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 노통브 《푸른 수염》

종교와 민담으로 뒤섞여 실체를 드러내는 사랑의 어떤 속성...

by 우주에부는바람

사랑과 종교는 믿음과 의심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상대방을 의심하였다가 다시 믿었다가 다시 의심하였다가 다시 믿었다가 다시 의심하다 그만 완전한 믿음을 포기함으로써 주저앉는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을 믿었다가 의심하였다가 다시 믿었다가 다시 의심하였다가 다시 믿었다가 다시 의심하다 그만 완전한 의심을 포기함으로써 주저앉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과 의심의 중간에 신은 혹은 그 사랑의 상대방은 우리에게 시험이라는 과제를 던진다.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p.13)


동시에 소설은 ‘푸른수염’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림형제의 이야기에서 모티프와 그 얼개를 따온 것이기도 하다. 푸른수염을 가진 왕이 시골 출신의 왕비에게 골방의 열쇠를 건네며 열지 말 것을 주문 하듯이, 소설 속 스페인 출신 귀족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는 자신의 집에 세입자로 들인 처녀 사튀르닌에게 자신의 암실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단서를 단다. 들어가지 말아야 할 방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이야기 속의 왕비나 거대한 저택에서 살게 된 사튀르닌은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궤적과는 전혀 다른 훌륭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것이 가능해졌다고 하여도 단 하나 열어볼 수 없는 방이라는 불가능의 존재는 그녀들을 가만 두지 않는다.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소. 주님께서도 에덴동산에서 그렇게 하셨소. 그분께선 위험을 제거하지 않을 정도로 피조물을 사랑하셨소.” (p.79)


소설 속에서 돈 엘레미리오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스페인 혈통의 귀족이면서 동시에 근본적으로 고지식한 기독교주의자이다. 이십대 초반 양친을 잃은 이후 그는 마흔 네 살이 된 지금까지 자신의 대저택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집 방 한 칸을 젊은 여인에게 내어준다. 그리고 그녀들과 사랑을 하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이 집으로 들어온 그녀들은 이후에는 세상으로 나오지 않았다. 모두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벨기에 출신의 사튀르닌은 아홉 번째 세입자로 이 저택에 들어섰다.


“여자들도 지겹긴 마찬가지요. 하지만 그중 몇몇하고는 사랑이, 결코 싫증 나지 않는 사랑이 가능하지. 거기에 미스터리가 있소.” (p.25)


애초에 이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던 사튀르닌이지만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남자를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남자가 가지고 있는 비밀에 대한 접근이라는 시험 아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돈 엘레미리오가 자신이 사랑하였던 그리고 현재도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여인들에게 가하였던 징벌적인 과오를 알게 된 사튀르닌은 이제 여러 여자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돈 엘레미리오의 끊임없는 궤변에 맞서면서 자신이 시험에 들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시험하오.”

“아뇨,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호해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가 매년 한 권씩의 장편을 만들어 발표하는 아멜리 노통브의 이번 소설은 또 다른 사랑의 변주곡이다. 그런데 그다지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담백하지도 않다. 사랑이 가지는 여러 속성들 중의 한 가지를 종교 그리고 민담과 뒤섞어 재치 있게 다루고 있지만 크게 의미심장하지는 않다. (하지만 물론 아멜리 노통브의 이야기 구성은 언제나 영리하다.) 사랑을 드러내는 방식의 어떤 극단을 또 한 가지쯤 들여다본 것 같은 정도이다.



아멜리 노통브 / 이상해 역 / 푸른 수염 (Barbe Bleue) / 열린책들 / 193쪽 / 201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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