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새로운 언어와 시대에 빠져들다

by KOSAKA

2011년, 나고야에서 새로운 근무를 시작하며 낯선 땅의 삶이 펼쳐졌다.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공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자연스러운 갈증은 일본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굳은 결심으로 펼쳐 든 일반 역사 서적들은 활자만 나열되어 있을 뿐, 좀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생동감 없는 사실의 나열로는 그들의 진면목을 느낄 수 없었다.


역사를 조금 더 흥미롭고 호흡이 살아있는 방식으로 만날 수는 없을까. 고민 끝에 역사소설로 눈을 돌렸고, 그때 내 앞에 나타난 거대한 산맥이 바로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였다.


그의 수많은 걸작 중 내가 처음으로 집어 든 책은 『나라 훔친 이야기(国盗り物語)』였다. 기름장수에서 미노의 국주(國主)로 신분 상승을 이룬 사이토 도산, 그리고 천하포무의 야망을 불태운 오다 노부나가의 이야기는 단숨에 나를 16세기 전국시대 한복판으로 끌고 들어갔다.


하지만 첫 만남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나를 가장 곤혹스럽게 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강렬하게 매료시킨 것은 다름 아닌 '언어'였다. 현대 일본어와는 판이하게 다른 고풍스러운 어휘들, 무장들의 독특한 화법, 낯선 역사적 관용구들은 마치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제3의 외국어를 마주한 것 같은 묘한 막막함을 안겼다. 사전을 뒤적이며 한 문장 한 문장 암호를 해독하듯 읽어나가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더디게만 넘어가던 페이지에 속도가 붙고, 낯설기만 하던 옛 시대의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시대의 어휘들을 익혀나가는 과정은 고단함을 넘어, 완전히 새로운 언어적 세계를 정복해 나가는 짜릿한 쾌감이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자 소설 밖의 현실 세계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흔히들 나고야를 두고 특징 없는 '무료한 도시'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바 료타로의 렌즈를 통해 바라본 나고야와 중부 지방 일대는 전혀 다른 숨결을 지닌 거대한 역사의 무대였다. 주말이면 나는 소설 속에 등장했던 지역과 사찰, 오래된 성곽들을 직접 찾아 나섰다.


책에서만 읽던 역사의 현장, 무장들의 치열한 지략과 칼부림이 오갔던 그 장소에 직접 서서 소설 속 묘사와 눈앞의 풍경을 겹쳐보는 일은 내게 각별한 경험이었다. 활자로만 짐작하던 거대한 서사가 실제 공간의 흙냄새와 공기로 치환될 때의 그 벅찬 감각은, 타국에서 느끼는 일상의 무료함을 단숨에 잊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그 강렬했던 첫 경험 이후, 나는 시바 료타로라는 작가에게 완전히 매료되어 그의 소설들을 모조리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 글은 2011년 나고야의 밤, 사전을 뒤적이며 옛 일본어와 씨름하던 한 한국인이 어떻게 일본 역사소설의 거장과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창조해 낸 방대한 세계가 얼마나 압도적인지에 대한 기록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독후감도 연재중입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