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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自의 나라, 일본

자전거, 자판기, 자동차로 읽는 일상의 풍경

by KOSAKA

일본이라는 나라를 여행하거나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독특한 도시의 리듬이 있다. 그 리듬은 조용하지만 빠르고, 정갈하지만 분주하다. 눈을 감고 떠올려도 생생하게 각인되는 몇 가지 이미지가 있다. 골목을 가득 메운 자전거들, 곳곳에 늘어선 자판기들, 그리고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들.


이 세 가지, 즉 자전거(自転車), 자판기(自販機), 자동차(自動車)는 단지 이동수단이나 판매기계, 탈것을 넘어, 일본이라는 사회를 구성하는 문화적 코드이자 시스템의 은유이다. 나는 이 세 가지를 빌려 일본을 ‘3自의 나라’라고 부르고 싶다.


먼저 자전거. 일본에서 자전거는 단순한 교통수단 그 이상이다. 도쿄, 오사카, 교토를 비롯한 대도시의 역 앞이나 주택가, 학교 주변에는 항상 자전거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다. 놀라운 건 이 많은 자전거들이 질서정연하게 정해진 공간에 세워져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 중 다수는 자물쇠도 채워져 있지 않다. 그만큼 자전거는 일상에 깊이 들어와 있고, 시민의식과 안전에 대한 기본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자전거의 활용도도 다양하다. 등하교하는 학생부터, 장을 본 주부, 출근하는 직장인, 유아를 앞뒤에 태운 부모까지 모두가 자전거를 탄다. 전동 보조 기능이 탑재된 자전거가 보편화되어 있고, 고령자들을 위한 삼륜 자전거나 낮은 안장 설계도 눈에 띈다. 단순한 이동의 편리함을 넘어서, 삶의 다양성과 연령대를 반영한 자전거 문화는 일본 사회의 세심함을 보여준다. 특히 좁은 골목과 고밀도 주거지로 구성된 일본의 도시 구조에 자전거는 그야말로 최적화된 이동수단이다.


두 번째는 자판기다.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자판기가 많은 나라다. 통계에 따르면 일본에는 약 400만 대 이상의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고,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형 역이나 번화가는 물론이고, 외진 시골길이나 논두렁 한가운데에도 자판기가 놓여 있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는 일은 일본에서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그 자리에 자판기가 없을 경우 오히려 의아할 정도다.


더 흥미로운 점은 자판기의 다양성과 청결도이다. 기본적인 음료수나 커피뿐 아니라, 따뜻한 국물, 라면, 과자, 과일, 마스크, 심지어 성인용품까지 다양한 품목이 판매된다. 지역 특산물을 자판기에 담는 시도도 많다. 자판기 외관 역시 지역별 특색을 살려 디자인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판기 문화는 일본의 무인화 사회를 상징한다. 사람과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문제없이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스템. 그리고 그 시스템을 신뢰하는 소비자. 일본이라는 사회가 무인 운영과 자동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얼마나 일상화했는지를 자판기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다.


마지막은 자동차다. 일본의 자동차는 단순한 교통수단이라기보다, 이동성과 기술력, 그리고 사회 시스템이 집약된 하나의 결과물이다. 도요타, 혼다, 닛산 등 세계적으로 이름난 자동차 브랜드의 본고장답게, 일본의 자동차 산업은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주축이다. 그러나 더 흥미로운 지점은 그 기술력이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점이다.

스즈키자동차 한 브랜드만 해도 이렇게 경차가 다양하다

특히 경차(軽自動車)의 보급률은 매우 높다. 작고 가벼우며 연비가 뛰어나고, 세금도 저렴한 경차는 일본의 좁은 도로와 주차 공간에 적합하다. 도시의 도로를 달리는 차량 중 많은 수가 이 경차이며, 색상과 디자인도 다양해 보는 재미가 있다. 또, 최근에는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보급률도 높아지고 있어, 일본은 친환경 차량 전환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모든 것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일본의 교통 시스템 안에서, 자동차는 정해진 질서와 매뉴얼에 따라 움직이며 혼란을 최소화한다.


이처럼 ‘자전거-자판기-자동차’라는 세 가지 단어는 그 자체로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다. 자전거는 공동체의 질서와 일상의 효율성을 보여준다. 자판기는 기술과 신뢰, 그리고 무인 시스템에 대한 적응력을 상징한다. 자동차는 산업과 기술, 그리고 사회적 규범을 반영한다. 이 세 요소는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일본이라는 나라의 리듬을 구성한다.


또한 이 세 가지는 일본인의 생활 태도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규칙을 지키는 습관, 타인과의 공간을 존중하는 자세, 그리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 생활감각. 자전거를 타면서도, 자판기에서 음료를 사면서도, 자동차를 몰면서도 일본인들은 일상의 작은 매뉴얼을 따르고, 그 안에서 효율과 질서를 추구한다. 그것이 일본이라는 나라를 정체성과 차별성 면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만든다.


물론 그 안에는 역설도 존재한다. 과도한 규칙은 때로 창의성을 억누르기도 하고, 자동화된 시스템은 인간적인 접촉을 줄이기도 한다. 자판기가 가득한 거리에는 상인이 없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가 없다. 자동차의 규칙적인 움직임은 질서 속에서의 개인성 상실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일본은 이러한 균형을 지혜롭게 유지해 왔다. 효율과 인간성, 질서와 창의성, 자동화와 배려 사이의 균형. 그것이 이 세 가지 ‘自’ 속에 은밀하게 담겨 있다.


이제 일본 거리를 걷다 보면, 나는 자전거를 보며 공동체를 생각하고, 자판기를 보며 시스템을 떠올리며, 자동차를 보며 산업과 기술을 상상한다. 그렇게 보면, 일본은 정말이지 ‘3自의 나라’라고 불릴 만하다. 이 세 단어만으로도 이 나라의 리듬과 질서, 그리고 삶의 방식이 선명히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질서는 오늘도 조용히, 그러나 정확하게 일본의 일상을 돌아가게 하고 있다.



사족 : 하지만 自민당과 自위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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