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케이 신문 문화부 기자 시절

취재와 사료 수집의 뼈대를 세우다

by KOSAKA

태평양 전쟁의 포화가 가라앉고 패전의 허탈감이 일본 전역을 휩쓸던 시기, 20대 청년 후쿠다 데이이치(훗날의 시바 료타로)는 몽골어를 전공한 학도병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안고 폐허가 된 사회로 돌아왔다.


국가라는 거대한 시스템이 어떻게 그토록 무참하게 실패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뼈저린 의문과 분노는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았지만, 당장 현실적인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는 과제가 그의 앞에 놓여 있었다.


1948년 신오사카 신문사에 입사하며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딘 그는, 이후 산케이 신문사로 자리를 옮겨 1961년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위해 퇴사할 때까지 약 13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신문 기자로 살았다.


이 시기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었으나, 훗날 일본 역사 소설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시바 문학'의 거대한 뼈대가 조용히, 그러나 매우 단단하게 구축되던 결정적인 수련기였다.


그가 기자로서 주로 담당했던 분야는 교토와 오사카 지역의 대학, 종교, 문화재, 그리고 예술계였다. 정치나 사회부의 치열한 사건 사고 현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이른바 '문화부' 기자로서의 생활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시바 료타로라는 천재적인 작가가 탄생하기 위한 완벽한 인큐베이터가 되어주었다.


특히 천 년의 고도인 교토를 무대로 취재 활동을 벌였다는 것은 그에게 크나큰 행운이자 운명이었다. 교토의 수많은 사찰과 신사, 그리고 유서 깊은 가문들과 대학의 연구실에는 일반인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방대한 양의 고문서와 사료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젊은 신문 기자 후쿠다 데이이치는 특유의 붙임성과 예리한 지성,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과 역사에 대한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을 무기로 이 닫힌 문들을 하나둘씩 열고 들어갔다.

tempImage1UtJXE.heic 신문기자 시절은 훗날 '시바 문학'의 뼈대가 되는 철저한 현장 취재와 예리한 사료 분석 능력을 길러낸 수련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고승들과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대학의 역사학자들과 토론을 벌이며,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옛 문헌들을 직접 열람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사(正史)로 기록된 건조한 활자 이면에 숨겨진, 살아 숨 쉬는 인간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시대의 이면을 읽어내는 법을 본능적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기자라는 직업은 그에게 철저한 현장주의, 즉 '발로 뛰는 취재'의 중요성을 각인시켰다.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현장에 직접 가보아야 한다는 원칙은 신문 기자의 기본이자 생명이다.


시바 료타로는 이 원칙을 과거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그대로 적용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이 벌어졌던 무대를 직접 찾아가 지형을 살피고, 거리를 가늠하며, 그곳에 서린 바람과 햇살의 느낌까지 온몸으로 흡수하고자 했다.


훗날 그의 작품에서 전투의 진형이나 인물의 이동 경로가 마치 눈앞에서 보듯 생생하게 묘사되고, 지리적 환경이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전개에 미치는 영향이 탁월하게 분석되는 것은 바로 이 시절에 몸에 밴 현장 답사 습관의 결과물이다.


훗날 그의 대표적인 기행 수필 시리즈인 『가도를 가다』에서 보여준, 끊임없이 길을 걷고 사람을 만나며 역사의 흔적을 더듬는 그 집요한 발걸음의 시작점 역시 바로 이 신문 기자 시절의 취재 수첩과 낡은 구두에 있었던 것이다.


또한,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기자로서의 훈련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고, 단편적인 사실들을 엮어 하나의 일관된 맥락을 만들어내는 것은 기자의 핵심 역량이다.


시바 료타로는 과거의 문헌을 대할 때에도 특정 이데올로기나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마치 오늘 아침에 벌어진 사건을 취재하는 데스크의 기자처럼 냉철하고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는 하나의 사건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기 위해 승자의 기록뿐만 아니라 패자의 기록, 공식적인 공문서뿐만 아니라 개인의 일기나 편지, 심지어 민간에 떠도는 야사나 전설까지 무서운 속도로 수집하고 교차 검증했다.


방대한 분량의 복잡한 사료들을 소화하여 대중이 읽기 쉽고 흥미로운 한 편의 기사로 뽑아내는 훈련을 매일 반복했던 그는, 훗날 아무리 난해하고 복잡한 역사적 격동기라도 독자들이 단숨에 빠져들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서사로 재구성하는 마법 같은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의 독특한 문체 역시 신문 기사 쓰기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할 수 있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은 수식어가 지나치게 많거나 감상에 젖은 문장을 철저히 배제한다. 대신 짧고 간결하며 힘 있는 문장들이 속도감 있게 이어지며, 팩트(fact)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이는 지면의 한계 속에서 독자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신문 기사의 특성과 정확히 일치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의 소설 속에서 작가가 수시로 이야기의 흐름에 개입하여 독자에게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거나 인물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덧붙이는 특유의 서술 방식이다.


이는 마치 기자가 기사 속에서 사건의 의미를 해설하고 논평하는 '기자 수첩'이나 '칼럼'의 형식과 매우 닮아 있다. 독자들은 소설 속 인물들의 대화에 빠져들다가도, 어느 순간 현대의 지성인인 작가(혹은 노련한 기자)가 툭 던지는 예리한 통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이 기존의 낡은 역사 소설들과 시바 문학을 구분 짓는 가장 큰 매력이자 특징이 되었다.


신문사라는 조직 생활 자체도 그에게 인간 군상을 관찰하는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다양한 부서의 기자들, 편집국장의 결단, 마감을 앞둔 사무실의 팽팽한 긴장감, 그리고 취재원들과의 미묘한 심리전 등 매일매일 부딪히는 조직 사회의 현실은 그가 훗날 전국시대의 다이묘들이나 막말의 지사들이 벌이는 권력 투쟁과 정치적 역학 관계를 묘사하는 데 귀중한 실증적 데이터가 되었다.


그는 과거의 영웅들을 구름 위의 신화적 존재로 그리지 않고, 철저하게 현실의 정치판과 조직 속에서 고뇌하고 타협하며 때로는 실책을 범하기도 하는 생생한 '현대인'의 모습으로 환생시켰다.


이처럼 인간의 권력 의지와 조직의 생리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는 매일 아침 출근 만원 전철에 시달리며 신문사 편집국이라는 치열한 현실 정치의 축소판을 경험했던 기자 후쿠다 데이이치의 땀방울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0년, 그는 아직 신문사 문화부 기자로 재직 중이던 시절에 쓴 닌자 소설 『올빼미의 성』으로 일본 대중문학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나오키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했다. 낮에는 신문 기자로 기사를 쓰고 밤에는 소설가로 원고지를 채우는 고된 이중생활 속에서도 그는 결코 취재와 사료 수집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설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그는 더욱 철저하게 사료를 파고들었고, 취재의 범위를 일본 전역으로 넓혀갔다. 결국 1961년, 밀려드는 원고 청탁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정들었던 신문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전업 작가의 길로 나섰다.


그러나 그가 신문사 문을 나섰다고 해서 기자의 본성을 버린 것은 결코 아니었다. 대상이 '현재'에서 '과거'로, 매체가 '신문'에서 '소설'로 바뀌었을 뿐, 그는 여전히 진실을 향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역사의 현장을 누비며 숨겨진 인간의 드라마를 발굴해내는 영원한 기자였다.


신문 기자 시절 13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으로 체득한 취재의 방법론과 사료를 다루는 엄정한 시선, 그리고 간결하고 호소력 짙은 문장력은 이후 수천만 부가 팔려나간 대작들을 탄생시키는 가장 튼튼하고 굳건한 뼈대가 되어 일본 문학사에 굵직한 궤적을 남기게 된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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