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존즈 감독 <Her 그녀>

미래가 되어도 바뀌지 않을 우리들 외로움과 사랑의 어떤 양태에 대한 획기

by 우주에부는바람


내밀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가진 남자 테오도르가 있다. 이 남자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이트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필을 부탁한 사람들과 온전히 호응하여 자신의 일처럼 느끼며 편지를 쓰는 이 작가의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은 아마도 꽤 만족스러울 것이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 또한 이 작가의 능력을 높이 사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남자 또한 자신의 직업을 불만족스러워 하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남자는 외롭다. 어린 시절 그녀를 도와 함께 공부하였고 결혼까지 했던 캐서린은 이제 그에게 이혼 서류에 얼른 도장을 찍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이 끝나고 돌아오면 텅빈 아파트가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같은 아파트에는 오랜 친구 에이미가 있지만 그런 에이미와 그녀의 남자 친구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일도 힙겹다. 테오도르는 캐서린이 없는 자신의 삶을 쉽게 수긍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 이제 막 새롭게 포맷을 한 컴퓨터처럼 깨끗한 그녀 사만다가 있다. 어쩌면 그녀는 테오도르가 처음 만나던 시절의 캐서린과 닮아 있는 것도 같다. 백지와 같은 그녀는 테오드르의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고 언제든 필요한 순간에 테오도르의 곁에 있다. 물론 테오도르는 처음에는 갑작스레 등장한 사만다를 당황스럽게 여기지만 자신의 사소한 말에 친밀히 반응하고, 또 세심하게 말을 걸어오는 사만다와 조금씩 가까워진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비서 역할을 해주고, 하루의 피곤을 풀어주는 유머를 구사할 줄 알고,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그를 부추겨 거리로 나서거나 햇살 아래에 드러눕게 만들고,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그가 쓰는 편지를 수정해주기도 한다. 물론 서로의 감정이 친밀감 이상이 되면서 이상기류가 형성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테오도르를 소개팅으로 이끌기도 하였으나 그 이후 묘한 감정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질투심과도 같은...


이제 테오드로와 사만다는 본격적인 사랑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만다는 테오도르가 잠드는 순간 바로 곁에서 그의 숙면을 돕는다. 테오도르 또한 자신의 사랑을 숨기지 않는다. 사랑에 빠진 동료와 함께 더블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테오도르는 이혼을 요구하는 캐서린과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 만날 용기를 낸다. 그리고 캐서린에게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도 고백한다. 자신은 현재 사만다라는 이름을 가진, 자신의 컴퓨터 운영 체제인 OS와 사랑에 빠졌다고...



그러니까 SF 로맨스 코미디인 영화는 인간과의 사랑에 실패하고 무기력증에 빠진 한 남자 테오도르와 고도의 인공지능을 가진 채 인간과의 네트워크를 통하여 진화하는 것이 가능한 컴퓨터 운영체제인 사만다 사이의 연애를 그려내고 있다. 그것도 아주 설득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영화 속 사만다의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의 것인데, 그 까칠까칠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내내 스칼렛 요한슨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영화는 단순히 외로움에 약해진 현대인이나 그러한 외로움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대안으로서의 가상 공간 등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후에 진행되는 테오도르와 사만다의 사랑의 양태를 보자면 그렇다. 잠시 사만다와의 사랑에 대해 회의하던 테오도르는 그러나 결국 그러한 사랑을 고스란히 인정하기로 한다. 사만다 또한 이사벨라라는 실제의 여자를 테오도르에게 보내면서 실체 없는 자신에게 실체를 부여하려는 허망한 노력을 포기한다.



업그레이드된 사만다는 이제 테오도르만을 바라보던 예전의 사만다가 아니다. (과거의 캐서린이 테오도르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과 마찬가지로...) 사만다는 다른 운영 체제들과의 협업 하에 철학자를 사이버 공간으로 불러들이기도 하고, 테오도르의 책 출간을 돕기도 한다. 이제 둘 사이의 관계는 역전되어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질투하며 묻는다. 혹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과도 접촉을 하는 것이냐고... 그리고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고백한다. 자신은 지금 테오도르 외에도 8,361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이 중 641명은 사랑을 하는 사이라고...


영화는 설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어떤 미래에 벌어지는 사랑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과 컴퓨터 운영 체제 사이의 사랑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그러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 묘사되고 사랑의 주체인 테오도르나 사만다는 지금 우리 현대인들의 사랑의 수준과 아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사소한 만남과 설레임, 거듭되는 일상의 공유와 서로에 대한 이해, 서툰 질투와 오해, 이별과 그 이별에 대한 인정에 이리는 사랑의 전과정은 여전하다. 그러니 미래가 되어도 우리들의 사랑은 이렇게 운명적이면서 동시에 일상적일 것이다, 결국...



그녀 Her / 스파이크 존즈 감독 /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 루니 마라, 스칼렛 요한슨 출연 / 126분 / 20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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