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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

일상을 영위할 동력을 사방의 일상에서 구하려는...

  올 겨울엔 눈이 적지 않았다. 그저 느낌일 수도 있다. 마지막 눈이 내린 것이 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아직 마지막 눈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의 저자는 마지막 눈이 내린 것이 언제였는지를 떠올리려는 사람일까, 아니면 기약 없는 마지막 눈을 기다리는 사람일까 잠시 생각하였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마음 어디에선가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읽다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작품 같은데, 보석 같은 문장이 한두 문장쯤 툭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런 문장을 만나는 순간이 나는 너무 좋다. 그런 문장은 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형편없는 삶은 없다는 증명 같기도 하고, 누구에게나 빛나는 한 가지는 있다는 외침 같기도 하다...” (p.48)


  발췌해 놓은 문장을 읽다가 오래 전 친구와의 대화 한 토막이 떠올랐다. 아마도 재능에 관한 것이었는데, 재능에는 큰 재능과 작은 재능이 있고 작은 재능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니 너는 재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대화였다. 작가가 발견하려는 ‘보석 같은 문장’과 내가 발견하고자 한 ‘친구의 작은 재능’은 얼마간 닮아 있다.


  “꿈에 관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경구는 황동규 시인의 시 「꿈, 견디기 힘든」에 나온다. 그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황동규 시인은 꿈을 이렇게 정의한다. ‘꿈, 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삶의 전부’라고. 이루지 못한 꿈이라고 그것이 삶의 일부이거나 백일몽은 아닐 것이다. 내가 꾸었던 그 많은 꿈들은 여전히 내 삶을 이루는 전부다.” (p.84)


  그런가하면 그림 그리는 후배와의 대화도 떠오른다. 후배의 후미진 작업실에서 나눈 대화였을 것이다. 후배의 스스로를 향한 투덜거림을 향하여 나 또한 투덜거렸는데, 내용인즉슨 너는 어찌하여 가만히 앉아 정진하지 못하고 재능을 낭비하느냐는 것이었고, 이에 대해 후배는 가만히 앉아 정진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재능이고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이라고 일갈하였다. 아직 주변의 많은 이들이 꿈을 가지고 있던 시절의 대화였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제멋대로 움직이는 동물의 삶 같지만, 실은 한자리에 꽂혀 한자리에서 늙어가는 식물의 삶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제 수명 다한 식물을 뽑아내다보면 흙 위에서 어떤 꽃을 피웠고 어떻게 시들었든 한결같이 넓고 깊은 흙을 움켜쥐고 있다. 바닥을 치고 딛는 힘이 강할수록 꽃도 열매도 실하다. 사는 게 어려울 때, 마음이 정체될 때, 옴짝달싹할 수 없게 이것이 내 삶의 바닥이다 싶을 때, 섣불리 솟구치고 않고 그 바닥까지도 기어이 내 것으로 움켜쥐는 힘, 낮고 낮은 삶 사는 우리에게 부디 그런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p.182)


  세월이 흘러 이제, 자신의 갖지 못하였거나 가지고 있다고 넘겨 짚을 수 있는 재능을 논하는 일만큼 허송인 것이 없음을 모르지 않게 되었다. 그저 지긋한 마음으로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서 삶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의 힘겨움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글 군데군데에 이러한 힘겨움의 기척이 드물지 않게 배어 있다. 어느 삶인들 그런 기척 없으랴, 하는 심정도 같이 느낄 수 있다.


  “마음은 중앙으로 향하고, 욕망은 상단에서 춤을 추다 곤두박질치면 위로는 늘 내가 돌아보지 않던 자리에서 찾아온다. 일상에서 나랑 무관하다고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내가 그 자리를 떠날 때 내내 함께였다고 믿은 누구도 건네지 않는, 누구보다 따뜻한 인사를 받게 될 때마다 나는 부끄럽다. 그들을 보지 않았던 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내가 그들과 다른 사람인 것처럼 나도 모르게 부린 허세를 들키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p.227)


  꿈이나 재능에 기대지 않아도 일상을 영위할 동력이 있다, 아마 있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여태 살아가고 있음으로 이를 증명해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붕괴되지 않았고 아직 소멸하지 않았으며 다만 피로할 뿐이다. 요즘 나의 일상을 독려하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스위치는 달리기이고, 그렇게 켜진 일상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곳은 병든 부모님이 댁이다. 거기가 어쩌면 ‘나의 살던 골목’이므로...



한지혜 /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 교유서가 / 283쪽 / 20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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