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일방적인 공급과 소비의 형태가 아니라 공동 제작과 크로스 컬처 기반의 현지화가 필요합니다." - 최인숙 TRA미디어 대표
최근 K-콘텐츠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과 소비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이제 한류는 특정 지역을 넘어서 세계적 팬덤을 확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륙별로 보면 단연 동남아시아가 한류의 진원지이자 핵심 소비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조사결과를 보더라도 태국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한류 팬이 가장 많고, 충성도도 높은 것으로 나온다. 한국콘텐츠진흥원(KOCCA)이 발표한 '2023년 K-콘텐츠 해외진출 현황조사'에 따르면 K-콘텐츠에 대한 소비자들의 글로벌 지수(K-GSI, 전체 평균 62.8)에서 태국(72.1점), 베트남(70.0점)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매우 높게 나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최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K-콘텐츠 소비를 넘어서 자국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태국이다.
패통탄 친나왓 태국 총리
태국은 2018년 디지털 방송 전환, 모바일 보급 확산 등으로 인터넷 이용인구가 빠르게 늘어나고, 제작 현장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등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특히 패통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신임 태국 총리는 태국 국가소프트파워전략위원회의 설립 및 운영을 주도하였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을 롤모델로 태국의 콘텐츠 산업 육성을 전담할 기구로 태국콘텐츠진흥원(THACCA) 설립에도 적극적이다. THACCA는 내년에 정식 출범할 예정이다.
10월 11일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디지털 혁신 페스타(DINNO) 2024' 부대행사로 열린 'Future Tech Conference 2024'의 'K엔터테크 세션'에서 '한류4.0-AI시대 상호협력 및 한류의 미래'를 주제로 패널토론이 진행되었다. 고삼석 동국대 AI융합대학 석좌교수(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가 좌장으로 토론을 진행했고, 패널로는 최인숙 TRA미디어 대표[태국], 이선우 JTBC PD[베트남], 임패여(Julia Lim) 남서울대 교양대학 교수[말레이시아], 한정훈 K엔터테크허브 대표[글로벌]가 참여하여 동남아시아 지역의 한류 현황, 한국과 동남아시아 국가 간 교류 협력 강화 등 한류의 발전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 가운데 태국과의 콘텐츠 교류 및 한류 관련 정책 등을 설명한 최인숙 TRA미디어 대표의 얘기를 별도로 정리하여 '브런치스토리'에 올린다. 최인숙 대표는 콘텐츠 전문 유통기업 (주)넷토피아와 복수의 방송채널(MPP)을 운영하고 있는 TRA미디어 창업자 겸 CEO를 맡고 있다. TRA미디어는 현재 버라이어티 전문채널 Smile TV+, 해외드라마 전문채널 TVA+, 교육전문채널 WeeTV 등 3개의 채널을 소유 및 운영 중에 있다. 최인숙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자.
(고삼석 교수) 최인숙 대표님께서는 '러브 데스티니', '두 도시 이야기', '비밀의 침대' 등 태국의 인기 콘텐츠를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등 한국과 태국 간 콘텐츠 교류에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태국 내 한류, 한국과 태국 간 콘텐츠 교류 동향 등에 대해 먼저 말씀해 주시죠.
(최인숙 대표) 채널 사업의 근간이 미디어 다양성 확대인 만큼 저희는 언제나 새로운 '니치 시장'을 발굴하고 그를 통해 각국과 문화적, 산업적 교류를 강화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중소 채널(PP) 중 유일하게 전 세계 다양한 국가의 콘텐츠를 한국에 최초로 소개하고 각국 대사관이나 관광청과 긴밀한 교류를 통해 '문화 교두보'의 역할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그중 저희가 동남아시아 시장을 주목한 이유는 2023년 기준 전 세계 한류 팬 약 2억 3천만 명 중 동남아시아 팬덤은 1/4에 달하는 약 4천만 명을 바탕으로 한국과 콘텐츠 산업 교류를 확대하는 한편, 자국의 콘텐츠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시장이기 때문입니다.
패널토론하고 있는 최인숙 TRA미디어 대표
특히 태국의 경우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체제를 겪지 않아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배경으로 다양한 소재의 콘텐츠를 제작해 왔다는 점, 자국 콘텐츠 산업을 빠르게 발전시키고자 정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이 따르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콘텐츠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더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태국, '태국적 맥락'에서 한국 콘텐츠 리메이크
2018년 국내 최초로 태국 지상파 방송인 채널3와 손잡고 태국 콘텐츠를 한국에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태국에서 최고 시청률을 자랑한 '러브 데스티니'의 경우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으며 케이블, IPTV, OTT 등에서 주류 해외 콘텐츠였던 미국, 중국, 일본 드라마를 제치고 TOP 10에 올랐습니다. 태국정통 사극 '두 도시 이야기', 로맨스물인 '비밀의 침대' 등 소개한 작품마다 좋은 반응을 얻으며 낯선 문화-새로운 콘텐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니즈와 긍정적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미디어 콘텐츠 교류를 바탕으로 대사관과 관광청으로 이어진 다양한 협업 프로젝트는 문화 교류의 확장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에 최초 소개된 태국 드라마 '러브 데스티니'
문화 교류의 성과로는 태국 내 한류 열풍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태국은 2023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조사에서도 나타난 것처럼 K콘텐츠가 진출한 국가 가운데 K콘텐츠 선호도가 가장 높은 국가입니다. 특히 태국은 단순히 한류 콘텐츠를 수입해서 소비하는 것이 아닌 '태국적 맥락'을 토대로 리메이크 혹은 공동제작을 통해 한류 콘텐츠를 재생산하면서 양국의 유기적 협조 속에서 자국 콘텐츠 발전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다만 한류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글로벌 플랫폼들이 한국 콘텐츠를 무기로 태국을 포함한 전체 미디어 시장을 자신들이 직접 공략하고 있고, 이를 위해 한국 콘텐츠에 대규모로 했던 투자는 다시 제작비 상승이라는 부메랑으로 저희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또한 한정된 대기업 중심의 투자와 배급은 콘텐츠의 질과 다양성을 약화시키면서 진부하고 획일적 소재의 콘텐츠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문화적 디스카운드'를 초래하는 위험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태국판 콘텐츠진흥원' THACCA 설립 예정
(고삼석 교수) 태국 내 한류 현황, 한국과 태국 양국의 콘텐츠 교류에 대해 많은 이해가 되었습니다. 콘텐츠 정책 영역을 보면 한국과 태국 간 교류와 협력이 눈에 띕니다. 특히 한국 콘텐츠 산업 정책을 배우려는 태국 정부의 자세가 대단히 적극적입니다. 태국 정부는 내년에 우리의 KOCCA를 벤치마킹하여 태국판 콘텐츠진흥원 THACCA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도 좀 설명해 주시죠.
(최인숙 대표) 태국의 경우 한국 정부의 한류 진흥 정책을 높이 평가해 이를 벤치마킹을 하고, 태국 소프트파워 육성을 위해 지난해 9월 당시 세타 타위신 총리가 위원장을, 탁씬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이자 프아타이당의 당대표인 패통탄 친나왓을 부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소프트파워 전략위원회'를 출범시켰습니다.
금년 8월 국가소프트파워 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패통탄 친나왓이 신임 총리로 취임하면서 태국 소프트파워 육성을 국정 과제의 전면에 내세우며 태국 콘텐츠진흥원 설립에 매우 적극적인 상황입니다. 이는 태국 정부가 국가 창의 산업을 육성하고 국부 창출을 위해 문화의 상품화 및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을 공개 선언한 것으로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국과 달리 태국 정부는 방송을 포함한 콘텐츠 산업에 해외 자본이 진입하는 것에 특별한 규제를 하지 않고 오히려 한류 콘텐츠 기업과 자국 내 기업의 협업을 통해 현지화된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하는데 훨씬 적극적인 상황입니다.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또한 기존 FTA 외에도 RCEP(역내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을 체결하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콘텐츠 분야 수출액이 전체 교역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의미가 큰 협정입니다. 이를 토대로 가까운 시일 안에 규제가 완화돼 양국 간 콘텐츠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한류도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도약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생성AI, 제작 현장 '창조적 협력' 가능성 높여
(고삼석 교수) 종종 "한류가 끝났다"는 걱정도 했습니다만, 한류는 지속적으로, 전 세계로 확산되고 발전해 왔습니다. 2022년 챗GPT 등장 이후 시작된 생성AI 시대에도 한류는 외연을 더욱 확장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알파세대'의 등장 등 이용자들의 이용행태나 콘텐츠 시장의 변화와 같은 위협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지속가능한 한류'를 위한 기술, 제작 및 정책 혁신 방안에 대해 한 말씀해주시죠.
(최인숙 대표) 한류 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이 일방적인 공급과 소비의 형태가 아니라 공동 제작과 크로스 컬처 기반의 현지화가 핵심 과제로 대두될 것입니다. 그동안에는 공동 제작이 언어와 같은 문화 장벽, 그에 따른 물적, 인적 자원 투입과 높은 비용으로 굉장히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AI와 같은 첨단 엔터테크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의 혁신은 이러한 장애나 한계를 뛰어넘고 있습니다. AI는 단순한 번역뿐 아니라, 콘텐츠 기획, 제작, 배급 과정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방식의 창조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고 있습니다.
한류 콘텐츠와 동남아시아 콘텐츠의 협력은 양측 모두에게 중요한 기회입니다. 그리고 첨단 엔터테크의 도입은 이러한 협력을 한층 더 발전시키고, 콘텐츠 교류를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있다면 우리 TRA미디어처럼 새로운 시도를 하는 중소 콘텐츠 기업이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기회를 함께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삼석 교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보면, 현재 콘텐츠 수출 중심의 한류 정책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변화된 환경에 맞춰서 그것의 기조와 전략을 전면 재검토하고, 재정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사업자들로부터 나오고 있습니다.
태국에서 열린 K-EXPO (출처: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의 일방적 수출이 아닌 상호호혜적 관점에서 공동제작뿐만 아니라, 문화 및 인적 교류 중심의 한류 정책으로 한류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켜야 합니다. 특히 최근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과 콘텐츠 간 결합, 즉 '엔터테크'(Enter-Tech)가 확산되고 있는 만큼 한국과 태국 간 교류와 협력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낸다면 콘텐츠 분야를 넘어서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 간 교류와 협력은 훨씬 더 강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