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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우린 서로를 알아보는 유일한 존재였다

레드밸벳 <Psycho> 뮤비 감상문

by KOSAKA

레드벨벳의 〈Psycho〉는 처음부터 불안하다. 현악기로 시작하는 오프닝의 긴장감, 한층 느려진 템포, 그리고 고딕풍 미장센은 이 노래가 단순한 러브송이 아니라는 신호다. 노랫말은 "우린 서로를 알아보는 유일한 존재"라며,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을 노래한다. 그러나 그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의 정체는 무엇일까. 뮤비를 찬찬히 보면, 그 관계의 축이 이성애적 구도가 아니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다.


뮤비에는 ‘남성’이 없다. 전형적인 사랑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은 오로지 다섯 명의 여성뿐이다. 그녀들은 서로를 응시하고, 닮아가고, 뒤섞인다. 마치 한 인물의 서로 다른 자아들이 분열과 결합을 반복하는 듯하다. 하지만 그 시선의 결이 단순한 자아의 내적 분열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여성들 사이의 감정적 공명으로 읽히는 순간이 있다. 그 미묘한 감정선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다. 〈Psycho〉는 여성들 사이의 감정, 욕망, 동일시가 얽히는 퀴어적 사랑의 서사로 읽을 수 있다.


뮤직비디오는 빅토리아풍의 저택, 유리창, 흰 드레스, 거울 등으로 채워져 있다. 모두 ‘자기 반사적 이미지’를 상징하는 장치들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여성들, 서로를 마주보며 춤추는 장면들, 그리고 닮은 얼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구도는, **‘나와 타자의 경계가 무너지는 사랑’**을 암시한다. 이 관계 속에서 여성들은 서로의 분신이자 연인이며, 현실 속 존재이자 내면의 또 다른 자아다. 사랑의 대상이 특정한 ‘그’가 아닌, 닮은 ‘너’로 변모하는 순간, 이 서사는 이미 규범적 사랑의 언어를 벗어난다.


〈Psycho〉의 퀴어성은 노골적인 제스처보다 감정의 구조와 시선의 교환 방식에서 드러난다. 일례로, 안무에서 멤버들은 서로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거나 손끝으로 얼굴을 어루만진다. 이는 단순한 안무 구성이 아니라, 감정의 교류를 시각화한 상징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연인처럼, 때로는 서로를 감싸 안으며, 또 때로는 밀어낸다. 이 복합적인 움직임은 ‘정상적인 사랑의 형태’에 대한 사회적 정의를 흔든다. 이 노래에서의 ‘psycho’는 미친 사랑이 아니라, ‘정상’이라는 이름의 경계를 넘어선 감정의 다른 언어를 뜻한다.


그들의 사랑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저택 안, 창문 안, 거울 속. 그곳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단절된 세계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시선은 다섯 명의 여성 자신들이다. 서로를 바라보고, 자신을 비추며, 마침내 구분되지 않는다. 이것은 단지 미장센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여성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한 선언이다. 그 시선은 남성의 시선(male gaze)을 거부하고, 여성 내부의 관계와 감정만으로 구성된 독립된 세계를 그린다.


이러한 퀴어적 시선은 우연이 아니다. 레드벨벳은 이전에도 〈Monster〉(아이린&슬기)에서 명시적으로 여성 간의 감정과 욕망을 다룬 바 있다.〈Psycho〉는 그 전 단계에 놓인, 보다 은유적이고 감정 중심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해받지 못하는 사랑’, ‘서로밖에 모르는 두 사람’이라는 가사와, ‘세상은 우리를 미쳤다고 하지만 우린 괜찮아’라는 메시지는, 사회적 비규범 관계로서의 사랑을 연상시킨다. ‘미쳤다’는 낙인이 곧 ‘정상에서 벗어난 사랑’을 의미한다면, 이 곡은 퀴어의 감정을 완곡하게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음악적으로도 이 곡은 긴장과 해소의 리듬을 반복한다. 보컬은 속삭이듯 시작해 절규로 치닫고, 다시 정적 속으로 가라앉는다. 이 흐름은 감정의 억압과 폭발, 사회적 시선과 내면의 진실 사이의 진자 운동을 닮았다. 이런 구조 역시 사랑이 단순한 낭만이 아니라 자기 억압과 해방의 투쟁임을 드러낸다. 사랑의 언어가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적 문법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Psycho〉가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곡은 사랑의 금기를 직접적으로 외치지 않으면서도, 금기의 존재 자체를 보여준다. 다섯 명의 여성은 누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명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교차하고, 표정은 닮고, 감정은 복제된다. 결국 ‘사랑’이라는 말조차 사라진 자리에서, 남는 것은 서로를 향한 이해와 공명, 그리고 침묵 속의 연대감이다. 이것이야말로 퀴어 서사의 본질이다. 말할 수 없는 사랑, 그러나 존재하는 사랑.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멤버들은 어두운 공간 속에서도 서로를 바라본다. 그들은 미쳤다고 불리지만, 눈빛은 차분하다. 사랑의 정상성과 비정상성, 남녀라는 이분법,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모두 사라진다. 남는 것은 단지 ‘서로를 알아보는 눈’뿐이다. 그 시선 속에서 그들은 더 이상 ‘psycho’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인간적인 감정, 사회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수한 유대의 상태에 이른다.


〈Psycho〉는 이렇듯 사랑을 정상의 언어로 번역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세상이 붙인 미친 사랑이라는 이름은, 사실은 다른 형태의 진심일 뿐이다. 이 노래는 그 진심이 얼마나 위태롭고도 아름다운지를 보여준다. 즉, 〈Psycho〉는 단순한 팝 러브송이 아니라, 정상성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퀴어한 사랑의 초상이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모든 감정이 결국은 사회가 만들어낸 틀을 넘어설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이 노래는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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