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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먹거리에 깃든 삶이 있다》

레시피와 이야기가 만나는 식탁의 기록

by KOSAKA

이 글은 브런치 작가 Cha향기의 브런치북 <먹거리에 깃든 삶이 있다>에 대한 짧은 감상문입니다.


브런치북 「먹거리에 깃든 삶이 있다」는 먹거리 자체보다 음식을 통한 일상의 장면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담는 기록이라고 느꼈습니다. 접시에 오른 반찬 하나를 통해 상가의 부엌, 평일 저녁의 식탁, 장보기의 동선 같은 구체적인 장면들이 차례로 떠오릅니다.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누구와 어떻게 먹었는가에 시선이 머물고, 그때의 표정과 말투가 함께 기억됩니다.


첫 편의 장례 부엌 장면은 이 연재의 방향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상복을 여민 맏며느리가 부엌의 흐름을 정리하고, 그 손끝에서 나온 꽈리고추 멸치볶음이 문상객의 젓가락과 대화 속에서 의미를 얻습니다. 음식이 위로의 말이 되고, 상가의 리듬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과장 없이 전달됩니다. 어떤 맛은 슬픔과 함께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여러 편을 따라가다 보면 작가가 ‘처음의 맛’을 꾸준히 되짚는 방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초상집에서 처음 접한 잡채, 시장에서 처음 부쳐 본 부침, 어느 날부터 집안의 기본 반찬이 된 메뉴까지, ‘처음’이라는 순간은 늘 사람과 장소, 사정이 함께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독자는 조리 비법보다 그 음식을 둘러싼 말과 표정, 접시를 건네는 손의 움직임에 더 주목하게 됩니다.


이 연재의 형식은 이야기와 조리 안내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힘을 얻습니다. 장면의 여운 뒤에 이어지는 재료 목록과 손질 요령, 불 조절과 시간 표기는 감정의 흐름을 생활의 동작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합니다. 독자는 방금 읽은 장면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주방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 행동을 떠올립니다. 서사가 기억을 불러오면 레시피가 그 기억에 손잡이를 달아 주는 식입니다.


중반부의 ‘돌봄과 식사’ 대목은 담담한 서술이 장점입니다. 위루나 연하장애로 ‘먹는다’의 의미가 달라지는 상황에서, 식탁은 형태를 바꾸어 다시 꾸려집니다. 일정 기간은 영양식과 보조 제품이 식사를 대신하고, 공급 사정이나 비용, 제도적 조건 같은 현실 변수가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작가는 어려움을 감정적으로 부풀리지 않고, 왜 그 선택이 필요했는지, 무엇이 도움이 되었는지,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는지를 차분히 정리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장면들도 인상에 남습니다. 온라인 인연이 산지 재료로 이어지고, 그것이 부침 한 장, 반찬 한 접시로 완성되어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낫게 만듭니다. 나눔이 맛을 바꾸고, 바뀐 맛이 관계의 느낌을 바꾼다는 사실이 전달됩니다. 작은 배려가 실제 도움이 되고, 그 경험이 다시 글이 되어 돌아오는 흐름 속에서, 플랫폼과 부엌, 텍스트와 생활이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애도와 상차림이 겹치는 장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드러납니다. 눈물의 시간에도 식사가 준비되고, 설거지가 이어지고, 다음 끼니가 계획됩니다. ‘먹는 즐거움’이 잠시 멀어진 자리에서도 가족이 살아갈 힘을 마련하려는 태도가 보입니다. 이때 음식은 영양과 맛이 아니라 관계와 책임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독자는 자신의 집에서 자주 만드는 반찬들의 출처를 떠올리고, 누구에게서 어떻게 배웠는지, 어떤 순간에 그 음식을 꺼내 오는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됩니다.


이 책의 문장들은 설명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장면들을 보여주는데, 냄비에서 끓는 소리, 젓가락이 잠시 멈추는 순간, 접시를 바꾸며 생기는 작은 동선 차이 같은 요소들이 핵심입니다. 덕분에 독자는 각자의 부엌과 식탁을 떠올리게 됩니다. 사투리와 생활어는 과하지 않게 사용되어 현장감을 남기고, 인물을 설명하기보다 말 몇 마디와 손놀림으로 기억하게 만듭니다.


연재의 말미에는 나눔으로 마무리되는 장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재료가 건네지고, 그 재료가 반찬으로 돌아오며, 그 과정이 글이 됩니다. 글을 쓰는 일과 밥을 하는 일의 거리가 실제로 멀지 않다는 점을 조용하게 보여 줍니다. 둘 다 결국 가까운 사람의 하루를 견디게 돕는 일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먹거리에 깃든 삶이 있다」는 한 집안의 식탁 이야기를 통해 많은 독자가 공감할 수 있는 생활의 장면을 차분하게 모아 둔 책입니다. 음식은 취향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책임의 형태가 될 수 있고, 기쁨과 슬픔이 같은 조리대에서 번갈아 지나가는 일상을 잘 보여 줍니다.


이 연재는 문장의 리듬과 등장하는 음식들의 간이 비슷한 온도로 맞춰져 있어, 읽고 나면 냉장고 앞에서 무엇을 꺼내 누구와 나눌지 자연스레 떠올리게 됩니다. 과장된 결론 없이 생활 속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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