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가 출범한 지 30년이 된 모양이다. 한 세대가 흘렀다. 오랜동안 국내 유료방송시장의 독점 사업자로 미디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사람은 물론, 기업과 산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CI
나는 케이블TV 30년 역사 가운데 절반 이상을 국회와 청와대,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정책을 담당했다. 그리고 절반의 세월은 대학에서 케이블TV를 비롯한 미디어산업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보냈다. 실제로 케이블TV의 황금기는 내가 국회에서 법의 기초를 만들고, 청와대에서 미디어정책을 직접 지휘했던 국민의정부, 참여정부 시절이었다.
케이블TV사업자들에게 여러 차례 혁신과 재도약의 기회도 제공했다. 특히 케이블TV의 디지털 전환은 내가 직접 챙겼다. MSO의 CEO와 오너, 그리고 케이블TV 협회장을 직접 만나서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줄 것을 요청했다.유료방송 경쟁 매체인 IPTV 도입 전 케이블TV가 대비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그러나 그들은 케이블TV의 혁신 대신 IPTV 도입을 저지하는데만 시간과 에너지를 온통 쏟아부었다. 업계의 구조조정을 위한 MSO M&A의 물길도 내가 터주었다. 그 덕분에 케이블TV 매각을 통해 1조원을 손에 쥔 운 좋은 오너도 등장했다(퍼스트 펭권을 자임한 그 사람의 복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출처: 뉴스토마토 (2023. 4. 10)
케이블TV업계에 근무했거나 지금도 근무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산업의 전성기 때 케이블TV의 디지털 전환과 신규 서비스 도입을 서두르고, 구조조정을 했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후회를 한다. 그러나 늦었다. 기차는 플랫폼을 떠난 지 한참 되었다.
정책을 담당했던 내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아쉬움이 크다. 케이블TV는 정부 허가 사업이었던 만큼 규제 당국인 정부와 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 아니 개별 케이블TV 기업들(특히 SO) 경영전략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과는 기업과 업계 내부 '혁신의 실종'으로 나타났다. '가입자 기반 수입'이라는 편안한 BM에만 매달려 새로운 기술 및 서비스 개발에 적극 나서지를 않는 자충수를 둔 것이다. 도낏자루 썩는 것을 모르고 안주한 탓이었다(물론 실무자들의 혁신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4 케이블TV방송대상 수상작
지금 케이블TV는 기술발전이라는 시대의 흐름과 이용자들의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IPTV, OTT에 밀려 선두 자리를 내주었다. 케이블TV라는 본업 자체는 '1층 밑 지하실'로 끝없이 쇠락하고 있다. 출범 30주년 행사에 맞춰서 '함께 열어갈 미래'를 얘기하지만, 케이블TV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지금 잘 나가는 미디어와 콘텐츠 기업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기업이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그래서 소비자들이 외면하는 것은 한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