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실연은 연애의 짝패와도 같으니, 무시할 수 없다면 반겨라...

by 우주에부는바람

*2012년 8월 25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우리나라 칙릿 소설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백영옥의 신간 소설이다. (게다가 단편 소설을 쓸 때의 작가는 칙릿 소설의 스타일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기 위해 애쓴다.) 이런 소설을 보고 있으면 흘낏 쳐다보는 아내의 눈길에 살짝 주눅이 들기도 하지만, 뻑적지근한 밥상을 해치우고 난 다음이라고 할지라도, 군것질의 유혹은 사라지지 않는 법이니까 (게다가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군것질거리고 하지 않는가) 라고 속으로 말하며 꿋꿋하게 읽는다.


“... 실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감각을 일시에 집어삼키는 블랙홀이고, 끊임없이 자신 쪽으로 뜨거운 모래를 끌어들여 폐허로 만드는 사막의 사구다.” (pp.56~57)


이번 소설에서 작가가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은 바로 ‘실연’이다. 연애나 패션, 다이어트 등과 같이 젊은 여성들의 관심사를 대상으로 삼을 때 칙릿 소설이라고 부르고는 하는데, 실연은 연애의 짝패와 같은 것이니 이번 소설 또한 젊은 여성들을 주요 타깃으로 한 작품일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스타일은 명품 브랜드인 ‘샤넬’을 통하여 젊은 여성의 무의식을 분석하는 경지에 이르기도 (게다가 이게 또 묘하게 수긍이 간다는...) 한다.


“... 브랜드 ‘샤넬’이 아닌 인간 ‘가브리엘 샤넬’은 오랫동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숨겨진 정부였다. 아내를 둔 남자의 애인들이 닥치는 대로 샤넬의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수면 위에 잘 드러나지 않는 가브리엘의 무의식과 고뇌를 닮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p.13)


소설은 누군가에 의해 마련된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모임의 공지는 트위터를 통하여 (그러니까 칙릿 소설은 트렌디를 중시하는 경향을 띤다) 전송된 것이다. 그리고 실연당한 사람들이 아침 일곱시에 모여 아침을 함께 먹고, 또 함께 <화영연화>, <봄날은 간다>, <러브레터>, <500일의 썸머>와 같은 영화를 보고, 마지막으로 실연의 상대로부터 받은 물건들을 마니또처럼 교환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모임에는 모두 스물 한 명의 참석자가 참가하였다.


소설은 이 중 사강과 지훈이라는 두 사람에게 포커스를 맞춘다. 스튜어디스인 사강은 유부남이며 기장인 정수와의 연애를, 기업체 연수원 강의를 주로 하는 지훈은 오랜 시간 사귀어 온 현정과의 연애를 끝낸 상태이다. 그리고 마침 두 사람이 서로의 기념품을 선택하여 들고 가게 되었다. 지훈은 사강이 내놓은 4개 국어로 된 프랑스와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 4권을 가지고 갔고, 사강은 지훈이 내놓은 로모 사진기를 들고 갔다. 그리고 지훈은 프랑스와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의 한국어판을 찾아 읽고 있고, 사강은 지훈의 로모 사진기에 들어 있던 필름을 인화하여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사강과 정수 그리고 지훈과 현정의 사랑과 실연에 대해 이야기함과 동시에, 사강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지훈과 그의 형이라는 가족간 사랑의 회복 가능성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실연, 그러니까 연애에 실패했다고 해서 모든 사랑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다분히 그렇게 받아들여질 만한 소지가 있지만 말이다. (소설에 인용된 바에 의하면 트루먼 카포티는 자신의 소설에 이렇게 말했다지 않은가. ‘세상의 모든 일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은 개인에 관계없이 세상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연인과 헤어진다면 세계는 그를 위해 멈춰야 한다.’ 라고...)


“‘슬픔이여 안녕’, 여기에서의 안녕(Bonjour)은 헤어질 때의 인사(Adieu)가 아니라 만날 때의 인사를 뜻합니다.” (p.411)


사실 실연은 그로 인한 슬픔에게 안녕(Adieu)을 고하는 것으로만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슬픔을 향하여 안녕(Bonjour) 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더욱 명확하게 실연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맞는 말이 많이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러 기능이 완벽하다거나 그 기능의 지향점이 높지는 않다. (그러니까 최고 난이도의 기술을 선보이는 체조 선수는 아니라는 것이다, 애초에 그런 난이도를 신청하지도 않았고...) 진지하게 따지고 든다면 소설의 내부에 이런저런 허점들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따지지 말기로 한다. 이미 이야기했지만 이 소설은 군것질거리이고 군것질거리에게서 보양식만큼의 스테미너를 얻고자 하는 노력은 허사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군것질거리로부터 얻는 위안이라는 것 또한 절대로 무시할 수 없음을...



백영옥 / 실연당한 사람들을 위한 일곱시 조찬 모임 / 자음과모음 / 432쪽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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