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력으로 시멘트를 깨부수고 그 아래 씨감자를 잘도 골라내는...
*2013년 7월 7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어째 작가의 소설을 거슬로 올라온 느낌이다. 현대문학에 실린 그의 소설을 본 것이 1999년이었고, 이후 그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읽었으나, 그의 첫 번째 소설집은 이제야 읽는다. 부러 차별화 전략을 쓰지 않고도, 자신의 속에 품고 있는 다종다양의 이야기들을 썰이라도 풀 듯이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개성을 십분 발휘하는 작가다. 재기가 출중하지만 그 재기를 섣부르게 쓰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버니」.
버니로 거듭나는 보도방 한 구석이 모자란 순희의 인생 이야기이자, 이러한 순희를 근거리에서 지켜봤던 나의 이야기이다. 선생을 쥐어 패고 학교를 나와서 십대에 보도방을 차리고 그 보도방에 순희가 들어오고, 신음소리 같은 비트박스와 함께 랩으로 노래를 부르며 섹스를 하는 순희는 점점 바빠지고, 그러다가 어느 날 호텔에 불려갔다가 픽업이 되어버린 순희 아니 버니...
「햄릿 포에버」.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의 질문에 답변을 하는 이시봉의 이야기... 본드를 불던 어린 시절을 만회하고자 극단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던 이시봉에게 어느 날 햄릿의 어느 역할을 맡게 되지만, 곧 극단 대표인 차서화에 의해 그 역할이 사리지는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 이시봉의 눈 앞에 햄릿이 나타나고, 이시봉은 그 햄릿의 조언을 받아 새롭게 재해석된 햄릿 극본을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시봉이 다시 본드를 불기 시작하면서 벌어진 일...
「옆에서 본 저 고백은 - 告白時代」.
“... 이제 뻔한 불행은, 그게 아무리 사실이라 하더라도 더 이상 불행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미처 자신들이 생각해내지 못한 불행, 좀더 불행한 불행에 약해지는 법이다...” (p.90) 형님들이 운영하는 채권추심 업체에 들어가기 위해 자기 소개서를 쓰는 시봉의 이야기... 하지만 이들을 대신하여 자기 소개서를 쓰기로 한 어벙한 피씨방 알바 팔대이는 점차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간다. 아직 어린 범죄자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작가의 시선은 사적인 훈계조도 그렇다고 거시적인 사회비판의 거드름도 아니다. 그만의 방식으로 그는 바로 그들에게로 빙의하고 있을 뿐이다.
「머리칼 傳言」.
삼손의 머리칼 이야기를 지금 여기로 옮겨 본다면... 고아원에서 작은 절로 옮겨졌던 여자 아이의 머리칼에 숨겨져 있던 힘은 무쇠 머리핀으로 겨우 달래지고 있었다. 하지만 한 사내에 의해 그 봉인이 풀리고 이제 여자의 머리는 그 남자로 하여금 멈춰지지 않는 충동의 질주를 거듭하도록 만드는데...
「백미러 사나이 -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박통이 죽고 연일 티비에서 관련 뉴스들이 쏟아지던 시기, 아버지가 집어던진 재떨이 파편으로 인해 뒤통수에 구멍이 생겨버린 그, 그리고 그러한 그를 야매로 치료해준 최씨... 그리고 나는 그 날 이후 눈을 감으면 뒤통수의 눈이 떠지면서 뒤를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박통의 눈이었다. 이 뒤통수에 달린 눈으로 대학까지 진학하게 된 그는 어느 날 시위 현장에서 뒤로 달리다가 선봉대가 되고,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치닫게 되는데...
「간첩이 다녀가셨다」.
동해에 침투한 잠수함, 남한에 도달한 간첩, 그리하여 그 간첩을 잡기 위해 동원된 예비군들의 이야기이다. 우연찮게 그들 사이에 섞인 외지 출신의 부동산 투기꾼이 죽게 되고, 이 죽음 이후 동향 선후배 사이인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촌극이 주요 내용이다. ‘우리도 보지 못했는데.... 간첩이 분명한 것 같아’라는 이들의 멘트는, 피해가 있지만 가해의 정체가 불분명하면 의례히 등장하는 ‘북한 소행’ 이라는 정부의 외침과 어찌 이리도 닮아 있는지...
「최순덕 성령충만기」.
성경책을 그대로 본 딴 편집 형식부터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성령으로 충만하여 바바리맨 혹은 아담이라 불리우는 한 남자의 구원에 올인을 했던 최순덕의 전도기가 그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열여덟 살 순녀는 모두가 피난을 떠난 마을에서 감자밭을 지키다가 어느 날 검은 소에게 엉덩이를 내밀었다가 한 아이를 잉태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아이를 낳으니 그 이름이 우석이다. 하지만 이들의 평화는 오히려 전쟁이 끝나고 순녀의 감자밭 자리에 군부대가 들어서면서 헝클어진다. 군부대 막사나 사격 훈련장으로 바뀐 감자밭에 씨감자라도 심으려던 이 모자의 노력은 번번히 실패로 끝나고, 이들은 이제 사라져버렸다. “이제 이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그들 모자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으니 이 이야기의 운명 또한 다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들 모자는 어느 곳 어느 땅에서 씨감자를 심고 있을지 모른다. 또 그들 모자가 파종한 씨감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집 앞,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정말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십오 센티미터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 (pp.308~309)
마지막 소설 마지막 부분에 눈이 간다. 소설집에 실린 작가의 모든 소설은 바로 이 모녀의 씨감자와 닮아 있다. 작가는 우리들의 빈곤한 상상력 그리고 동시에 견고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시멘트 세상을 자꾸만 망치로 깨부순다. 그리고 그 아래에서 알 굵은 감자가 될 요량으로 움 틔울 준비하고 있던 씨감자를 잘도 골라낸다. 이제 슬슬 ‘상상 좀 하고’ 살면서 우리 발밑 어딘가로 사라진 사람들이 심어 놓는 씨감자 골라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기호 / 최순덕 성령충만기 / 문학과지성사 / 333쪽 / 2004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