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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그럴 수 있다

다 아는 얘기

by KOSAKA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것은 거대한 불행이 아니라, 사실은 아주 사소한 집착들입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그리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들. 이런 것들이 조금씩 쌓여 마음의 공간을 점점 좁게 만듭니다. 그러나 삶은 본래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쌓인 불필요한 짐을 덜어내고,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숨이 트입니다. 인생을 가볍게 만드는 힘은 바로 그 한마디에서 시작됩니다. “그럴 수 있지!”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는 일은 결국 자신을 반복해서 다치게 하는 일입니다. 이미 끝난 일은 현실이 아니라, 머릿속에 남은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때의 감정과 장면은 지금의 내가 만들어 낸 기억으로만 존재합니다. 바꿀 수 없는 일을 붙잡고 있으면 현재가 묶이지만, 그 기억을 다르게 해석할 수는 있습니다. 힘들고 아팠던 일이라도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한 부분이라 여긴다면, 후회는 의미로 바뀝니다. 과거의 상처는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습으로 남는 것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도 사실은 스스로 만든 환상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계속 상상하면서 그 안에서 불안을 키웁니다. 하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영역입니다. 계획이 어긋나더라도,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그것이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인생은 늘 변하고, 그 변화 속에서 새로운 길이 생깁니다. 그러니 내일을 조종하려 하기보다 오늘에 집중하는 편이 낫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말에 스스로를 옭아맵니다. 하지만 그 기준이 진정으로 자신의 바람인지, 아니면 사회가 정한 규칙을 따라가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타인의 기대와 세상의 틀에 맞추려 하면 할수록 마음은 점점 자유를 잃습니다.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일이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정한 방식대로 살지 않아도 인생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비로소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타인의 말에 쉽게 흔들리는 이유는, 우리가 그 말에 스스로 무게를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말이 상처가 되는 것은 그 말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 말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말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붙잡지 않으면, 그것은 그저 지나가는 소음일 뿐입니다. 누군가 비난의 말을 던진다면, 그것은 상대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상대가 던진 돌은 내가 주워 들 때만 아픔이 됩니다. 그냥 두면 그저 돌멩이일 뿐입니다.


비교 또한 불필요한 고통을 만듭니다. 남보다 느리다고 해서 틀린 길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의 속도와 리듬이 다를 뿐입니다. 남이 앞서간다고 불안해하기보다, 지금 내 발걸음이 닿은 자리를 바라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 여행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며 “오늘도 살아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다면, 그 사실 하나로 충분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우리는 종종 불가능한 일을 시도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바꾸려 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완전히 바꿀 수 없습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 관계는 한결 편안해집니다. 상대를 조정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그 사람은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하면 갈등이 줄어듭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종종 타인의 성격이 아니라, 그를 바꾸려는 나의 의지입니다. 바꾸려 하지 않고, 그저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다면 마음은 훨씬 평온해집니다.


감정 또한 억누르려 할수록 더 커집니다. 분노나 질투 같은 감정이 밀려올 때, 그것을 부정하지 말고 그냥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아, 지금 내가 화가 났구나.” 그렇게 인정하면 됩니다. 감정은 구름처럼 생겼다가 흩어집니다. 이유를 따지고 이름을 붙이면 오래 머물지만, 그냥 흘러가게 두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감정을 다스리는 힘은 억제에서가 아니라 관찰에서 나옵니다.


“그럴 수 있다”는 말은 냉정한 무관심이 아니라, 성숙한 거리두기입니다. 사랑 역시 그렇습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내 기대대로 행동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허락입니다. 붙잡는 마음은 집착이 되지만, 그저 함께하려는 마음은 애정이 됩니다. 내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기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결국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계획이 어긋나고, 마음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아도 그것이 인생의 결함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 삶의 질감이 있습니다. 완벽을 포기할 때 마음은 가벼워지고, 실수를 받아들일 때 인생은 온기를 얻습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채로도 하루를 이어가는 일입니다.


“이 정도면 됐다”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평온의 표현입니다. 세상을 완벽히 이해하려 하지 않고, 모든 일을 통제하려 하지 않을 때 삶은 단순해집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세상과 자신을 화해시킨 사람입니다. 그것은 게으름도 포기도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받아들인 사람의 태도입니다. 내려놓음 속에서 평온을 얻고, 비워낸 자리에서 진짜 자신을 만나는 것. 그것이 인생을 편안하게 살아가는 가장 단순하고도 확실한 방법입니다.


세상일은, 그 사람은, 내가 겪었던, 내가 저질렀던 그 일은...그럴 수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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