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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30. 2024

반수연 《나는 바다를 닮아서》

응원하고 싶다가 응원받고 마는 '유난히 정직'한 이야기들...

  “소설을 쓸 때는 인물이라는 가면 뒤에 숨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떤 가면을 쓰든 수시로 가면을 벗고 알몸의 내가 불쑥 드러나 곤혹스러웠다. 가면을 벗어던진 내가 쓰는 결론이란 건 언제나 뻔했다. 살아내는 일은 아프고 세상은 야속하지만 그래도 살 만하다. 개가 사람을 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개를 무는 낯선 이야기를 쓰라는 말도 더러 들었다. 그래도 나는 개가 사람을 무는 이야기밖에 쓸 수 없었다. 유난히 정직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이야기를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p.7)


  새롭고 특이한 이야기를 읽거나 보는 일에 환장하였던 시절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선가,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개를 무는 일’도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낯섦을 향하여 너도나도 짐승같은 이빨을 들이밀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 아무도 ‘개가 사람을 무는 이야기’ 따위는 쓰려 하지 않으니, 이 산문집 《나는 바다를 닮아서》을 통해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밴쿠버는 레인쿠버라고 불릴 만큼 가을부터 겨울까지 비가 많이 내린다. 가끔 지루하게 내리는 겨울비를 불평하면 그래서 이곳의 나무가 좋지 않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 겨울비가 여름의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맞는 말이다. 식물을 키우다보면 그것을 뿌리 내리게 하는 것이 바람이고 자라게 하는 것이 비라는 걸 알게 된다...” (p.15)


  흔들리는 나뭇잎과 삼투압에 대해 까페 여름의 형과 대화한 적이 있다. 바람과 비의 이야기를 읽고 그때가 떠올랐다. 산문집을 읽으면서 잊고 지내던 순간들이 여러 토막 떠올랐다. 솟구치는 것이 아니라 수면 위로 빼꼼 눈만 때로는 코까지 그러나 그 실체를 온통 드러낼 생각은 없는 과거의 순간들에 해당하는 장면들이었다. 책을 덮고 나면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이지만 이게 어딘가, 감지덕지 하였다.


  “훌륭하거나 크게 망한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내 아버지도 통이 큰 양반이셨다. 붕어빵을 팔다 곧 붕어빵 틀을 팔아 졸지에 떼돈을 벌기도 했고, 투전판에서 하룻밤에 집 한 채를 내다버리고 술에 취한 채 집으로 돌아와 잠든 자식을 쓰다듬다가 다음날이면 다시 보따리장사부터 시작하던 종잡을 수 없는 엉터리였다. 그래도 막내딸에 대한 사랑만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것을 알았다. 어렸지만 그런 것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 사랑을 영원히 잃었다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pp.80~81)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은 저자의 아홉 살을 읽으면서,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은 나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오남매의 막내였던 아버지는 아버지를 잃은 그때 어떠한 감정의 시간을 보냈을까. 이제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없을 만큼 정신이 황폐해진 아버지에게 그때를 물을 수는 없다. 아버지에게 그때를 물을 수 없게 되기 전까지 나는 아버지에게 그때를 물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나는 이제 영원히 아버지에게 문외한일 것이다.


  『“엄마, 나는 내가 뭘 못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아. 그래서 못해도 재밌어. 그런데 못하는 걸 잘 못 견디는 친구들은 나보다 훨씬 잘해도 시도하고 싶어하지 않더라.”

  아, 그제야 어떤 의문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 아이가 이런 재능을 가졌구나. 내게는 없는 재능이었다. 나로 말하자면 못하는 걸 너무 싫어해서 못할 만한 건 아예 근처에도 안 갔다. 하지 않음으로써 못하는 걸 끝까지 감췄다. 그래서 실패가 적었지만 사실은 시도가 적었던 것이다 때론 실패의 기미가 보이면 재빨리 발을 빼서 실패에 닿지 않게 했다. 거절당하는 걸 싫어해서 좀처럼 먼저 연락하거나 부탁하는 법이 없었다. 당연히 인간관계도 협소했다. 이런 내가 낳고 키운 아이는 어떻게 이런 재능을 갖게 된 걸까?』 (p.108)


  실토하자면 아직 셀프 주유소에서 주유를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일종의 셀프 주유 포비아인데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셀프 주유를 하다가 실패하여 일하시는 분을 호출하게 되는 순간을 떠올리면 그렇게 공포스러울 수가 없다. 반면 어제 철인3종 입문반에 등록했다. 즐비한 띠동갑들과 함께 뒤쳐질 게 분명한 세 가지 운동을 할 생각을 하면 잔뜩 긴장이 되는데, 이 긴장감이 즐겁다. 나는 저자가 낳고 키운 아이의 마인드에 가까워지고 싶다.


  “수술을 모두 마치고 겨우 부축을 받아 걷게 되었을 때 아이는 퇴원했다. 의사의 마지막 회진을 기다리는 사이, 아이는 병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이렇게 적었다... 산다는 것은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리는 빗속에서도 춤추는 일이다.” (p.117)


  산문집에는 저자의 가족 대부분이 등장한다. 저자를 비롯해 저자의 아버지, 엄마, 남편, 딸과 아들이 모두 주인공이다. 특히나 딸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나의 아이가 아닌데도 기특한 마음이 든다. 응원하고 싶다, 가 아니라 응원받고 말았다, 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아버지에 이어 엄마의 허약 시기 또한 시작되어 버린, 두 분의 병구완에 꽤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하는 내게 필요한 말이 위의 발췌문 안에 있었다.



반수연 / 나는 바다를 닮아서 / 교유서가 / 214쪽 /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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