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덴 형제 감독 <자전거 탄 소년>

믿음과 배신의 어린 시절을, 거친 수도사처럼 통과하는 시릴...

by 우주에부는바람

*2012년 6월 26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예술 영화계의 형제 감독으로 유명하며 칸 영화제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처음 보게 되었다. 일찍 시작된 더위로 침대에 널부러진 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초점 맞지 않는 눈을 퀸 사이즈 베개에 눕혀 조정하며 티비 모니터를 향하였는데, 즐겨보는 프로그램인 <독립 영화관>의 초미,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틀어주겠다는 소개를 보고는 채널을 고정시켰다. (자기 취향이 아닌지 아내는 티비 모니터를 앞에 두고 <암호의 과학>이라는 책만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보육원의 시릴이 보여준 살아 있는 눈빛을 보며 곧 몰입할 수 있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데리러 온다고 한 아버지는 오지 않고,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전거의 행방도 묘연한 상황은 열한 살의 시릴을 생애 최고의 위기로 몰아 넣은 상태이다. 시릴은 보육원 사람들을 믿을 수 없고, 그러니 아버지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그들을 따돌리고 아버지와 함께 살던 아파트를 찾아갈 수밖에 없다.


학교까지 빼먹어가며 찾아간 아파트는 그러나 텅 비어 있다. 다만 그 소란 속에서 시릴은 도망 끝에 병원의 대기실에 숨어들고, 그곳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사만다에게 매달리며, 그것을 인연으로 사만다는 시릴의 자전거를 찾아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릴의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릴은 아버지가 자전거를 팔았다는 사만다의 말도, 주말에 놀러가도 되냐는 질문의 대답을 나중에 해주겠다는 사만다의 말도 믿지 않는다. 어린 시릴과 주변의 어른들 사이에는 보육원의 철망 담장이나 아버지가 일하는 식당 뒷마당의 담장과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담장이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담장은 어렵사리 찾아간 아버지가 보여준 태도로 인해 더욱 견고해진다. 자신의 생활을 꾸려가는 것조차 힘겨운 시릴의 아버지는 시릴에게 다시는 찾아오지 말 것을 종용하고, 주말 위탁모가 된 사만다의 남자 친구는 왠지 시릴에게 또 다른 불신덩어리 어른인 것처럼 느껴지며, 그 와중에 어렵사리 되찾은 자전거를 노리는 동네 건달들의 행태 또한 시릴을 괴롭힌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동네 건달 웨스는 어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시릴에게서 신뢰를 얻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시릴을 곤경에 빠뜨리게 된다.


어찌보면 사소하고 휘발성 강한 일상을 폭발성 강한 사건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역시 토마 도레에 의해 연기되고 있는 어린 시릴이다. 강한 믿음과 강한 의심은 일맥상통 한다는 아이러니를 어린 시릴이 몸소 실연하고 있는 것이다. 믿은 것만큼 배신의 쓰라림은 크고, 그러한 배신의 쓰라림은 쉽사리 치유되지 않으며, 또 다른 믿음과 배신의 지옥으로 시릴을 끌어 당기는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성장의 과정을 묵묵히 수행하는 시릴은 어린 수도자처럼 보인다.



예술 영화 특유의 혼란스러운 느림이나 거칠음은 없다. (다르덴 형제의 전작들을 보지 못하였는데, 대부분의 평은 <자전거 탄 소년>이 이전의 작품들에 비하여 대중적이고 친절해졌고 훨씬 따듯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간간히 사용되는 음악은 너무 짧게 끝나지만 (한 평론가는 이러한 음악의 사용이 연극의 막과 막 사이의 암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적절해 보인다. 이 형제 감독의 전작을 찾아서 보아야겠다는 정도는 아니었으나, 주말밤 조금은 혼곤하게, 어린 시릴의 버석한 심정이 되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시릴, 어른이 되어도 크게 나아지지는 않는단다, 의심과 배신의 세계는...



자전거 탄 소년 (Le Gamin Au Velo, The Kid With A Bike) /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 감독 / 토마 도레, 세실 드 프랑스, 제레미 레니에 출연 / 87분 / 2011 (2012)



ps. 유명한 형제 감독들을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자면 다음과 같다. 독립 영화계에는 조엘 코엔과 에단 코엔 형제가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탈리아의 파올로 타비아니와 비토리오 타비아니 형제 또한 예술 영화계의 유명 형제 감독이다. 데이비드 주커와 제리 주커 형제 (여기에 짐 에이브러햄즈를 포함하여 ZAZ 사단으로 불림) 는 패러디 영화계의 유명 형제 감독이다. 이들과 유사한 형제 감독으로는 바비 패럴리와 피터 패럴리를 꼽을 수 있다. 화장실 유머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다. 앤디 워쇼스키와 래리 워쇼스키 형제는 매트릭스 시리즈를 통하여 유명해진 형제 감독이다. 우리나라에는 김곡과 김선 형제 감독이 있다. 가끔 사람들이 <천하장사 마돈나>를 공동 연출한 이해영과 이해준을 형제로 오인하고는 하는데,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일 뿐이다. 이와 함께 공동으로 연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최고의 스타일을 자랑하는 형제 감독들이 있으니 리들리 스콧과 토니 스콧 형제를 거론할 수 있겠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들리 스콧 감독 <프로메테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