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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빙수, 그 한 그릇의 문화 차이

by KOSAKA

빙수는 단순한 여름 간식이 아니다. 얼음과 단맛을 기반으로 한 이 음식은 나라와 시대, 소비자의 감각을 반영하는 살아 있는 문화의 일부다. 나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빙수를 먹으며 그것이 단지 맛의 차이가 아니라 태도의 차이라는 사실을 자주 실감한다.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 어떻게 담고 어떻게 나눌지. 빙수 하나를 대하는 방식 속엔 그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성이 있다.


그 차이를 느끼기 시작한 건 일본 오사카의 여름이었다. 눈처럼 부드럽게 간 얼음 위에 얹힌 시럽과 팥, 그리고 얇게 썬 유자 껍질 몇 조각. 첫맛은 시원했고, 감각은 깔끔했다. 그러나 그 맛은 곧 사라졌다. 다시 떠올리려 해도 기억에 선명히 남지 않는다. 그 순간 생각이 났다. 한국의 빙수는 달랐다. 맛도 강했고, 질감도 다채로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억에 남았다.’ 나는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빙수는 변화하는 사회와 함께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팥, 떡, 연유, 후르츠칵테일 정도가 얹힌 단출한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디저트 카페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빙수는 완전히 새로운 장르로 진입했다. 단순히 시원한 음료가 아니라, 하나의 ‘콘텐츠’가 된 것이다.


우유를 얼려 만든 부드러운 얼음을 기반으로, 생과일, 크림치즈, 브라우니, 인절미, 곡물, 커스터드, 각종 시럽과 파우더까지 조합이 가능해졌다. 이 과정을 ‘과잉’이라 폄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안에서 한국적인 역동성과 감각을 본다. 끊임없이 새로움을 시도하고, 소비자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눈과 입을 모두 만족시키려는 감각적 기획력. 이건 기술력과 실험 정신, 그리고 시장과의 소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결과다.


비주얼을 중시하는 것도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오늘날의 디저트는 ‘보는 맛’도 중요하다. 그건 세대의 감각이고, 문화의 흐름이다. 단맛의 층위가 입안에서 복합적으로 느껴지고, 다양한 식감이 교차하면서 뇌가 반응하는 리듬이 있다. 거기에 계절과 테마, 개인의 취향까지 접목해 끊임없이 새롭게 설계된 빙수는 일종의 감각 예술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빙수는 그런 맥락에서 단지 ‘많이 얹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획된 풍성함’이다. 식재료 선택, 비율 조정, 시각적 연출, 브랜드 전략까지 고려된, 종합적인 창조물이다. 나는 거기서 한국 문화의 경쟁력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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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시내 정갈한 빙수 전문점

반대로 일본의 빙수는 시간이 멈춘 듯한 인상을 준다. 얼음을 곱게 갈고, 전통 시럽이나 말차 소스를 얹는 것이 기본이며, 팥도 무겁지 않게 얹고 떡은 작게 썬다. 간결하고 단정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석하는 순간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게 된다. 왜 바뀌지 않았는가. 왜 수십 년이 지나도 구성과 방식이 같을까.


일본의 디저트 문화는 여전히 ‘전통의 연장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보수적 성향, 기획자의 안전지향적 마인드, 그리고 새로운 실험을 감수하지 않는 시장 구조가 맞물린 결과다. 다양한 시도보다 검증된 안정에 기대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신뢰를 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창의력의 퇴보로 이어질 수 있다. 맛은 있지만 놀라움은 없고, 정갈하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나는 일본 빙수를 먹을 때마다 ‘익숙함’과 동시에 ‘멈춰있음’을 느낀다. 물론 누군가는 그런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거기엔 명확한 한계가 있다. 감각은 익숙해질수록 무뎌진다. 새로운 자극 없이 감동은 줄어들고, 감동 없는 음식은 결국 ‘소비’를 멈추게 한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빙수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고, 그 미니멀리즘은 오히려 기획력의 부족을 포장하는 수사처럼 느껴진다. 정제된 맛이라는 말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변화 없는 반복일 뿐이다. 이것이 일본 빙수의 정체성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약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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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진출한 설빙. 후쿠오카점과 도쿄 신오오쿠보점

한편 한국의 빙수는 매 시즌마다 놀라움을 준비한다. 새로운 조합, 새로운 콘셉트, 새로운 비주얼. 이건 소비자의 니즈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시장이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문화다. 디저트 하나에도 에너지가 흐르고, 그 에너지가 다시 감각을 자극한다. 누군가는 ‘너무 많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풍부하다’고 말하고 싶다. 기획과 창조의 역량은 풍성함 속에서 빛난다. 그것은 무질서가 아니라 역동성이고, 과잉이 아니라 능력이다.


여름이 되면 일본과 한국 모두 빙수를 먹는다. 하지만 그 한 그릇이 주는 인상은 다르다. 일본은 여전히 조용하고 익숙하다. 한국은 여전히 새롭고 크리에이티브하다. 나는 그 차이가 곧 시대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움직이는 문화와 멈춰 있는 문화, 실험하는 사회와 반복하는 사회. 빙수 한 그릇에도 그런 배경이 담긴다.


오사카에서 먹은 맛차 카키고오리는 깔끔했지만 짧았다. 서울에서 먹은 인절미 빙수는 진했고, 오래 남았다. 나는 지금도 후자의 기억을 더 자주 꺼내본다. 그리고 확신한다. 지금 이 시대를 더 잘 이해하는 빙수는, 한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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