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허락되지 않는, 그리고 그 유지 또한 쉽지 않은 소설가, 로 살아가
*2013년 4월 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가까스로 20도 정도가 열릴 뿐인 오피스텔의 창문, 그 창문으로도 금세 빗소리는 들이친다. 그 사이사이 글감옥에 갇혀 있는 직장 동료로부터 메시지가 날아든다. 사월 초순, 반도의 어느 곳에서는 눈이 내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중구난방 좌충우돌하면서도 오기와 결기로 꿋꿋하게 제 갈 길을 걷고 있는 동료가 안타까워 메시지를 모른 체 할 수 없다. 쉬이 허락되지 않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중이다. 나는 사십 오 년 전 오늘 태어났다.
“이 책은 그동안 월간 《문학사상》에 연재됐던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이라는 작가의 창작 노트를 한데 모은 것이다...” (p.7)
위에서 언급한 동료는 나보다 열한 살이 어리다. 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지난한 청춘의 시절을 보냈으며, 나의 회사에 들어온 다음에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지금 여기에 강하게 집착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여기가 아닌 곳을 향한 질주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정을 가진 덕분에 그녀는 지금 한 대학의 문예창작과 대학원에 적을 두게 되었다. 글 쓰는 사람을 지향하는 그녀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두리번거리다가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프로페셔널한 작가들의 창작에 대한 이야기가 혹시 이제 막 습작의 마당에 한 발을 들이민 어린 그녀에게 도움이 될까 싶었기 때문이다.
책에는 모두 열일곱 명의 작가들의 글이 실려 있다. 월간지에 실린 글을 모아 놓은 것인데, 작가들의 면면이 꽉 찬 느낌이다. 게다가 이들이 한창 활동을 하고 있으니 화석 같은 이야기도 아니다. 지금 그들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혹은 그들이 글을 쓰는데 스스로 도움을 받고 있는 이야기이며, 그들이 글을 쓰게 된 어떤 계기 혹은 그들이 글을 쓰드록 추동하는 무엇에 대한 이야기이기다. 또한 그들이 글을 쓰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또한 적나라하게 실려 있다.
“글을 쓸 때, 나름대로 구성을 하고 시작하긴 하지만, 쓰다 보면 삼천포로 빠질 때가 많다. 조금 쓰다 보면 생각이 다른 길로 갈래를 치며 나아간다. 그럼 그 길을 따라가본다. 그러다가 다시 샛길이 나타난다. 그 무수한 샛길들 속에서 헤매기 일쑤다. 원점으로 돌아와서 다시 시작할 때도 있다. 꼭 똥 마려운 강아지가 똥 눌 곳을 찾지 못해 끙끙거리는 듯한 심정이 된다. 그렇게 끙끙거리다 보면, 이거다 싶은 순간이 온다. 그동안 헤매던 길들 사이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이 선명하게 보이는 순간이. 그 순간의 기쁨은, 마약을 해본 적은 없지만 거의 그것과 비슷하리라는 짐작이 들 정도다.” (이혜경, p.190~191)
작가들의 글은 ㄱㄴㄷ 순서로 배치되어 있다. 김경욱의 <작가, 화자, 주인공>이 조금 본격적인 창작론일 뿐 나머지 글들은 창작론이라기 보다는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작가들의 이런저런 심상이 소품처럼 펼쳐질 뿐이다. 그들의 글을 통해 독자인 나는 김애란과 단어, 김연수와 음악, 김인숙과 역사 혹은 인물, 김종광의 각오 등을 살펴볼 수 있을 따름이다. 물론 그것이 싫지는 않다.
“나는 3인칭 주어를 거의 쓰지 못한다. 나는 그것이 무섭고 낯설다. 가끔씩 3인칭 주어를 끌어다놓고 문장을 만들기도 하지만 그 3인칭 주어를 뒷받침할 만한 술어를 찾아내기란 대체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쓴 3인칭 문장은 그 허우대만 3인칭일 뿐 결국은 1인칭에 불과하다...” (김훈, p.84~85)
역시 출중한 김훈의 글을 읽을 때는 글을 대하는 그의 치열하고 치밀하며 남성적인 감수성 짙은 문장들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가 고집하는 1인칭의 내막을 보다 정면으로 대면해볼 수도 있다. 그런가하면 좌충우돌 중구난방한 관심 속에 강력한 허허실실을 보여주는 박민규의 글은 첫 문장부터 역시나 남다르다. 단어가 아니라 문단을 휘젓는 그의 특기는 단순한 창작노트에서도 잘 드러난다.
“엎드린다.
그리고 심심하다. 아니 엎드리는 것은, 그 자체로 심심한 일이다. 그래서다. 엎드린 채 바쁜 인간은 없다. 서서 바쁜 인간 앉아서 바쁜 인간은 많고 많지만, 엎드린 채 바쁜 인간은 없다. 그래서다. 그래서 나는 엎드린다. 엎드리면 쉬이, 곧 누구라도 심심해진다. 심심深心, 할 수 있다. 그것은 생각처럼 쉽거나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튼
심심하다.” (박민규, p.98)
이어서 서하진은 소설가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심윤경은 작가가 된 내력과 그 후의 두려움에 대해, 윤성희는 한컴쪽지 기능을 이용해 메모한다는 사소한 습관에 대해, 윤영수는 결국 혼자만의 작업인 소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심도 깊은 창작론이 아니라 생활밀착형 창작론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싶은 글들이다. 이어서 이순원은 자신의 작품 《은비령》에 얽힌 비화를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또 내가 꽤 동의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데 왜 고집스럽게 안 가보느냐 하면 소설의 무대라는 것이 글을 쓰기 전 막상 가서 보면 눈으로 본 것에 사로잡혀 거기에 있는 것 이상의 의미를 그려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막상 글로 그려내는 것은 제가 눈으로 봤던 것보다 못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머릿속에서 그 무대에 대해서 온갖 상상력을 동원합니다.” (이순원, p.185)
그 다음에는 가장 소박해 보이는 이해경의 글쓰기에 대한 접근법이 나오고, 첫 문장과 첫 문단과 첫 페이지를 믿는다는 전경린이 나오고, 보는 자로서의 소설가를 말하는 하성란이 나오고, 굵직한 음성을 지닌 한창훈의 사실주의적인 소설 기법이 실종되거나 천대받는 현 문학 세태에 대한 날선 목소리가 들린다. 한창훈의 말은 특히나 요즘의 기성 문학판을 향한 유의미한 독설이라고 볼 수 있다.
“가난과 외곽을 그리는 소설은 의미를 잃는 시대에서 나는 소설가로 살고 있다. 변방의 삶을 그들의 언어로 쓴 소설이 나오면 으레 고색스러운 방 하나에 한꺼번에 모아놓고 체크인해버리는 게 요즘 풍토이다.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욕망과 만나고, 그렇기 때문에 우울하고, 우울하기 때문에 웬만한 책임은 피할 수 있는 소설이 무심코 책 펴보면 만날 수 있는 내용의 대부분이다. 대중 속의 고독도 사람의 일이라 작가가 그곳으로 손을 뻗지 않으면 안 되지만, 너무 많이들 어두운 카페로 걸어들어가 버렸다. 개인의 우울이 사회의 비참보다 더 크고 강렬해져버린 것. 이른바 문학적이다. 그러나 문학을 키우는 것은 비문학적인 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한창훈, p.246)
그리고 마지막의 글은 함정임의 것이다. 이 책이 나온 출판사 문학사상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 같은 작가는 그곳에서의 생활을 비롯해 문학판의 사람들과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추가하고 있다. 한자리에 모아 놓기가 불가능할 것 같아 보이는 작가들의 글을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만든 것은 문학사상 출판사의 유구한 역사 덕일 것이니, (비록 철자의 순서에 따른 것일 테지만) 나름 이래저래 매칭이 된다고나 할까.
동료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해줘볼까 하는 생각으로 읽었지만 읽는 재미가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작가들이 독자인 내가 현재 읽어내고 있는 소설의 저자들이니 더욱 그렇다. 사실 대학원에 진학한 그녀를 보니 쓰고 싶은 욕구가 자꾸 꿈틀대는 요즈음이다. 향유하는 계층으로 남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얼마나 편안한가 (글감옥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녀를 보아라!!!), 하면서도 욕구는 멈추지 않으니 어찌할꼬...
소설가로 산다는 것 / 김경욱, 김애란, 김연수, 김인숙, 김종광, 김훈, 박민규, 서하진, 심윤경, 윤성희, 윤영수, 이순원, 이혜경, 전경린, 하성란, 한창훈, 함정임 / 문학사상사 / 266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