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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에부는바람 Jul 27. 2024

윤경희 《분더카머》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지의 공식을 향하여...

  언제가 우리가 보았던 예술 작품이 ‘분더카머Wunderkammer’의 전통에 속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분더카머는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진귀한 사물들을 수집하여 진열한 실내 공간’을 지칭한다. 분더카머는 ‘기예의 산물을 집적한 공간이라는 뜻에서 쿤스트카머Kunstkammer’라 하기도 한다. 분더카머는 ‘박물관과 미술관의 전신’이지만 다르다.  

  “분더카머를 재해석하는 현대의 몇몇 예술가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분더카머는 개별자가 세계와 상호작용하며 겪어온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진열실이자 마음의 시공간의 상징체다. 기억이란 대부분의 경우 그보다 훨씬 거대한 망각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가 각자의 마음속에 지은 분더카머 안에는 결코 미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예술 작품의 원형이나 고도로 완성된 지적인 사유의 언어가 저장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언뜻 보면 무가치한, 부서진, 깨진, 닮은, 기원과 이름을 모를, 무수한 말과 이미지의 파편들이 혼란스럽게 뒤섞여 공존한다...” (P.19)

  ‘기억’이 ‘망각의 잔여물’에 불과하다는 논점에서 나의 마음이 열린다. 보다 편하게 글을 읽을 수 있다. 나는 기억하기 위하여 글을 읽는 대신 망각하기 위하여 글을 읽는다. 어느 순간 망각하기 위하여 읽고 있다, 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 있다면 좋다. 내가 읽는 것이 이미지로 만들어지지 못하여도 골머리를 앓지 않기로 한다. 나는 잠시 애를 써보고 넘어간다. 길고 긴 회랑을 걷듯 읽는다.

 “그의 떠남. 이후. 엄습하는 잠. 무감각의 감각. 단속적으로 정신이 드는 순간마다 기어이, 며칠에 걸쳐, 겨우 쓴다. 어려운 책이 널린 서재를 벗어나 옛날의 다락방으로 간다. 혼자 울거나 잠들기에 더 적요로운 곳으로. 그곳에서 책 바퀴는 물레가 된다. 물레바퀴 위로 기억의 실타래가 돌아간다. 그것은 휘돌아 부풀며 이상하고도 낯익은 무늬를 자아낸다. 물레질을 할수록 사진처럼 점점 또렷해지는 그 이미지를 들여다본다...” (pp.40~41)

  낯선 것을 좋아하는 성향은 오래 되었다. 활자가 도드라지며 이미지를 포섭하는 동안 잠자코 기다리게 된 것은 최근이다. 때로는 이미지 대신 허공으로 가득 연기처럼 텍스트가 휘날린다. 나는 분별하거나 선별하는 대신 짐짓 모른 체 한다. 뒷짐을 지고 앞을 향해 걷는다. 제스처가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한다. 뉘앙스가 내는 소리를 들으려고 한다. 오감을 칸막이로 나눠 따로 다독이려고 한다.

  “... 수수께끼는 기억술의 탁월한 언어적 형식이다. 모든 인간적 경험은 수수께끼로 압축 변형됨으로써 망각의 파괴적 영향력을 벗어난다. 예술이든 언어든 인간의 죽음을 넘어 살아남은 것은 수수께끼의 형상을 하고 있다. 마음에 예술가를 품은 사람아, 그러니 너는 세상에 둘도 없이 아름답고 기이하게 이지러진 수수께끼의 세공인이 되기를, 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너보다 오래 생을 지속할 수수께끼를 건네주기를.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 네 죽음을 견디며 그것을 무한히 풀 것이다.” (p.60)

  묶여 었던 공간이거나 묻혀 있던 장소이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가 들여다볼 수 있는 곳에 내가 있다면, 나의 흔적이나 나의 궤적이라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이 옳다. 리얼리즘은 살아 있음의 확인이 아니라 죽어 있지 않음의 확신이다. 때때로 나는 나를 돌파하기 위하여 움직인다. 거리를 계산하고 속도를 입력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미지의 공식을 사랑함으로써 출발은 시작된다.

  “묘지를 다니던 봄에 H의 다람쥐가 갑자기 죽었다. 혹시 내가 며칠 전에 보낸 외래종 먹이 때문인가 하여 너무나 미안하고 무서웠다. 죄책감에 사로잡혀 오래도록 묻지를 못했다.” (p.262)

  분더카머는 내가 본 것보다 내가 보지 못한 것의 구역에 가깝다. 호기심으로 채워진 캐비닛인데, 그 철제의 촉감으로 만족하고 돌아설 수도 있다. 망각하기 싫다면 기억하지 않음으로 돌아설 수도 있다. 어쩌면 이 모든 상념은 잔망스러운 저녁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 가능하다면, 꼬리에 꼬리가 물리지 않도록 한 뼘쯤 서두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 온통 말의 무덤과도 같은 말인데, 도무지 묻지를 못하겠다.

윤경희 / 분더카머 : 시, 꿈, 돌, 숲, 빵, 이미지의 방 / 문학과지성사 / 300쪽 /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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