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이나 부성은 천부적으로 타고나는 것일까. 이 영화로만 보자면 그렇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니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나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일 터이고 많은 부분 실제로도 그렇다. 영화 속 에바는 그렇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엄마가 되었다. 사람들은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슨 천부인권이라도 되는 양 모성을 발휘하게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난 네가 태어나기 전에 더 행복했어.”
영화 속 에바의 저 말은 자식을 궁지로 몰기 위해 던지는 괜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토마토 축제 현장 그리고 에바와 프랭크의 하룻밤을 도배하고 있는 붉은 빛은 모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 붉은 빛 속에는 성적 흥분만이 가득하다. 에바가 원한 것은 케빈이 잉태되기 전, 그러니까 흥분으로 가득한 축제 현장과 그것의 연장선에서 프랭크와 나눈 정사가 주었던 포만감까지이다. 그러니 임산부를 대상으로 하는 모임에서도 아이를 낳은 뒤에도 에바는 그저 지쳐 있거나 허탈한 표정만 지을 수 있을 뿐이다.
아이를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출산의 경험 이후에 모두가 달라지는 것처럼 (세상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특히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모든 것을 가능케 되는) 티비에서는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것 또한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수 있다. 에바의 육아 과정은 한 편의 전쟁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아이는 끊임없이 울고 울고 또 운다. 엄마는 시끄러운 공사장의 한 가운데로 유모차를 끌고 가고, 그 소음 한 가운데서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뿐이다.
“익숙한 거랑 좋아하는 거랑은 달라, 엄마도 나한테 익숙하잖아.”
아기는 아이가 되고 또 소년이 되면 이제 이 육아는 또 다른 전쟁의 국면으로 전환된다. 소년 케빈은 아버지 프랭크에게는 웃음을 보이지만 에바에게는 비웃음을 던질 뿐이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던 케빈은 커가면서 더욱 비뚤어질 뿐이다. 종종 에바에게 마음을 여는 것처럼 굴지만 곧이어 더욱 큰 배신감을 안겨주니, 에바에게 그것은 더욱 큰 고통이 된다.
그 사이 케빈에게 동생이 생기게 된다. 제대로 된 사랑의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케빈, 애초에 그런 (올바른 방법으로 기능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아는지조차 의문시 되는 소년 앞에서 어린 동생은 위태롭기만 하다. 그리고 급기야 어린 동생은 한쪽 눈을 잃게 되고, 이제 에바는 케빈을 포기할 작정을 한다. 하지만 이혼에 대한 에바와 프랭크의 대화를 들은 열 여섯 살의 케빈은 두 사람이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작정을 한다. 그리고 이를 실행한다.
영화는 내내 과거와 현재를 교차 편집하고 있다. 열락으로 가득한 토마토의 붉은 빛은 증오가 새겨진 페인트의 붉은 빛과 겹쳐진다. 날아갈듯 가볍게 거리를 뛰어가던 과거의 에바는 이제 거리에서 중년 여자로부터 기습적으로 따귀를 맞고도 항변하지 못한다. 사무실의 파티에서 경멸감 가득한 말을 들어도 그저 그곳을 벗어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제 에바는 교도소 면회소에서 딱 잘라 말하기 힘든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왜 그랬지?” 그리고 케빈은 대답한다. “그때는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쉽지 않은 영화다. 김기덕의 영화를 볼 때처럼 가슴 뛰는 심란함은 아니지만 머리가 복잡해지는 심란함이 발동한다. 오래전 스냅 사진과도 같은 화면 속에서 틸다 스윈튼과 이즈라 밀러가 보여주는 복잡다단한 표정만큼이나 관객인 나도 심란하다. 자식을 잉태하였던 에바에게 모성이 부족했던 것을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아야 하나? 아니면 아기일 때부터 그악스러운 울음을 그치지 않던 케빈을 무슨 절대악처럼 생각해야 하나? 탯줄이 잘려도 그 끈은 끊어지지 않는 법이니 모성 에바와 사이코패스의 기질 다분한 케빈을 하나의 세트로 생각해야 하나?
2003년에 출간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니 책을 읽어보는 것도 방법일 수는 있겠다. 여하튼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이쯤에서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동의한다면 영화는 긍정적인 쪽에 가깝다고 보게 될 것이다. 이와는 상관없이 모성에 대한 모독이나 절대악의 탄생 비화로 영화를 읽게 된다손 치더라도 나는 논쟁적인 영화가 좋다. 영화가 끝나는 순간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이 영화가 담당하는 중요한 순기능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 린 램지 감독 / 틸다 스윈튼, 이즈라 밀러, 존 C 레일리 출연 / 112분 / 2012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