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로 코엘료 《불륜》

애써 모른 척 하는 우리들 심리적 심연의 어떤 지점으로부터 날아오르고..

by 우주에부는바람

서른 한 살의 나이, 매년 스위스에서 가장 부유한 300인에 이름을 올리는 남편과 두 자녀를 두고 있고, 인지도를 지닌 신문사에서 인정 받는 기자로 일하고 있으며, 아름다운 외모까지 가지고 있는 나, 그러한 나를 흔든 것은 정말 인터뷰이의 한 마디 말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이 말의 어느 지점, 행복보다는 열정을 선택하리라는 바로 그 지점이 소설 속의 나를 충동한 것일까...


“행복해지는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그보다는 삶을 열정적으로 살고 싶어요 위험한 일이지요.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로 알 수가 없으니까요.” (p.11)


그리고 이제 나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나는 혹시 나의 이러한 상태가 우울증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인지 알아보기 위하여 약의 힘을 빌어 우울증을 탈출한 친구를 만나보기도 한다. 물론 친구에게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게 덫에 걸린 느낌이랄까? 갇혀 있다는 건 알겠는데 도망칠 수가 없는……’이라는 친구의 우울증에 대한 정의를 듣는 순간, 바로 자신의 상태를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깨닫는다.


“그렇지 않을까? 누구나 자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 뿐이야. 숨어 있는 괴물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누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겠어?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으로 사는 거지. 부모가 선택해준 대로 사는 거고. 아무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애쓰잖아. 사랑받고 싶으니까.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가장 훌륭한 것들을 억누르며 살아. 빛나던 꿈은 괴물 같은 악몽으로 바뀌고. 실현되지 않은 일들, 시도해보지 못한 가능성들로 남게 되는 거지... 물론 그런 이중성을 겉으로 드러내는 사람은 소수겠지. 하지만 나는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그런 괴물을 키우고 있다고 확신해.” (pp.191~192)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나는 야코프와 맞닥뜨린다. 십대 시절 스킨쉽을 나누었던 사이, 이제 기자와 정치가로 다시 만나게 된 나와 야코프의 첫 번째 만남에서 벌어진 상황은 급작스럽다. 나는 노골적으로 야코프에게 스스로를 들이밀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야코프에게 사로잡혔다. 헤어 나오려고도 해보지만 역부족이다. 어쩌면 나는 이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기보다는 이 사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난 어쩌면 그를 사랑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내 안에 일깨워놓은 것을 사랑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p.238)


나는 야코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동시에 어떤 파국을 예감한다. 그렇게 그 파국의 예감은 야코프와 야코프의 아내 그리고 나와 나의 남편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그리고 나는 이제 남편에게 자신의 이야기, 인터뷰이의 한 마디 말에서 시작된 증상, 그 이후 불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만남, 그리고 바로 지금까지를 말할 작정을 한다. 하지만 그 저녁, 나의 남편은 나를 향하여 사랑 그 자체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차분하게 말하고 나는 하려던 말을 거두어들인다.


“올해 봄까지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가진 모든 것이 갑자기 사라질 수 있음을 깨닫고는, 나는 분별있게 처신하지 못하고 공황에 빠져버렸다. 그뒤로 이어진 것은 무기력, 무감각, 반응과 변화에 대한 무능이었다. 잠 못 이루는 밤과 삶의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낮을 수없이 보낸 후,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던 것을 행동에 옮겼다...” (p.308)


나는 야코프와 마지막 만남 혹은 마지막 섹스를 치르고, 남편과 함께 한 여행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늘 위로 날아 오른 상태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주의 광활함을 경험한다. 그리하여 소설은 ‘우리를 변하게 하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데... 오랜만에 읽는 파울로 코엘료였으나 어째 너무 착한 결론이라고나 할까... 불륜이 품은 어떤 격정의 순간과 이 순간을 둘러싸고 있는 나이브한 심리가 어울리는 듯 어울리지 않는 듯 그려지고 있고, 그 어울리지 않음이 일종의 긴장으로 작용하고 있어 독서의 속도는 빠르게 진행되었지만 마지막 패러글라이딩의 착지 지점이 조금은 싱거워 보인다. 그렇지만 애써 모른 척 하는 우리의 어떤 심리적 심연에 대한 기록으로서는 읽어볼만한...



파울로 코엘료 / 민은영 역 / 불륜 (Adulterio) / 문학동네 / 359쪽 / 2014 (201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요시다 슈이치 《사랑에 난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