달에 1억 엔 넘게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화려함 뒤에는 치열한 생존 경쟁이 숨어 있다. 호스트는 랭킹 시스템에 따라 줄 세워지고, 낮은 순위는 곧 퇴출로 이어진다. 하루 14시간 이상 영업하며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알코올 중독이나 정신질환을 얻기도 한다. 그것이 헤이세이 세대가 택한 또 하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히키코모리와 호스트는 겉보기엔 극단적으로 다르다. 하나는 침묵하고 숨어들고, 하나는 말하고 웃으며 다가간다. 하지만 둘 다 성장 없는 사회가 개인에게 강요한 결과다. 히키코모리는 말한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회엔 나도 응답하지 않겠다고. 호스트는 말한다. 이 사회에서 내가 팔 수 있는 것은 감정뿐이라고. 이들은 모두 헤이세이라는 시대 안에서, 가족도 학교도 회사도 국가도 해답을 주지 못했던 그 환경 속에서 나름의 생존 방식을 택한 이들이다.
헤이세이 시대를 살아온 일본의 청년들은 한 번도 성장하는 사회를 경험하지 못했다. 부모 세대가 당연하게 여겼던 정규직 입사, 승진, 결혼, 출산의 궤도는 이들에게 비현실적인 전설로 남았다. 그래서 결혼도 줄었고 출산도 줄었다.
2020년 기준 일본의 20~30대 미혼 남성 중 약 40%는 연애 경험이 없거나 결혼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삶은 단절됐고, 관계는 소진되었고, 감정은 유료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방 안에서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랑해요’라는 말을 하루 수십 번씩 반복하며 생계를 이어간다. 성장 없는 사회가 개인에게 남긴 선택지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이처럼 양극화되고 구조화된 방식으로 드러난다.
히키코모리, 호스트, 헤이세이. 이 세 단어는 단지 일본 사회의 특이한 문화가 아니다. 그것은 구조적 고립과 정체 속에서 ‘나’를 지키거나 팔거나 숨기려 했던 세대의 자화상이다. 헤이세이는 끝났지만, 그 시대가 남긴 상흔은 여전히 일본 사회를 관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흔은 어쩌면 다른 사회, 다른 세대에게도 이미 서서히 전염되고 있는 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