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화음에도 멈출 수 없는, 삶이라는 이름의 우리들의 연주는...
영화의 여운이 꽤 길다. 거개의 예술 영화들처럼 사색으로 가득한 느린 화면 구성도 아니었다. 스펙터클이나 서스펜스가 없었어도, 장대한 스케일이나 치밀한 미스터리가 없었어도 영화는 보는 내내 지루함을 느낄 사이가 없다. 푸가라는 이름의 현악 사중주단과 그 단원들의 이야기라는 나지막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우리들 인생의 자연스러운 흔들림을 잘도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첼로를 켜면서 이 4중주단의 뼈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으며 가장 연장자인 피터, 그리고 이 4중주단을 만든 장본인이며 냉철하리만치 자기를 관리하며 그만큼이나 정확한 연주를 구사하는 제1바이올린의 다니엘, 냉정하기만한 제1바이올린을 받쳐주며 이들의 4중주에 색을 입힐 줄 아는 제2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버트, 한때 다니엘을 사랑했던 것 같지만 현재는 로버트의 아내로 이들 4중주에 깊이를 제공하는 비올라의 줄리엣이라는 네 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베토벤은 현악 4중주 14번 일곱 악장을 모두 쉬지 않고 연주하라고 써두었다. 악기 조율 없이 불협화음으로 끝까지 쉼없이 연주하라는 의미이다. 왜일까?”
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피터는 현자의 모습에 가깝다. 그는 평생을 연주에 몰두하면서 일종의 경지에 올랐는데, 그것은 어쩌면 음악과 인생을 하나의 선율로 이해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그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이들 사중주단이 와해의 위기에 몰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버트의 하룻밤 외도는 로버트와 줄리엣의 별거로 이어지고, 다니엘은 이들의 딸인 알렉스를 가르치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인생은 원래 엉망이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공연을 앞두고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 와중에 다니엘은 이렇게 외친다. 어쩌면 베토벤이 현악 4중주 14번을 작곡하며 쉴 틈을 주지 않은 것은, 그렇게 악기를 조율할 틈을 주지 않음으로써 불협화음에 이르게 만든 것은 원래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게 조율된 음악처럼 말끔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에둘러 말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생은 원래 엉망이고, 삶에 반응해야 하는 음악 또한 어차피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 완벽한 연주가 아니더라도, 어느 한 부분이라도 감동을 주었을 때 우리는 그 연주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피터가 카잘스와의 일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감동적이다. 피터가 아직 학생이던 시절 카잘스 앞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다. 피터 스스로도 못마땅했던 연주에 대해 카잘스는 칭찬을 하였는데 피터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카잘스와 친해진 피터는 과거 자신을 칭찬했던 카잘스에게 정말 자신의 연주가 칭찬받을만한 것이었는지 따진다. 그리고 그 순간 카잘스는 즉석에서 과거 그 순간 피터의 연주를 복기하며, 자신이 감동을 받았던 그 지점을 정확하게 밝힌다.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나 홀로 완벽하다고 해서 완벽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과 호흡을 맞춰가야 하고, 또 바로 그 사람들과 부딪치기도 해야 한다. 우리는 어느 한 순간 살기를 멈추고 스스로를 조율할 시간을 가질 수도 없다. 그래서 어느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토해내는 불협화음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니까 우리의 삶이 완벽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의 어느 한 지점이 내는 빛으로 인해 누군가가, 그러니까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가 움찔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그것만으로도 살아냈음의 감격을 누릴 자격을 갖추게 되는 것 아닐까...
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 / 야론 질버맨 감독 / 크리스토퍼 월켄,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캐서린 키너, 마크 이비니어, 이모겐 푸츠 출연 / 105분 / 2013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