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오사카에서의 1096일을 돌아보며

읽고 달리고 쓰며 지나왔던 오사카에서의 추억 (하루키 아님 주의)

by KOSAKA

오사카에서의 3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내 생의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정직한 기록이었을지 모른다. 오늘로 그 마지막 장을 덮는다. 창밖으로 보이는 오사카의 풍경은 언제나처럼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최첨단 빌딩들의 매끄러운 유리 외벽 옆으로, 거미줄처럼 뒤엉킨 전신주와 빛바랜 전선들이 늘어선 좁고 구질구질한 뒷골목이 공존한다. 역사와 현대가 충돌하지 않고 그저 나란히 서 있는 이 도시의 모습은, 어쩌면 내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의 속성과도 닮아 있었다.


나는 소란스러운 것들을 경계하며 살았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난바나 우메다 같은 번화가는 내게 동경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피해야 할 장애물에 가까웠다. 유명하다는 맛집의 줄이나 화려한 네온사인이 주는 압박감을 견디는 대신, 나는 나만의 정적인 요새를 구축하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짐을 다 싸고 비어가는 방안에 앉아 있으니, 마음 한구석에 묘한 일렁임이 인다. 조금은 더 가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 그 수많은 인파 속으로 나를 한 번쯤은 내던져 보아도 좋았을 텐데, 나는 지나치게 나를 보호하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그 북적임 속에 숨겨진 오사카의 진짜 표정을 놓친 것 같아 뒤늦은 아쉬움이 밀려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이 결코 빈손은 아니었음을 안다. 오히려 그 정적인 고립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더 깊게 대면할 수 있었다.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단연 꾸준하고 밀도 높은 독서였다. 현지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파고들었던 일본 역사소설들은 내가 딛고 선 땅의 과거를 이해하게 해주었고, 직업적 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해 준 국제 정치 서적들은 거시적인 안목을 선사했다. 여기에 국내의 화제작들을 놓치지 않고 읽어내며 고국과의 정서적 끈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오사카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더 넓은 세계와 조우했다.


또한 임기 막바지에 시작한 러닝은 내 삶에 예상치 못한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하루의 업무를 마치고 퇴근 후에 나섰던 그 길 위에서, 나는 비로소 하루의 피로를 털어내고 오사카의 밤 공기를 온전히 들이마실 수 있었다. 어둠이 내린 도시의 풍경을 배경으로 지면을 박차고 나갈 때, 비로소 나는 이 도시의 피부를 온전히 느끼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일찍 달리기 시작했다면 이 도시의 사계절을 더 생생하게 내 몸에 새길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지만, 이제라도 그 즐거움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하기로 한다.


직장 생활 역시 큰 대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현지 직원들과의 관계는 무난했고, 서로의 선을 존중하며 신뢰를 쌓아온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수확은 작년 4월,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글쓰기를 시작한 일이다. 일상의 단편들을 문장으로 옮기기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일상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스쳐 지나갈 뻔한 감정들에 이름을 붙이고, 나만의 서사를 구축해 나가는 과정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치유와 성장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400여편의 글을 썼는데,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그 안에서 공감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 도시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물론 완벽한 마무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후회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 한편에 남는 몇 가지 못다 한 일들이 있다. 앞서 말한 유명 관광지들을 등한시했던 것과 러닝을 너무 늦게 시작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시바 료타로 기념관을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역사 소설에 매료되어 그의 문장을 쫓으면서도, 정작 지척에 있는 그의 숨결을 확인하러 가는 길에는 게으름을 피웠다. 그것은 아마도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안일함이 만들어낸 구멍일 것이다. 우리는 늘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깨닫곤 한다.


이제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환경인 지방 근무가 기다리고 있다. 오사카에서의 3년이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수련의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그 단단함을 바탕으로 세상과 더 깊게 부딪히는 실전의 시간이 될 것이다. 공적으로는 조직의 발전에 기여하고, 사적으로는 내 삶의 결을 다듬는 글쓰기와 퇴근 후의 러닝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아쉬움은 새로운 곳에서의 열정으로 치환될 준비가 되었다.


오사카의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빌딩 사이로 부는 바람이 차갑지만, 내일 떠나는 발걸음은 가벼울 것 같다. 최첨단과 구식 전신주가 공존하던 이 도시처럼, 내 안의 고독과 열정, 아쉬움과 만족도 이제는 조화롭게 자리를 잡았다. 지난 3년, 오사카라는 무대 위에서 나는 충분히 방황했고 충분히 행복했다. 이제 후회 없이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 한다. 내가 써 내려갈 다음 에세이의 첫 문장은 아마도 새로운 도시의 낯선 공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곳이 어디든, 나는 다시 읽고, 달리고, 쓰며 나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안녕, 오사카. 3년간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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