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평행이론이 교묘하게 작용하는, 불륜의 난폭한 결말...
*2014년 9월 2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주말이면 대충이나마 청소를 한다. 청소가 끝나고 담배를 피우고 있는 동안 안방의 작은 앉은뱅이 책상 위에 아내가 자신의 커피를 올려 놓았다. 나는 마루의 식탁으로 노트북을 갖고 나와 글을 쓰고 있다. 세탁기를 돌리는 중인데 시끄럽다. 책상을 빼앗은 아내는 그러나 식탁은 내버려두고 침대에 누워 책을 본다. 노트북을 들고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그만둔다. 방정맞아 보이기도 하고, 세탁기가 다 돌아가면 빨래도 널어야 한다. 상대방 말고는 별다른 부속의 식구가 없는 부부의 평범한 주말 풍경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연거푸 읽은 두 개의 소설의 소재가 모두 ‘불륜’이다. 그리고 두 소설 모두 남성인 작가가 여성인 주인공의 시점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는 공통점도 지닌다. 다른 점이 있다면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는 아내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면,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에서는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남편을 둔 아내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다는 정도이다.
요시카 슈이치의 소설은 여기에 일종의 평행이론을 더해놓고 있다. (스포일러 주의!!! 소설을 읽을 작정이라면 이쯤에서 리뷰 읽기를 멈추시라...)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평행선을 그을 수 있는데 하나는 주인공인 모모코의 시아버지를 낳은 친엄마인 도키에가 살던 수십년 전에 발생한 방화사건과 현재의 방화사건이라는 평행이론이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이미 결혼한 상태였던 마모루(모모코의 남편)와 불륜을 저지르던 시절의 모모코와 현재 모모코의 남편인 마모루와 만나고 있는 미야케 나오 사이의 평행이론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전자의 평행이론의 연결고리는 모모코와 마모루가 살고 있는 별채, 그리고 별채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육첩 다다미방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별채에서 살았던 도키에 아주머니와 다다미방 아래에서 발견된 항아리 속의 신문기사가 현재와 과거를 연결시킨다. 그런가하면 후자의 평행이론, 그러니까 과거의 모모코와 현재의 나오 사이의 연결 고리는 바로 소설에 삽입된 주인공의 일기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 그러고 보니 최근 한동안 하즈키를 만나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마모루와 불륜 관계에 있었던 시절부터 하즈키에게는 몇 번 상담을 했었다. 이 일기에도 몇 번이고 그녀의 이름이 나온다. 그녀는 자기 일처럼 걱정해주었다. 지금 상태를 얘기하면 그녀는 뭐라고 할까. 인과응보라고 하며 웃을까.” (p.252)
현재의 시점에 대한 서술과 함께 현재의 아내인 모모코의 시점인 일기, 그리고 남편인 마모로의 내연녀의 시점인 일기가 연거푸 나오고 있는데, 이것이 나중에는 일종의 함정으로 작용한다. (당신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위의 문장과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무척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렇고 그런 불륜에 대한 이야기를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작가의 장치들 때문이다.
“……나, 이 별채를 줘. 나와 이혼하고 싶으면 하면 돼. 이혼하고 그 여자와 살면 되잖아. 그런데 나는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아.” (p.403)
하지만 이러한 평행이론에 대한 집착은 결국 마지막 순간, 나오와 마모루의 결합이 기정사실화되고 정신이상자 취급을 받으며 물러나게 된 모모코가 그 별채에 남고 싶어한다는 막장드라마를 닮은 결말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글을 번역한 번역자는 해설에서 남성인 작가의 여성 심리 묘사를 칭찬하고 있지만 어쩌면 소설은 다분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쓰여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특히 마모루와의 마지막 입씨름에서 모모코가 하는 말, 그러니까 어째서 정상적인 애정이 결여된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애썼느냐는 마모루의 질문에 대한 모모코의 답변인 ‘지고 싶지 않았어’라는 말이 꽤나 거슬린다. 이미 누군가의 애인이거나 남편인 상대를 자신의 것으로 삼고, 그것 때문에 (아마도) 기존의 그 상대와 끊임없이 대결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행복하기 힘들 것이다, 라는 결론은 그야말로 너무 난폭한 것이 아닐까.
요시다 슈이치 / 권남희 역 / 사랑에 난폭 (愛に亂暴) / 은행나무 / 411쪽 / 2014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