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세하게 들여다본 죽음의 세계가 온전히 희화화되는 과정...
어린 시절에 내가 생각한 자살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어느 허름한 시골의 창고를 빌려서 그 안에 국화꽃(이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죽을만큼 충분하기만 하다면)을 가득 채운 다음 그곳에서 잠이 드는 것, 다른 하나는 잠이 들 정도의 수면제를 먹은 다음 아파트 옥상에 올라 그 난간에서 잠이 드는 것... 그런데 지금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생각하였던 자살 방법이라는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는 자살의 방법을 생각하는데 있어서도 유약하기 짝이 없었던, 의지박약의 젊은 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여하튼 그리 두껍지 않은 이 책은 각국의 법의학저널을 비롯하여 죽음과 관련한 여러 논문집을 통하여 발굴한 죽음(주로 자살)에 대한 보고서이다. 눈여겨 본 구절들에 짤막한 단상을 붙이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한다.
“어떤 방법을 동원했든 간에 자살에 있어서 가장 큰 성공의 열쇠는 굳은 결심이다. 이 책의 다른 꼭지에서(50쪽 참조) 가슴을 칼로 120번이나 찌르고 자살한 독일 남성의 거창하고도 고통스러운 사례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흉곽에 소총 14발을 쏜 벨기에의 남성의 사례를 들춰보자.”
-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자살의 의지, 라고 명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보통 40군데 이상의 자상이면 타살로 보지만 무려 120번을 찌를 동안 살아 있었던 남자나 단 한 발로도 충분한 총알을 14번이나 사용한 남자라니...
“자살할 수 있는 방법의 수를 고려해볼 때 ‘계획된 복합 자살’의 경우의 수는 거의 무한대다. 머리에 총을 쏘고 익사한 사람들도 있는데, 그들은 수영장이나 바닷가에 놀러가면서 총까지 챙겨간 사람들이다. 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가면서 총을 쏜 자살자들도 있다. 복합 자살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를 실시한 독일의 보네르트와 폴락은 자살자가 사용한 방법이 5가지나 되는 사례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그쯤 되면 완전히 병적이다.”
- 자살의 의지에 창의성이 보태진 경우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독일의 연구자가 보았다는 사례가 궁금해진다. 이건 뭐 슈스케 식의 악마의 편집도 아니고 뭐냐. 일주일을 기다린다고해도 사라지지 않을 저 다섯 가지 복합 자살은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 누군가가 상상력을 발휘하여 답을 해주면 좋겠다.
“... 이 저널은 (《미국법의학저널》제18권 제2호 148~153쪽) 엄청난 양의 동전을 꾸역꾸역 삼킨 다음 아연 중독을 일으켜 사망한 최초의 사례를 보고했다. 정신분열증을 앓던 미국인 남성의 위와 장에서는 총 461개의 동전이 발견되었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남자의 등만 두들겨도 잭팟을 터뜨릴 수 있었을 텐데...”
- 자살을 비롯해 죽음으로 가득한 책이지만 저자의 기술 방식은 코믹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인상을 찌푸렸다가 실실거렸다가를 무한 반복하게 된다. 이러다 정신분열증이 걸린다면 나는 지구 최초로 지폐를 먹고 자살하는 방법에 도전해 보리라.
“시체에서 떼어낸 피부로 양복을 맞추는 건 흔한 일은 아니지만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미국의 가장 엽기적 연쇄살인범으로 꼽히는 에드 기인은 ‘여자 시체에서 벗겨낸 피부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밤이 되면 그 옷을 가끔 걸쳐 입고 정원에 나가 춤까지 췄다나. 당시 대표적 시체성애자였던 그는 기발한 DIY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의 집에서 팔찌, 손가방, 전등갓에 이르기까지 사람의 뼈와 피부로 만든 물건들이 엄청나게 많이 발견된 것이다. 그는 구두상자에 소금을 넣고 거기에 여성 성기 9개를 보관해두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자기 어머니 것이었는데, 은색으로 칠해 다른 것들과 구별해 놓았다.”
- 참고로 내가 가장 깊숙하게 이마를 찌푸렸던 대목이다. 자살은 아니고 살인자의 기록인데, DIY 전문가라고 비아냥거리는 저자의 말장난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인상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 호텔 투숙객은 자기 방이 있는 층에서 뛰어내리는 경향이 있고, 단순한 방문객은 꼭대기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호텔에 안마당이 있으면 그쪽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 애틀랜타의 법의학자들은 지역 내 대형호텔에서 발생한 19건의 자살 사건을 연구한 후 이런 내용을 《미국법의학 · 병리학저널》(제11권 제4호 294~297쪽)에 실었다. 떨어지면서 소리를 지른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는 디테일과 함께.”
- 책에는 수도 없이 많은 자살의 방법이 등장하지만 이와 함께 자살에 대한 일종의 통계 자료들도 꽤 다뤄진다. 물론 그 통계 샘플이 너무 작은 것 아닌가 싶기도 하는 내용들도 있지만, 그래도 어딘가, 호텔의 안마당에 있을 때는 머리 위를 조심해야 한다는 팁을 얻기도 하였으니까...
“...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전철에 뛰어드는 시간은 오전 10시에서 정오 사이고, 뛰어드는 사람의 수는 계절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40대 남자가 가장 많이 뛰어든다. 이런 특징은 전 세계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 이런 팁도 괜찮다. 혹시 10시에서 정오 사이, 허름한 40대 남자가 승강장 끄트머리에서 서성댄다면 예의주시할 일이다.
“... 어이없는 익사 사고가 아니라 자살 사건을 살펴보자면 남자는 하천, 호수, 늪에 빠지는 걸 선호하고, 여자는 바다와 욕조를 두고 갈등하기 일쑤란다. 수영장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
- 이런 이유가 아닐까. 자살을 하기 위해 돈을 내고 들어갈 수는 없다는...
“... 개나 소나 번개에 맞아죽을 수는 없다. 지구상에서 발생하는 뇌우는 매년 1,000명 정도의 희생자를 낸다... 미국의 산림 관리인 로이 설리번의 사례도 놀랍다. 그는 35년 동안 7번이나 번개를 맞았지만 매번 살아남았다. 이 행운의 사나이는 1983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랑의 상처 때문이었다고 한다(《기네스북》2003년 판).
- 어디에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하다. 교훈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지만 이 사례를 보자 떠오르는 것은, 음... 죽어야 할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데스티네이션의 법칙이랄까...
“... 자살이 독보적인 문화 영역으로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다. 서점에 자살 전문 섹션이 생길지 또 누가 알겠나?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런 류의 책은 절대 생을 마감하라고 권하지 않을 테니까. ‘자살하면 항상 후회한다.’ 몽테를랑도 『작가수첩 Carnets』에 그렇게 적지 않았던가. 1972년 자살하기 전에.”
- 여하튼 이 글을 보는 모든 이들이 자살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 참고로 나는 글의 서두에서 밝힌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이용하여 자살을 하려고 (사랑의 상처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 사랑의 상처가 문제다.) 시도를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약국에서 구입한 3만원어치의 수면유도제를 먹고 아파트 옥상에 올라 마주친 것은 난간을 따라 쭉 둘러쳐진 낙뢰 방지용 철사들이었고 결국 그 아파트 12층의 내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빨리 밥 먹으라는 어머니의 외침에 이른 아침 깨어났다. 그렇게 해서 얻은 교훈은 3만원어치의 수면 유도제는 잠도 충분히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특이 체질이었을 수도 있지만...
에두아르 로네 / 권지현 역 / 완벽한 죽음의 나쁜 예 : 법의학이 밝혀낸 엉뚱하고 기막힌 살인과 자살 (Vian야 Froide Cornichons) / 궁리 / 177쪽 / 2010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