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히도 사적이고 아름다운 클레망틴의 산산 조각 난 채로 살아나는 사랑.
영화 속, 전시회장을 나온 파란 원피스의 아델이 팔랑팔랑 걸어간 거리, 아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가면 좋았을 것을, 나는 오히려 아델 아니 클레망틴이 시작된 거리로 다시 돌아왔다. 열다섯 클레망틴의 세계로 발걸음을 다시 옮긴다. 영화의 원작이라는 그래픽 노블을 본다. 그리고 다시금 상념에 빠진다. 영화 속으로 고스란히 옮겨진 장면을 보기도 하고, 영화와는 전혀 다른 장면을 한참 들여다보기도 한다.
“청소년이 갖는 의문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아주 진부해 보이리라. 하지만 막상 두 발이 함께 묶인 채 홀로 그 안에 빠져있다고 느낄 때, 빠져 나와 그 위에서 춤추는 법을 어떻게 알겠는가?” (p.13)
그래픽 노블의 클레망틴은 이미 죽었다. 엠마는 클레망틴이 남긴 유언에 따라 아델의, 아니 클레망틴의 일기를 보며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그녀의 집에 들렀다. 자신이 남자였더라도 클렘은 자신과 사랑에 빠졌을 거라고 말하는 엠마는 클레망틴의 일기를 보기 시작한다. 열다섯 살 생일에 시작된 클레망틴의 일기, 그래픽 노블 속에서 열다섯 살에서 열일곱 살, 엠마와의 관계를 들켜 집에서 나오기까지, 클레망틴의 삶은 흑백 속에 블루만이 둥둥 떠다닌다. 잉크, 하늘, 바다, 이브 클렘, 청록, 군청의 파란색 그리고 엠마의 파란색 머리까지...
“엠마는 늘 곁에 있다. 내게 주는 사랑은 점점 더 풍성해진다... 하지만 그녀와의 거리를 유지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어 그게 계속 걸렸는데, 나로서는 그걸 어찌할 수가 없었다... 엠마에게 그녀의 성(性)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공적 자산이다. 사회적, 정치적 자산. 하지만 내게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것이다... 엠마는 나의 이런 생각을 비겁함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저 행복해지려고 애쓸 뿐이다...” (p.131)
클레망틴이 집을 나와 엠마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 그래픽 노블은 컬러로 바뀐다. 하지만 모든 색이 들어선 세상은 그러나 블루만이 존재하던 클레망틴의 세상에 비해 더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행복해지려고 애쓸 뿐’인 클레망틴에 비해 엠마의 시선은 보다 넓은 곳을 향해 있다. 블루만으로 행복했던 세상에 다른 색들이 끼어 들었을 때 클레망틴은 풍요로워지는 대신 빈곤해진다.
“하지만 내 사랑, 넌 날 이미 살렸어. 넌 편견과 부조리한 윤리 위에 세워진 세상으로부터 날 살려내어 내 자신을 완전하게 이루도록 도왔어. 그 누구도 지금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해 잘못한 게 없어... 내가 가지고 가는 건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들, 대부분 너와 함께 했던 추억들이야... 우리의 웃음, 우리의 사랑.. 네 시선에 깃든 파란색, 온몸으로 부딪칠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널 사랑했던 청소년기, 그 시절 밤마다 내게 찾아들던 네 머리카락의 파란색... ” (p.153~154)
그리고 이제 서른을 앞둔 클레망틴은 엠마에게서 떨어져 나온다. 자신의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다. 엠마는 남자와 밤을 보낸 클레망틴을 용서하지 않는다. 클레망틴은 그런 엠마를 끝까지 염원한다. 그 어떤 색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파란색을, 열다섯 자신에게 한순간 파고 들었던 엠마의 파란색 머리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는 파란색 그 한 가지 색만으로 충만했던 사랑의 시절을 가슴에 품은 채 시들어갔다.
“엠마... 영원한 사랑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지. 사랑은 무척 추상적이고 감지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야. 사랑은 우리에게 달려있어. 그걸 느끼고 겪는 건 우리니까. 만약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랑도 존재하지 않겠지. 그런데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잖아. 그러니 사랑도 그럴 수밖에 없어... 사랑은 불타오르고, 수명을 다하고, 산산 조각나고, 우리를 조각내고, 다시 살아나... 그러니까 우리를 다시 살려내. 사랑은 아마도 영원하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우리를, 사랑은 우리를 영원하게 만들어... 우리가 깨워 불러낸 사랑은 우리의 죽음을 넘어 계속해서 자신의 길을 간단다.” (p.155)
마지막 순간 두 사람은 재회하였지만 찰나의 행복감을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부족한 시간의 나머지를 채워야 하는 것은 ‘우리’이다. 수명을 다한 사랑은 클레망틴의 남겨진 일기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물론 클레망틴의 능동적이고 활기 넘치며 관습을 뛰어넘었던 사랑은 수동적이며 힘을 잃고 결국 또 관습의 속으로 무너져 내리며 수명을 다하였다. 하지만 클레망틴의 사랑은 그렇게 스러졌어도 ‘우리’는 남아 있다. 그리고 클레망틴이 아니어도 ‘우리’는 결국 또 다른 사랑을 불러낼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우리’가 영원한 한, 따뜻하고 아름답게...
쥘리 마로 / 파란색은 따뜻하다 (Le bleu est une couleur chaude) / 미메시스 / 156쪽 / 2013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