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기 시노 《호텔 로열》

에로틱하기 보다는 그로테스크한 모양으로 암울하고 음습한 인간사의 횡단면.

by 우주에부는바람

호텔 로열이라는 공간을 놓고, 그 공간의 주위에 시간상 역순으로 배열하고 있는 연작소설집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소설 「셔터찬스」는 이제 폐허가 된 현재의 호텔로열에서 아마추어 누드 사진(이라기 보다는 포르노 사진이라고 불러야 할까)을 찍는 커플을 다루고 있다면 마지막 소설 「선물」은 이제 막 호텔로열을 짓기 위하여 땅을 보고 돈을 빌리는 한 사내와 그 주변인물을 다루고 있다.


「셔터찬스」

다카시에게 미유키는 무엇일까... 학창 시절 인기가 있었던 다카시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미유키는 다카시의 좌절이라는 단어 앞에서 언제나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좌절하고 싶지 않다는 다카시에게 이끌려 폐허가 된 호텔로열의 남루한 방에서 옷을 벗는다. “지금 제아무리 희망에 찬 말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남자가 말하는 ‘좌절’이 다른 것으로 모습을 바꾸어 다시금 세상 빛을 볼 일 따위, 없을 것 같았다... 다카시가 말하는 ‘꿈과 희망’은 폐허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먼지를 꼭 닮은 것이었다. 잠시 피어올랐다가 다시 원래 자리에 내려앉는다. 여기에서 탈출하는 일도 없고, 닦아낼 만한 계기도 찾아오지 않는다.” (pp.26~27) 어두침침한 분위기 속에서 그만큼이나 어둡고 탐색 불가능한 사내의 속내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내의 속내로 기어들어가는 듯한 한 여인의 뒤죽박죽인 속내가 불편하다.


「금일 개업」

작은 절의 주지를 늙은 남편으로 두고 있는 미키코는 지금까지 그 절의 중요한 단가들에게 (단가 : 한 사찰과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하며 시주, 후원하는 불교 신자.) 몸을 허락함으로써 절의 유지를 돕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키코 앞에 아버지의 사업을 이어받으며 미키코와의 정사까지 물려받은 사노 도시오가 나타나면서 이야기가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나이든 단가들과 달리 사노 도시오는 젊다. 그리고 미키코는 사노와의 섹스에서 쾌락의 기미를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미키코가 정사 후 받아온 돈을 미키코의 남편인 주지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의 주요 얼개와는 별개로 호텔 로열에서 사기를 당했던 미키코의 과거 그리고 이제는 죽어서 거둘 사람이 없어 유골 단지로 떠도는 호텔 로열의 창업자인 다나카 다이키치가 등장한다.)


「쎅꾼」

호텔 로열의 마지막이 담겨져 있는 소설이다. 부모가 모두 떠난 호텔 로열을 마지막까지 지킨 것은 딸인 마사요이다. 호텔 로열에서 교사와 여고생이 함께 죽은 정사 사건이 있은 이후 쇠락에 박차를 가한 호텔 로열은 지어진 지 삼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 그 마지막날 마사요는 성인용품 판매업자인 미야카와와 함께 호텔의 주인인 심정에서 벗어나 정사 사건이 있었던 방에 들어선다. 그러나 그마저도 성공하지는 못한다.


「거품 목욕」

빠듯한 살림을 하면서 살아가는 중년의 부분인 메구미와 신이치는 시어머니의 성묘차 절에 들렀다가 주지를 만나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러브 호텔인 호텔 로열을 발견한 메구미는 신이치에게 그곳에 들르자고 한다. 아들과 딸, 그리고 시아버지까지 한 집에서 살면서 제대로 된 신음소리조차 가질 수 없었던 메구미는 주지를 만나지 못하여 주지에게 건네지 못한 돈이 수중에 있다. 그녀는 그 돈으로 러브 호텔에 들어가고자 한다.


「쌤」

교사로 일하고 있는 노지마는 최근에야 아내인 리사의 부정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삼십여 년에 걸친 불륜이다. 심지어 그 대상자는 아내를 자신에게 소개해주었던 교장 선생님이었다. 교사와 학생으로 만난 아내와 교장은 그렇게 삼십여 년 동안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왔다. 그리고 이 날 노지마는 어정쩡한 상태에서 방학을 맞아 삿뽀로 돌아가고자 한다. 리사는 노지마가 오늘 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노지마의 귀향에 제자인 마리아가 끼어든다. 불량기 가득하고 머리도 나빠 보이는 이 여제자가 노지마는 그저 귀찮을 따름이다. 그러나 집 앞에서 아내인 리사와 교장을 발견한 이후 노지마는 발걸음을 돌리고 이제 마리아와 함께 며칠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아내의 불륜 앞에서 허물어진 교사와 자신을 버리고 부모가 모두 집을 떠나버려 홀로 남게 된 여고생... 소설 속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제 두 사람은 호텔 로열을 향하게 될 것 같다.


「별을 보고 있었어」

호텔 로열에서 일하는 미코에게는 두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지만 이제는 모두 떠났고 남은 것은 거동이 불편한 남편 뿐이다. 그녀는 산길을 걸어 호텔 로열에 와서 방을 청소하고 저녁이면 다시 산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매일처럼 섹스를 원하는 남편 쇼타로에게 몸을 맡긴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착하다고 여긴다. 아니 지금은 그렇지 않더라도 조금씩 더 착해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런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둘째 아들이 있고, 어느 날 그 둘째 아들이 살인 용의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신문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날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숲 속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절룩거리는 발걸음으로 새벽녘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헤매는 남편의 소리에 이끌려, 남편의 등에 엎힌 채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녀를 발견하고 뭘 하고 있었느냐 묻는 남편에게 그녀는 말한다. ‘별을 보고 있었어.’


「선물」

다나카 다이키치는 큰 꿈을 키우고 있다. 습원이 내다보이는 절벽 위에 호텔을 짓겠다는 꿈이다. 그에게는 초등학생 아들과 동갑내기 마누라가 있다. 그리고 루리코라는 스무살 연하의 경단 가게 아가씨를 내연녀로 두고 있기도 하다. 호텔을 지을 구체적인 작업에 들어가게 된 이후 그러나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처갓집에 들어가고 이혼 서류만 남겨 놓는다. 아내와 처가 사람들은 그의 사업을 반대한다. 그리고 이제 다나카 다이키치는 내연녀였고 지금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루리코와 함께 호텔 로열이라는 원대한 꿈을 막 키우기 시작하고 있다.


나오키상 수상작이기도 한 연작소설집은 음습하다. 情思 행위의 장소이자 情死 사건의 장소이기도 했던 호텔 로열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이야기이니 한 편으로는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섹스 장면이 많이 등장하지만 에로틱하기 보다는 그로테스크하다. 아주 재미있다고 하기도 그렇고, 아예 재미가 없다고 하기도 그렇다. 암울하지만 그것 또한 인간사이다 혹은 이 또한 모두 지나가리니, 류의 이야기라고나 할까...



사쿠라기 시노 / 양윤옥 역 / 호텔 로열 (ホテルロ?ヤル) / 현대문학 / 228쪽 / 20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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