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멸의 칼날, 일본 애니의 ‘국민적 서사’가 되기까지

by KOSAKA

2019년, 일본 애니메이션의 풍경은 한 작품으로 인해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고토게 코요하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2019~2020)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미 소년 점프 연재 당시부터 일정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던 만화였지만,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작품은 사회적 신드롬으로 확산되며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1979년 〈기동전사 건담〉이 ‘리얼 로봇물’의 개념을 열고 일본 애니메이션을 바꾸었던 것처럼, 〈귀멸의 칼날〉은 21세기 일본에서 ‘국민적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대표 사례가 되었습니다.


〈귀멸의 칼날〉의 줄거리는 단순하면서도 강렬합니다. 주인공 카마도 탄지로는 가족이 도깨비에게 몰살당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동생 네즈코마저 도깨비로 변해버립니다. 그는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해, 그리고 가족을 앗아간 원흉에게 복수하기 위해 ‘귀살대’라는 조직에 들어가 싸움을 시작합니다.


이야기는 인간과 괴물의 대립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단순한 선악 구도를 넘어서 인간성·연민·희생이라는 보편적 주제를 담아냅니다. 도깨비로 변한 존재들조차 과거에는 인간이었으며, 각자의 상처와 사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인공 탄지로가 적마저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장면은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작품을 단순한 전투물 이상의 이야기로 끌어올렸습니다.


이 작품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가장 큰 이유는 탁월한 애니메이션화에 있습니다. 제작사 유포터블은 이미 〈페이트 시리즈〉에서 압도적인 작화 퀄리티로 주목받은 바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본 전통화풍의 미학과 최첨단 디지털 연출을 결합해, 호흡과 검술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방식으로 구현했습니다.


특히 19화 ‘히노카미’ 에피소드에서 탄지로가 불꽃의 춤을 추듯 기술을 발휘하는 장면은 일본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애니메이션이 만들어낸 예술적 정점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이는 영상 연출이 어떻게 만화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애니메이션 방영 이후, 〈귀멸의 칼날〉은 단순한 인기작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이 되었습니다. 2020년 개봉한 극장판 〈무한열차편〉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도 일본 영화 사상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우며 400억 엔을 돌파했습니다. 이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넘어선 수치였습니다.


일본 사회 전반이 작품에 열광했고, 어린이부터 중장년까지 폭넓은 세대가 함께 즐겼습니다. 유니클로, 로손, 롯데리아 등 수많은 기업이 협업 상품을 내놓았으며, 지하철 광고, 패스트푸드점, 완구 매장, 서점 모두가 ‘귀멸’ 일색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일본 총리가 국회 연설에서 작품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9cec85a7-76df-46d2-80b5-409b5f06a843.png 극장 홀내 한편에 장식된 주인공 탄지로의 대형 피규어(왼쪽). 모든 좌석에 등장인물을 그려넣은 커버를 씌워놓았다(오른쪽).

이러한 대중적 확산은 과거 〈건담〉이나 〈드래곤볼〉이 이루어낸 문화적 파급력을 21세기에 재현한 것이었으며, 〈건담〉이 ‘청년의 상징’이었다면 〈귀멸의 칼날〉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국민적 서사’라는 점에서 성격이 달랐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또한 일본 전통 문화와 현대적 감각의 융합을 통해 독특한 정체성을 만들어냈습니다. 배경은 다이쇼 시대라는 근대 초기로, 일본 가옥과 기모노, 일본도 같은 전통 요소와 증기기관차와 전등 같은 근대 문물이 공존합니다. 이는 서구적 히어로 서사와 차별화된 일본적 색채를 작품에 부여했습니다.


호흡법, 검술, 가문의 전승 같은 설정은 무도 전통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현대의 젊은이들이 자기계발과 정신적 성장의 은유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메시지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품은 세대를 넘는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액션 판타지를 넘어 오늘날 일본 사회의 무의식을 비추기도 했습니다. 가족을 지키려는 욕망, 상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집단적 기억,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태도는 모두 일본 사회가 오랫동안 간직해온 정서였습니다.


재난과 불황, 팬데믹이 겹겹이 쌓인 21세기 일본에서, 고통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대리했습니다. 이는 패전 후 일본 사회가 희망의 이야기를 원했던 〈우주전함 야마토〉와도 맥을 같이 합니다. 다만 〈귀멸의 칼날〉은 보다 개인적이고 가족 중심의 정서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현대 일본인들의 ‘작은 행복에 대한 열망’을 담아냈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일본 내부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작품이 공개되면서 한국, 미국,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폭넓은 팬덤을 형성했고, 일본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세계 시장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일본도의 검술, 전통 의상, 일본식 가족애와 희생 정신 같은 ‘특정한 일본성’을 유지하면서도 해외 시청자에게 설득력을 얻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는 보편성은 특정 문화의 진정성을 통해서도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1979년 〈건담〉이 일본 청년문화와 오타쿠 문화를 상징하게 되었듯, 〈귀멸의 칼날〉은 2019년 이후 일본 사회 전체가 공유한 국민적 이야기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작품의 성공은 단순한 상업적 성과를 넘어 애니메이션이 여전히 일본 사회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또한 전통과 현대, 개인과 사회, 일본성과 보편성을 교차시키며 애니메이션이 문화적 상상력의 중심에 있음을 다시금 일깨워주었습니다.


〈귀멸의 칼날〉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어떻게 국민적 현상이 되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적인 사례입니다. 앞으로 또 다른 세대의 애니메이션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건담 이후, 귀멸까지’라는 문장은 일본 애니메이션사를 설명하는 중요한 축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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