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가장 따뜻한 색, 블루>

혼돈과 열망의 세계 속에서도 아니 그 속에서만 성장하는 소녀의 푸른 빛

by 우주에부는바람

아델과 엠마가 서로를 향한 욕망으로 가득한 채 나누는 눈빛, 금기의 선을 처음 넘으려는 아델이 보이는 아슬아슬한 욕망의 눈빛과 이제 처음 그 선을 넘으려는 아델을 노골적으로 유도하는 엠마의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 이제 그 욕망이 이끄는 곳으로 가감 없이 들어서는 아델의 상기된 표정, 환희와 그 환희로 넘어서는 마지막 문턱을 넘어서기 직전의 고통스러운 절정의 표정 또한 잊을 수가 없다.


사정이 없는 섹스에 대해 어떤 로망이 내게 있었던 것도 같다. 이성애자 그 중에서도 남성을 향하여 특화된 레스비언 포르노와 영화의 섹스신이 어떤 차별점을 갖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포르노에서 어떤 영감을 떠올리는 일은 흔하지 않다고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눈앞에서 펼쳐지는 이 지독한 사랑의 행위를 한참을 보고 있자면 소란스럽게 솟아 올랐던 정욕은 어느 순간 사라지게 되고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필요 이상으로 길었던 섹스신이 도움이 된 것일까...), 그 자리에 알 수 없는 현실적인 영감이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도 영화를 보는 동안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올리게도 된다. 그러나 영화 속 아델과 엠마는 사회의 편견에 의해 무너지며 그래서 견고해지는 환상의 사랑이 아니라, 그저 둘 사이에 발생하는 내부의 균열에 의해 파괴됨으로써 현실적인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헤어진 연인을 향하여 애처로운 눈빛으로 무한한 애틋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그리고 그 마음을 평생 동안 간직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엠마의 말은 아주 흔한 말이기도 해서 그녀들의 사랑에 어떤 괴리감을 가질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 과감한, 과도하다고 여겨지기도 하는 섹스 신을 제외한다면 영화는 한 여고생의 성장 스토리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녀의 성장에 가장 커다랗게 작용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유의지이다. 그리고 영화 속 아델의 자유의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어떤 성과도 가능한 사랑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를 비틀어 소녀는 오르가슴은 본질에 앞선다고 말한다), 이라고 할 수 있다. 지극히 현실적인 가족에 뿌리를 둔 아델과 보다 자유로운 것처럼 보이는 가족의 일원이었던 엠마의 서로 다른 지향이 미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상적인 사랑을 갈구하였던 아델과 결국 현재의 안정을 희구하는 것으로 안착하고마는 엠마는 이렇게 정반대에서 시작하고 있었다.



서툴지만 충실하게 자신을 찾으려고 하였던 소녀 아델, 그리고 그 소녀를 겉으로 드러난 양태 이전의 존재의 세계로 이끌었던 엠마에 대한 이야기인 영화는 블루를 테마라고 하고 있기도 하다. 처음 아델의 눈에 들어오는 엠마의 머리는 파란 색이다. 그들을 분별할 필요가 없는 열정의 세계로 이끄는 것이 바로 그 파란 색인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이 난 후 그림 속에 박제된 그들의 사랑도 파란 색이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 아니라, 라고 선언하듯 팔랑거리며 거리를 걸어가는 아델 또한 파란 색 원피스를 입고 있다.


차갑고 이성적인 색이라고 불리우는 블루가 영화 속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로 해석되고 있다. (영화는 쥘리 마로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그리고 그 책이 카페 여름의 책꽂이게 꽂혀 있는데, 다음 주에 읽어봐야겠다.) 영화에서 블루는 거부할 수 없는 욕망의 색이며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의 색이다. 그렇게 전시회장을 떠나 거리로 들어선 엠마 그 이후의 숨겨진 행보 또한 아마도 그 파란 색으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파랗게 보여지는 아델의 뒷모습은 발현된 자유의지의 모습이기도 한 것이다. (프랑스의 국기에 실린 세 가지의 색 중 블루는 자유를 의미한다)



영화의 이러한 풍성함은 두 배우의 연기에 의해 기대는 바가 크다. 기성 배우가 아니었던 아델 에그자르코폴로스의 그 때묻지 않은 연기도 그러한 아델을 혼돈과 열망의 세계로 이끄는 레아 세이두의 연기도 훌륭하다. 그저 본능에 충실한 섹스 이전에 이미 참을 수 없는 식욕을 리얼한 모습으로 보여주었던 아델의 칼을 훑는 입술과 보도에서 마주치는 잠깐의 시간 아델을 향하여 보내던 엠마의 고개 돌린 눈빛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 내리 비치는 햇빛을 가운데 놓고 키스를 주고 받는, 점등하듯 너무 환하거나 너무 어둡게 들이닥치는 햇빛의 미장센을 연출한 감독의 연출력이 (현장에서 지독하기 그지 없었다는 감독에 대한 후문에도 불구하고) 추가되니, 쉽사리 잊힐 것 같지 않은 영화 한 편이 되었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 (La vie d'Adele - Chapitres 1 et 2, Blue is the Warmest Color) / 압델라티프 케시시 감독 / 아델 에그자르코폴로스, 레아 세이두 출연 / 179분 / 20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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