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코엔 에단 코엔 감독 <인사이드 르윈>

현실과 꿈이 오버랩되는 뫼비우스 띠, 우리들 내면을 찾아가는 여정...

by 우주에부는바람

함께 극장을 빠져 나오던 지인은 영화를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분개하였다. 그녀는 찌질하기 그지 없는 영화 속 르윈의 캐릭터를 향하여 화를 내고 있었다. (아마도 그녀를 가장 화나게 한 르윈의 행각은 자신이 친 고양이가 절뚝거리며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한 것이리라...) 르윈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대체 무엇이냐고 항변하였다. 물론 나는 영화에 대한 그녀의 평가에 동의하지는 않았으나, 그녀의 르윈을 향한 분개에는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다만 우리의 내면 또한 청정한 지역은 아니어서 우리들의 내면은 모두 조금씩은 르윈의 내면을 닮아 있기도 하고, 또는 르윈과 닮은 구석을 지닌 누군가를 통하여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어쨌든 영화 속 르윈은 지인의 분개를 이끌어 낼 만큼 어처구니 없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 없는 캐릭터야말로 진정 코엔 형제의 캐릭터이기도 한 것이다) 영화 초반부에서 이 어처구니 없음의 정점은 아마도 친한 동료인 짐의 여자 친구인 진과의 설정일 것이다. 짐과 진의 집에서 신세를 지던 르윈은 진과 섹스를 했고, 진은 임신을 하였으며, 진은 르윈에게 낙태를 위한 수술비를 요구하는데, 르윈은 그 수술비를 짐에게 빌릴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르윈은 진으로부터 콘돔을 뒤집어쓰고 살라는 아니 아예 다른 누구와도 접촉을 하지 말고 살라는 말을 듣는다. 반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런가하면 영화 후반부 주류를 향한 마지막 도전마저 수포로 돌아간 이후 오래 전 따놓은 선원증으로 배를 타려고 나서는 장면에서도 충분히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빠진다. 배를 타기 위하여 거액을 쏟아 부었는데 선원증이 없으면 안 된다고 한다. 결국 선원증을 찾아 누나를 찾아가는데 이미 선원증은 르윈의 다른 물건들과 함께 버려진 후이다. 르윈은 누나를 향해 화를 내지만 사실 그것들을 챙겨 놓았던 것은 누나이고, 그것을 버리라고 한 것은 르윈이었다. (르윈은 선원증 재발급을 위하여 조합을 찾아가지만 재발급을 위해서는 또 큰 돈을 내야 한다.)


사실 이와 같은 르윈의 캐릭터는 코엔 형제의 영화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속 캐릭터는 홀로 진지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는 한없는 루저의 모습으로 비춰질 뿐이다. 게다가 이들 캐릭터의 공통점은 뭔가를 제대로 해보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일이 꼬여가기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대책 없이 일을 벌이고,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어 허둥대고, 그대로 일말의 책임감은 있어 어떻게든 감당하려고 하는데, 그러다가 더더욱 알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드는 것이 코엔 형제이 주특기로 삼는 영화의 진행 방식인 것이다.


좀더 자세히 스토리를 따라가 보자면 이렇다. 작은 레이블에서 앨범을 한 장 낸 경력을 지닌 무명의 포크 싱어인 르윈은 클럽에서 공연을 한다. 공연이 끝난 후 자신을 찾는다는 주인의 말에 뒷골목으로 나가고 그곳에서 의문의 사내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리고 께어나 보니 가끔 자신을 재워주는 골페인 교수의 집이다. 그는 집주인이 없는 그곳을 나오려는 순간 그 집 고양이가 빠져 나온다. 다시 그 집으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던 그는 결국 고양이를 안은 채 코트 조차 잃어버려 벌벌 떨면서 동료인 진과 짐의 집을 찾아간다.



억지로 청하여 그곳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날 그는 그러나 고양이를 잃어버린다. 그 다음 그는 진으로부터 임신 소식과 함께 폭언을 듣게 되지만 그 날 또 그 고양이를 다시 찾게 된다. 진과 짐의 집으로 갈 수 없었던 그는 고양이를 들고 골페인 교수에게로 다시 가지만 그곳에서 포크 가수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여긴 나머지 대판 싸움을 하게 된다. 게다가 자신이 찾아온 고양이가 실은 골페인 교수의 고양이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는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 아르바이트에서 만난 사내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되며, 그의 주선으로 시카고행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거구의 음악계 인물 그리고 정체 불명의 사내와 함께 한 여정은 그러나 시카고를 코앞에 둔 상황에서 동행은 끝이 나고 그는 고양이까지 차에 둔 상태에서 홀로 시카고로 향한다. 하지만 시카고에서의 일 또한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유명 레이블의 사장은 다른 사람과 함께 팀을 구성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라고 그를 평하고, 그는 자살한 옛 동료 마이클을 제외한 누군가와 팀을 할 생각이 없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길 번갈아 운전을 해주는 조건으로 히치하이킹을 한 그는 자신이 버린 고양이와 비슷한 고양이를 차로 치게 된다. 그리고 그는 고양이가 절뚝거리며 숲으로 사라지는 것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뉴욕으로 돌아온 후에 선원증과 관련한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 배를 탈 수도 없게 된 그는 요양원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아버지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주류 영화라면 뭔가 애틋하고 감동적인 장면이 이어지리라 여겨지는 그 순간, 치매에 걸린 아버지는 그저 바지에 실례를 할 뿐이고 그는 간호사를 찾는다.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 좌절감 속에 클럽을 찾은 그 앞에서 몇몇 팀이 공연을 한다. 게다가 클럽 주인은 그러한 그의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진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그는 괜스레 노래를 하고 있는 여자에게 폭언을 내뱉는다. 그리고 술에 취한 채 골페인 교수네를 다시 찾은 그를 골페인 교수 내외는 따뜻하게 받아준다. 골페인 교수의 진짜 고양이도 집으로 돌아온 다음이다. 그리고 고양이의 이름은 율리시즈이다. 그렇게 골페인 교수네서 잠을 잔 다음 날 집을 빠져 나오는 그를 고양이가 쫓아나오려 하고, 이번에는 그가 요령껏 발로 막아 고양이를 집을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는 클럽을 찾아가 자신의 노래를 부르고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처럼 누군가의 부름으로 뒷골목으로 나간다. 그는 영화의 시작에서처럼 그에게 린치를 당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누구인지 안다. 그는 어젯밤 르윈이 폭언을 퍼부은 여자의 가족이다. 그리고 르윈은 자신을 폭행 후 떠나가는 그를 향해 말한다. ‘Au revoir (안녕, 또 만나)’


르윈의 좌충우돌 기생하는 삶과 기상천외한 여행 그리고 음악, 에 대한 꿈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영화의 스토리는 일종의 뫼비우스 띠와도 같다. 한 바퀴를 크게 돌은 듯한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다. 르윈 데이비스의 내면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그녀의 분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끔, 우리는 영화에서 그의 내면에 수긍할만한 요소를 찾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쉽게 내팽개치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그것은 영화에 대하여 무궁무진한 해석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은 코엔 형제의 번뜩이는 재치 때문이다.



나름 철저하게 수미쌍관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영화를 보고 난 후 사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장자의 호접몽이었다. 뒷골목에서 맞고 잠에서 깬 르윈, 그 르윈의 다음 여정 모두가 사실은 꿈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여긴다면 골페인 교수의 집을 빠져 나오는 순간 르윈을 따라 나선 고양이는 장자의 꿈속의 나비쯤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현실과 꿈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정교하게 뭉뚱그려 버리는 (물론 이 <호접몽>의 코엔 형제 버전은 현실도 꿈도 모두 팍팍하기 그지 없다) 코엔 형제의 재기가 놀라웠다. 그런가하면 영화 <슬라이딩 도어스>도 떠올랐는데, 고양이가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던 르윈의 삶(이 부분은 영화에서 나왔고)과 고양이가 나오는 것을 막은 르윈의 삶(이 부분은 영화에서 제대로 나오지 않은)이라는 두 가지의 방식에 대한 탐구로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처럼 풍성한 해석의 여지가 아니라도, 영화 속 캐릭터들을 들여다보는 재미 또한 적지 않다. 비록 함께 영화를 본 지인으로부터 최강의 루저라 평가되었으나 어쩌면 관객이 그러한 시선으로 바라봐주기를 감독이 작정하고 만든 듯한 르윈이나 속사포를 쏘아대며 르윈을 몰아 붙이는 (문득, 누구의 애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르윈만을 닦달하는 것도 조금 엉뚱한 것 아닌가 싶지만, 어쨌든 내가 꽤나 애정하고 있는 캐리 멀리건이 아닌가.) 진도 그렇지만 시카고 여행에 동행하는 존 굿맨과 말 없는 기사(그러고보니 담배가 있으면서도 태연히 없다고 말하는 이 제임스 딘 삘의 인물도 찌질하잖아...), 클럽 주인까지 어느 하나 공들이지 않은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


데이브 밴 롱크라는 실존 인물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음악 영화이자 르윈의 꿈을 향한 뉴욕으로부터 시카고로의 여정을 잠시 거치는 로드 무비인 <인사이드 르윈>이 내게는 나쁘지 않았다. 수미쌍관의 형식으로 현실과 꿈을 오버랩 시키고, 고양이를 전면에 내세워 우연과 필연의 조화로서의 삶을 이야기하는 코엔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르윈의 내면은? 우리의 내면은? 하지만 이에 대해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자, 어디에 있을까 싶다. 그저 우리는 르윈처럼, 좌충우돌 꿈과 부딪치고 현실에 치이며, 한 평생 길 위의 여정을 헤맬 수 있을 뿐...



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 / 조엘 코엔, 에단 코엔 감독 / 오스카 아이삭, 캐리 멀리건, 저스틴 팀버레이크, 존 굿맨 출연 / 105분 / 20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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