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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연애

by KOSAKA

카페에 앉은 지 두 시간째였다.
주말 오후, 손님들로 가득한 테이블 사이에서 나는 글을 쓰는 척만 하고 있었다. 노트북은 켜져 있었지만 화면은 오래전부터 잠들어 있었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핸드드립도, 문장도, 생각도 미지근했다. 산미가 도드라지는 커피는 처음엔 기분을 깨웠지만, 지금은 입안에 남은 신맛이 오히려 집중을 방해했다.


카페 스피커에서는 빌 에반스의 〈Waltz for Debby〉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베이스가 부드럽게 울리고, 잔잔한 피아노가 공간의 온도를 조금씩 낮췄다. 그 음이 내 안의 공백과 닮아 있었다.


창가 쪽 테이블에 앉은 연인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여자 쪽으로 몸을 기울였고,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들 사이에는 세상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누군가의 웃음이 내 안쪽의 낡은 문을 무심히 열어버릴 때가. 그 문 너머에, 그녀가 있었다. 몇 년 전 겨울이었다. 나는 번역 일을 막 그만두고 소설을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참이었다. 하루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었고, 세상과 단절된 채로 하루에 커피 다섯 잔씩을 마셨다. 그녀는 그런 나를 답답해했다.


“밖으로 좀 나가요. 사람도 좀 만나고.”


나는 그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지만, 결국 그녀를 따라 나가게 되었다. 겨울 햇살이 눈부신 오후였고, 그녀는 흰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그 겨울 이후, 내 하루는 전부 그녀로 채워졌다. 우리는 자주 만나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이유도 없이 걸었다. 대화의 대부분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그 사소함이 이상하게도 중요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 내 하루의 기분이 결정됐다.


그 시절의 나는 믿었다. 사랑이란 건 그런 거라고. 다른 모든 걸 잃어도 좋을 만큼 한 사람에게 몰입하는 것. 그러나 그 몰입은 곧 불안으로 이어졌다. 그녀가 답장을 늦게 하면, 내가 보낸 문장을 읽고도 아무 말이 없으면, 가슴 한구석이 타들어갔다. 그녀가 말없이 창밖을 보던 순간들, 그 시선 끝에 내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숨을 고르지 못했다.


“요즘 왜 이렇게 예민해요?”

그녀가 조용히 물었던 날이 있었다. 그 말 이후, 대화의 온도는 조금씩 식어갔다. 나는 이유를 몰랐다. 다만, 그녀가 내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만 느꼈다.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우린 너무 서로를 꽉 붙잡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그 후 한동안 나는 그녀의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카페를 가면 그녀가 앉던 자리를 찾았고, 영화를 보면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때 내가 사랑했던 건 그녀 그 자체보다, ‘사랑하고 있다’는 상태였다는 걸.


지금, 그 연인을 보며 나는 오래전의 나를 떠올린다. 그들도 언젠가 이 순간을 잃어버리겠지. 하지만 지금의 그들에게는, 그걸 상상할 틈조차 없을 것이다. 그게 사랑의 무서운 점이다.


카페의 조명이 조금씩 어두워졌다. 나는 노트북을 닫고,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나만의 사전’이라 적힌 표지의 낡은 노트. 빈 페이지에 천천히 펜을 움직였다.



연애【恋愛】특정한 상대에게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듯한 사랑을 품고, 늘 그 사람을 생각하며, 둘만 있고 싶고, 둘만의 세계를 나누고 싶다고 바라며, 조금이라도 의심이 생기면 불안해지는 상태.



마침표를 찍은 뒤, 나는 펜을 내려놓았다. 창가의 연인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여자는 남자의 팔에 손을 얹었다. 그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쓴맛이 났다. 하지만 그 쓴맛이 나쁘지 않았다. 아마 그것이, 사랑이 지나간 자리의 맛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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