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면 자유롭게 발설하고 욕망하면 자유롭게 사랑하고...
*2014년 7월 3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월드컵 시즌이다. 하루키는 올림픽 시즌에 올림픽과는 무관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였다는데 나는, 열심히 월드컵을 시청하는 중이다. 매일 새벽 한 시에서 세 시, 여느 때라면 한창 책을 읽을 시간에 축구, 축구, 축구를 본다. 그렇게 한껏 스포티해진 일상이 조금 두려워서 센티멘털이라는 제목이 들어간 (이라고 하면 점잖은 척 하는 것일 뿐이다, 온전한 제목은 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이니...) 만화책 한 권을 까페 여름의 선배와 후배에게서 빌려왔다. 요즘은 다른 책들을 보기가 힘들다는 후배는 (선배도 그렇다고 했던가...) 까페의 구석진 책꽂이에 만화책을 잔뜩 꽂아놓고 있는 중이다.
“난 그야말로 졸작을 만들 거예요. 가장 진부한 방법들를 아무 거리낌 없이 총동원할 거고요. 열 살배기 아이들을 주관객으로 삼을 겁니다. 폭력은 난무하겠지만, 섹스는 없을 거예요. 페이소스는 저질일 거고, 개그는 걸쭉할 겁니다. 대화는 최악의 더빙에 걸맞을 거고요... 그게 가져다줄 추접한 이익금으로 세상 끝에 있는 작은 집을 살 겁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내가 되고 싶었던 것이 될 거예요... 만화가 말입니다.” (pp.29~30)
만화가가 되기 위하여 영화를 만든 루이와 코린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는 만화는 모이고 흩어지는 여러 쌍의 이성 그리고 동성 커플들을 다루고 있다. 그림체와 내용은 딱 제목 그대로이다. 남녀 성기가 다 드러나고 있고 이성과 동성 커플들의 섹스 신이 꾸준히 등장하지만 웬걸, 야하다기 보다는 진짜 센티멘털해진다고나 할까... 게다가 나름 현학적이기도 하여 갸웃갸웃 거리게 되지만 책장은 잘 넘어간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루이가 있고, 그 루이와 현재 사귀고 있는 중인 코린은 그 이야기의 여러 가지들을 현재와 과거 사이에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루이와 코린이 처음 만난 장소인 사인회의 주체였던 마르탱 가리에피의 《핑크 플로이드 혹은 보포르의 병적인 지하 파티들》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검색해보았는데 실제하는 책은 아닌 듯...) 챕터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있다. 게다가 그 책의 저자인 마르탱 또한 만화 속에 실제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루이와 사귀는 중인 (정확히 어떤 관계라고 규정짓기는 힘들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지만 뭔가 이렇게 확언하기에는 좀....) 코린이 오년 전 만났던 여자 모드가 있고 (모드가 그녀의 이름인지 조금 헷갈리지만...), 그 모드는 아직도 코린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 그 모드에게 계속 구애를 하는 남자가 바로 마르탱이다. 그리고 마르탱은 바로 그녀를 생각하면서 포르노그래피 소설을 쓰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이 바로 《핑크 플로이드 혹은 보포르의 병적인 지하 파티들》이고, 마르탱은 소설을 통해 모드를 잊지 못하고, 그 모드는 코린을 잊지 못하는 형국으로 관계와 시간이 마구 뒤섞여 있다고나 할까...)
여기에 코린을 대체할만하다고 할 수 있는 동네 빵집 여자와 다시금 사랑에 빠지는 모드나 모드에게 빠져 있는 마르탱을 옆에서 챙겨주는 모드의 친구 시몬, 루이가 세상의 후미진 곳이라고 지목한 동네인 코트 노르의 소토바르보 호텔에서 루이 커플가 함께 지내게 되는 뮈리엘과 레옹스까지 꽤 많은 등장인물들이 이렇게 저렇게 뒤섞여 있다. 이것으로도 모자라서 이들이 도착한 소토바르보 호텔을 지은 건축가 마시코트 또한 미스터리한 인물이어서 그 광기가 남아 있는 그 공간에서 이들 네 사람은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듯 며칠의 시간을 보낸다. (액자 소설이나 영화 속의 영화처럼, 만화에는 만화 속 만화라고 할 수 있는, 그러니까 어쩌면 이 만화 전체가 지금 호텔의 방에서 만화를 그리는 루이의 손 끝에서 탄생한 것이다, 라는 뫼비우스적 암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까지 등장하니, 그야말로 혼돈 그 자체...) 그렇게 뮈리엘과 레옹스가 떠나가고 이제 루이는 코린 또한 떠나보낸다. 뒤죽박죽 얽히고 설킨 관계와 시간, 공간이 등장하지만 그 끝에는 이제 온전히 루이만이 남는다.
“만화가 약간 바보같은 방식으로 성적인 것에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해서 난 내 두뇌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입을 다물지는 않을 거야. 난 비도적적이거나 무책임한 예술을 주장하는 게 아냐. 내 등장인물은 멍청하지 않아. 그리고 섹스를 저급스러운 뭔가로 본 적이 없어. 나는 돼야 하는 것이나 해야 하는 것이나, 생각해야 할 것에 대해 말하는 게 아냐... 난 사랑의 편지들을 쓸 뿐이야.” (pp.260~262)
예술의 양태가 어떤 것이든 그저 떠오르는 것들을 자신이 바라는 바에 따라 발설하고, 사랑의 형태가 어떻든 그저 자신이 욕망하는 바에 따라 행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하루키는 올림픽을 보이콧하며 성실하게 일기 형식의 글을 썼지만 나는 꿋꿋하게 월드컵 축구를 본다. 그리고 16강이 끝나고 그들에게 주어진 짧은 휴식의 시간, 방송이 없는 틈을 타서 이렇게 소란스러운 만화의 리뷰도 적어보고...
지미 볼리외 / 이상해 역 / 센티멘털 포르노그래피 (Comédie Sentimentale Pornographique) / 미메시스 / 290쪽 / 2013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