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 힘든 그곳, 예루살렘의 한 켠에서도 일상은 계속되고 있으니...
케나다 퀘벡 출신의 만화가 기 들릴이 자신의 아이들, 그리고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근무하는 아내와 함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보낸 일 년 여의 기간 동안을 그리고 있는 책이다. 생각보다 별 일 없이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나 이 별 일 없음이 오히려 불안감을 증폭시키거나 곤혹스러움을 자아내도록 만드는 묘한 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가령 이런 장면들...
“정착촌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이스라엘의 점령을 인정하고 부추기는 행위예요!.. 이봐, 그건 기저귀 보따리의 문제가 아니라 팔레스타인의 평화를 무너뜨리는 짓이라고!... 아직 한 달밖에 안 됐으니 조금만 더 참아보자... 그때 나는 슈퍼마켓에서 양손 가득 장을 보고 돌아가는 세 명의 무슬림 여성을 봤다.” (p.55)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영토 쪽에 있는 슈퍼마켓과 아랍인들의 주거 지역에 있는 슈퍼마켓은 차원이 다르다. 그러나 국경없는 의사회를 비롯하여 이스라엘과 비교하여 약자 쪽에 속하는 사람들을 도우려는 사람들은 이쪽 그러니까 이스라엘 정착민들 구역에 있는 슈퍼마켓은 되도록 이용하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 들릴도 마찬가지인데, 바로 자신이 물건을 사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린 그곳에서 오히려 무슬림 여성이 장을 보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것...
“매를 맞고 자란 아이들이 후에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행위를 되풀이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 우리는 그러한 현상이 민족적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그들이 겪었던 고통을 다른 민족에게 되풀이하는 거죠. 마치 매를 맞고 자란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자신의 아이를 때리는 것처럼.” (p.63)
그렇게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주로 아내는 가자 지구를 출입하며 자신의 일을 하고, 기 들릴은 예루살렘의 숙소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기 들릴의 일상은 여느 육아를 담당한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거나 데리고 오고, 간혹 함께 놀아주면서 틈이 날 때는 자신의 작업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가자 지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폭격은 갈수록 심해졌고,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하마스에서는 세 번째 인티파다를 선포하기까지 했다! ... 거리는 고요했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1시 30분에 지나가는 버스만 신경 쓰고 있는데, 저편에선 전투기가 사람들을 폭격하고 있다니...” (p.157)
기 들릴은 장 뤽 고다르의 영화 《포에버 모차르트》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어린 아이에게 전쟁을 설명한다, ‘전쟁이라는 것은 아주 간단한 거란다. 그건 바로 한 조각의 철을 한 점의 살에 찔러 넣는 것.’ 이라고... 물론 아이가 그러한 설명을 이해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면 그 폭격의 현장 바로 너머에 있는 기 들릴 조차도 전쟁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니, 이 만화를 읽고 있는 우리야 두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래도 피스갓 제브 같은 정착촌에서 사는 것은 좀 그렇지 않으세요? ... 저도 이스라엘에 사는 아랍인으로서 제가 원하는 곳에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 그곳이 설령 우리를 몰아낸 곳이라 할지라도요... 게다가 지금 이곳에서는 재미있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많은 아랍인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이곳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데, 그러다보니 조금씩 세력이 형성되고 있지 뭡니까... 어떻게 보면 정착촌 안에 정착촌을 거설하고 있는 셈이지요! 하하!” (p.199)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러한 상황, 그러니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작은 관심이라도 갖는 것은 유의미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력적 사건과 그러한 사건으로 인하여 죽거나 다치는 사람에 대해 아예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닐까... 인류의 지난한 역사 속에는 잔혹한 무관심으로 인하여 핍박받은 수많은 우리들이 있었으니 말이다...
기 들릴 / 서수민, 맹슬기, 이하규 역 / 굿모닝 예루살렘 (Chroniques de Jérusalem) / 길찾기 / 334쪽 / 2012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