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노인의 전생애를 통하여 되새기는 강하고도 약한 우리들의 어떤..
되돌아보면 나는 딱히 무엇이 되겠다, 에 초점을 맞춰 살아본 적이 없다. 다만 부단히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에 대해서 생각했고, 이러한 생각은 여태 진행 중이다. 그 생각에 골똘하느라 책을 읽는 일을 잠시 등한시 하였고, 이것저것 끄적이는 일로부터 잠시 멀어져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모호한 이 순간에도 이것만은 확실해 보였다. 삶의 절반을 용케 살아낸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았던 어떤 결론이 보름여의 절독으로 가능하지는 않으리라는 것 말이다.
“... 만화는 극적인 대화에서는 그림과 만나 더욱 생생한 내용을 전달할 수 있으며, 이야기의 전개 역시 그래픽적인 표현 덕분에 시공간을 느끼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실 재현에 있어서도 탁월하다. 만화의 컷에서는 배경, 의상, 오브제, 상황을 충실하게 복원해낼 수 있다… 거기에 적절한 고증을 넣는다면 과거의 장소들은 그곳에 삶을 담고 있던 인물들에 의해 활기를 띠고 진정성을 지니게 된다. 이것들이야말로 내가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역사성에 다가가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p.209)
때맞춰 집어든 책은 만화라는 형식을 빌어 씌어지고 그려진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꾸준히 삶의 여러 양태를 고민하는 선배(와 후배)도, 눈에 확 뜨이도록 치열하게 삶의 형태를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손해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후배가 동시에 칭찬한 책이기도 했거니와 ‘아나키스트’라는 철지난 단어가 (그리고 다시 독서의 시동을 걸기에 무리가 따르지 않는 만화라는 형식도) 나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 나 역시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권위적이고 오만한 민주주의가 휘두르는 횡포에 패배하고 말았다. 그것은 오래전부터 시민들이 정의를 찾기 위해 권력자들에게 맞섰던 전쟁에서의 패배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치른 전쟁은 아버지와 그 세대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인생을 걸고 어마어마한 희생정신으로 싸웠지만, 나는 복잡한 서류들과 과장된 미사여구들이 난무하는 싸움을 했다. 결국 나는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아버지가 치렀던 전쟁들과 그분의 패배를 이제는 나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나의 무능함을 실감하면서 선택한 최후의 수단이기도 했다. 글쓰기는 세상을 향해 고백하고 고발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기에.” (p.206)
책은 아나키스트였던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요양원에 있는 한 노인이 자살을 준비하고 창 밖으로 날아오르는 일종의 프롤로그를 지나면 이제 그 노인을 일인칭으로 삼는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지상으로 떨어져내리는 한 노인의 삶은 제4층 1910~1931 나무로 만든 자동차, 제3층 1931~1949 두루티의 신발, 제2층 1949~1985 씁쓸한 과자, 바닥 1985~2000 두더지 땅굴을 거쳐, 이러한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비롯하여 만화라는 형태를 갖게 된 이유 등으로 구성된 에필로그에 이르게 된다.
“... 우리란, 그 위대한 사상을 따라 행동한 소수의 생존해 있는 사람들과 지금은 완전히 잊혀진 세대의 가족들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이들도 있다. 자살한 부모의 자식들, 끔찍한 시골의 삶에서 도망쳐 나온 사람들, 동업자에게 사기 당한 사람들, 뒤늦게 이혼한 사람들, 양로원에 버림받은 사람들… 더 넓게 보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우리는 이 유대 속에서 그동안 써왔던 가면을 벗고, 자신의 가장 연약한 얼굴을 보였다. 우리는 상처 때문에 흉터진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마치 동맹과 같았다. 아버지로부터 혹은 애인, 친구, 희망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속죄 속에서 자신의 슬픔과 고통으로부터 소외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동맹말이다.” (pp.213~214)
책은 그렇게 세계대전을 비롯하여 왕정과 공화정,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민주주의와 독재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20세기 초반을 살아낸 한 아나키스트의 생애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를 둘러 싸고 있던 역사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상황과 역사적인 그리고 개인적인 주변 인물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바로 그들 중 하나이거나 그들 중 누군가를 아버지로 두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어진다.
“변절한 사람은 루시오뿐만이 아니었다... 살아남으려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해야만 했다... 단순히 지난날의 이상을 버리면 되는 게 아니라 열렬한 신봉자가 되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변절은 고백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숨겨 둔 개개인의 비극을 배신하는 짓이다... 아니, 배신이기 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자살을 의미한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묻어야 했고, 육체의 생존을 위해선 마음을 죽여야 했다.” (p.135)
나는 이즈음, 방향타를 잃은 듯 무심하게 흘러가는 삶에 당황하다 어느 새 이곳에 이르렀다, 는 자책 속에서 속수무책으로 두 주 정도의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끄트머리 삼아 이 책을 들었고 이제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렇게 책 속의 안토니오가 자신의 삶을 통하여 획득하거나 다시금 잃을 수밖에 없었던 가치들을 떠올리며, 그의 전 생애를 순조롭게 만들지 않았던 역사적 사건들과 마지막 순간에야 도달한 어떤 평온함에 미진하나마 가닿는 마음으로 최근을 정리한다. 서둘러 추락하기에 지금은 너무 낮은 곳이다.
안토니오 알타리바 글 / 킴 그림 / 해바라기 프로젝트 번역 /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El Arte de Volar) / 길찾기 / 215쪽 / 2013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