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리 스콧 감독 <프로메테우스>

<에이리언>의 스타일에 <블레이드 러너>의 존재론적 질문을 더하면...

by 우주에부는바람

1979년에 발표된 <에이리언>과 1982년의 <블레이드 러너>, 두 편의 영화를 통하여 SF 영화의 거장으로 자리를 매김한 리들리 스콧이 <프로메테우스>로 돌아왔다. <에이리언>이 보여주는 외계 생명체에 대한 혁신적인 스타일에 <블레이드 러너>가 포함하는 인간과 인간 아닌 것들을 포함하는 존재론적 질문을 동시에 갖고자 하는 야망을 숨기지 않는 <프로메테우스>가 나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74세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 자체가 가지는 무게도 상당하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의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줌으로써 문명의 기원을 만들고, 그로 인해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는 영화 속에서는 기원을 찾는 여정에 오른 인간들을 태우고 있는 우주선의 이름이기도 하다. 침범할 수 없는 영역, 그러나 호기심으로 인하여 침범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침의 영역을 향한 이들의 여정은 곧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의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신의 영역을 인간과 공유하고자 하였던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처럼 인간의 기원에 대한 호기심으로 불가침의 영역에 도달한 우주선의 승무원들은 곧바로 프로메테우스의 후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시작은 (사실 영화를 2D로 봤는데, 많은 평론가들은 3D로 펼쳐지는 도입부를 두둔하고 있다.) 외계의 종족이라고 보이는 자가 어떤 액체를 마시고, 원시 지구라고 생각되는 곳에 자신의 DNA를 흩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고고학자인 엘리자베스 쇼와 찰리 할러웨이는 고대 문명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동일한 패턴의 별자리를 확인하게 되고, 2089년 웨이랜드의 지원을 받아 드디어 별자리 속의 행성 LV233에 도착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들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구조물을 발견하여 탐사를 하기 시작하며, 드디어 <에이리언>에 잠시 등장한 바 있는 ‘스페이스 자키’와 (리들리 스콧 감독은 <에이리언>에 나오는 이 ‘스페이스 자키’에게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였다고 하며, 그것이 단초가 되어 ‘스페이스 자키’의 근원을 탐구하는 <프로메테우스>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맞닥뜨리게 된다.


(사실 이러한 연결고리들 때문에 <프로메테우스>가 <에이리언>의 프리퀄이냐 아니면 그저 스핀오프라고 보아야 하느냐는 논쟁이 있었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았다고 해서 이러한 논쟁이 명쾌하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프리퀄이라고 하기엔 채워야 할 연결 고리들의 공백이 많고, 그저 스핀오프라고 보기엔 과하게 연상작용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들이 많으니 개봉하고 한참이 지난 지금도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라고 봐야겠다.)


전체적인 스토리의 진행은 인간들의 우주선 프로메테우스와 외계 생명체의 우주선이라는 두 개의 구조물에서 이루어진다. 행성에 도착하며 인류 기원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지만 이어지는 상황들은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여기에 안드로이드인 데이빗은 찰리를 대상으로 위험천만한 실험을 강행하고, 찰리와의 정사를 통해 외계 생명체의 숙주가 된 엘리자베스는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되며, 죽은 줄만 알았던 웨이랜드사의 피터 웨이랜드가 등장하면서 인류 기원을 찾는 여정은 창조주에 대한 도전 혹은 불멸이라는 불가침 영역으로의 접근이 된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의 결론은 신화 속 프로메테우스가 독수리에게 자신의 간을 내줘야 했던 것처럼, 함께 하였던 대부분 인간들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어쩌면 창조주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욕망은 창조의 대상인 것들에게 내재된 본능과도 같다. 우리들은 그것을 종교로 순화시켜 습득하고 있으나, 영화에서는 그렇지 않다. 피터 웨이랜드는 직접 창조주와의 대면을 꿈꾸었고, 데이빗은 인간의 감정을 넘본다. 게다가 그러한 욕망의 너머에는 자신의 창조주를 뛰어넘고자 하는 욕망 또한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데이빗은 찰리 할러웨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피터 웨이랜드는 불멸을 꿈꾸었다.


하지만 어떤 순간 창조주는 자신이 창조한 것들에게 냉혹하다. (엘리자베스는 데이빗이나 자신이 낳은 에이리언에게 냉혹하고, 엔지니어는 인간들에게 냉혹하다) 그것은 창조주를 향한 창조된 것들의 욕망과 배신이 숙명인 것처럼 창조주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끝이 났으나 영화 속 질문들에 대한 탐구는 멈출 수가 없으니 이는 감독 리들리 스콧에 의해 조종된 관객들의 숙명이다. 영화 속 엘리자베스가 갖은 고통 속에서도 엔지니어들의 엔지니어를 찾아 더욱 거대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숙명이듯... 그렇게 관객은 후속편을 기다린다.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 리들리 스콧 감독 / 누미 라파스, 마이클 패스벤더, 샤를리즈 테론, 가이 피어스 출연 / 123분 / 201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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