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보다는 낙오와 중단을 통하여 배우는 이 엄청난 트레일 코스에 숨겨진
*2012년 3월 18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잘 먹지 않던 음식이라도 막상 이제부터는 절대 그것을 먹을 수 없어, 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아마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어지게 될 것이다. 비슷하게 얼마전 눈에 생긴 문제로 인하여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다음부터 굉장히 운전을 하고 싶어졌고 (한 쪽 눈을 안대로 가리면 복시가 사라지니 운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여 서너번 시도를 했는데 결국 주차장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렇게 운전을 해서 어딘가로 놀러갈 수 없게 되자 자꾸 어딘가로 놀러 가고 싶어져버렸다.
그런 마음을 달래보고자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라는 책을 집어 들었다. 미국의 동부 14개 주에 걸쳐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책의 표지에는 3천 360킬로미터라고 나와 있는데, 아마도 책이 출판된 이후 새롭게 트레일이 추가되었거나 재는 방식에 의해 그 길이가 변경된 것이라 여겨지는데, 어쨌든 대략...) 3천520킬로미터라는 길이를 자랑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보통 5개월 정도가 소요되고 5백만 번의 걸음이 필요하다는 이 트레일 여행기라고 하니 구미가 확 당겼다. 일종의 대리만족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게다가 빌 브라이슨은 요즘 아내가 잔뜩 꽂혀 있는 작가로, 어떻게 이런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라고 놀라게 되는 잡학다식 백과사전파 교양의 보고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니 그런 인물의 여행기라면, 하는 기대감도 가득했다.
“감염될 만한 질병 역시 적지 않다. 이스턴에콴뇌염, 로키산염, 브루셀라병, 라임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서턴에콴뇌염은 모기에게 한 번만 물려도 감염될 수 있는데, 뇌와 중앙신경계를 공격한다. 운이 좋으면 목에 턱받이를 하고 휠체어에 앉아 여생을 보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바로 사망이다. 치료약도 없다... 라임병처럼 눈길을 끄는 것도 없다. 조그만 사슴 진드기에 물려 감염되는데, 양성 반응이 나와 증세를 알게 될 때까지 수년간 몸 속에 잠복한다. - 모든 질병을 앓아 보고픈 사람에게 딱 알맞은 병이다. 두통, 피로, 오한, 호흡 곤란, 현기증, 극단적 통증, 불규칙한 심장 박동, 안면 마비, 근육 경련, 심각한 정신 장애, 신체 조절 기능 상실, 그리고 놀랄 만한 일은 못 되지만 만성적인 우울증을 동반한다.”
책의 초반, 아직 트레일을 시작하기도 전인데 이 작가의 센스가 마음에 들기 시작하였다. (사실 뒤늦게 동아일보사라는 출판사 이름을 확인하고는, 재미만 없어봐라 바로 책을 덮고 말테다, 라고 각오를 다졌는데 브라이슨이 그런 내 마음을 확 돌려 놓았다.) 그 긴긴 여행에 나서기에 앞서 트레일 중에 걸릴 수 있는 병증들 그리고 곰이나 뱀과 같은 동물들의 위험, 더 나아가 트레일 코스에서 살해를 당한 인물들에 대한 기록까지 훑어보는 작가를 보자니 베시시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십여년 전 인도 여행을 떠나겠다는 내게 한 여자 후배가 해준 얘기도 떠올랐다. 그녀는 나의 여행이 잘 되기를 바란다며 짧은 이야기를 해줬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인도 여행에 나선 한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가 집으로 돌아오지를 않더래. 그 가족은 그녀를 찾아서 인도로 향했고, 인도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대. 그러기를 여러 해, 드디어 어느 시골 마을에서 그녀라고 여겨지는 여자를 한 서커스 포스터에서 발건했대. 그녀는 사실 서커스단에게 붙잡혀 팔과 다리가 잘린 채로 관객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있었다는 거야.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건 그렇고 인도 여행 잘 다녀와... 뭐 그 후배 탓은 아니었지만 난 인도 여행을 포기하였다. 그렇지만 이 작가 브라이슨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등반 용품 매장의 짜증나기 이를 데 없는 종업원과의 언쟁은 보너스) 1996년 3월 9일 드디어 트레일을 시작한다. 그것도 혼자도 아니로 어린 시절의 친구(알콜중독자였다가 겨우 빠져나왔고, 저자보다 몸집은 훨씬 큰, 그저 유보험료를 안 내서 차가 압류되는 바람에 요즘 매일 걸어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장점으로 가지고 있는 친구)까지 대동하고 말이다.
사실 트레일이 시작되고 나면 오히려 그 흥분은 많이 가라앉는다. 트레일을 시작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 흥미진진하여 트레일이 시작되고 나서는 오히려 차분히 가라앉는다고나 할까. 이 무시무시한 트레일 코스는 (한창 유행인 올레길이 지상으로부터 천 킬로미터쯤 위에 있고, 그것이 계속되는 오르막과 내리막 혹은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길을 5개월 동안 걸어야 한다고 생각해보시라...) 그야말로 죽어라고 걷고, 대피소가 나오면 그곳에서 자고, 틈틈이 먹고 또다시 걷는 과정으로만 (아주 잠깐씩 멋진 풍광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이루어져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중간중간 이 박학다식 저자가 뱉어내는 길고 긴 상식들은 그마저 여행기가 줄 수 있는 흥분감에 찬물을 끼얹어 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고 꽤 흡족해했던 것은, 이 초보 등반객인 두 사람이 모든 역경을 이기고 이 가공할 트레일 코스를 무사히 끝마쳐서가 아니다. 사실 두 사람은 이 트레일을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그들은 1천 392킬로미터, 이 트레일 코스의 39.5%만을 완주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산 아래로 내려와야 했다. 그렇게 산 아래 내려와서 묵게 된 민박집의 할머니는 그들을 향해 이렇게 야유인지, 위로인지 모를 말을 했다.
“전에 포틀랜드에서 온 한 사람이 78세 생일을 자축하기 위해 캐터딘까지 올라갔다는 얘기를 신문에서 읽었어...”
아마도 자신이 세운 목표를 완수하지 못한 건장한 중년의 사내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거개는 야유로 받아들였으리라. 그러니까 78세 생일 기념으로 저기를 오른 사람도 있는데 너희는 뭐니,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의 커츠는 (그러니까 트레일 포기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던 인물이다) 이렇게 말한다. “나도 그때까지는 한 번 다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말에 할머니도 맞장구를 쳐준다. “그럼, 너희들이 준비될 때까지 산은 그대로 있을 거야, 이 녀석들아.”
오호...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서로를 관통하기도 한다. 야유하듯 위로를 하는 노파나 머쓱함 속에서도 낙관적인 마음을 잃지 않는 사내들의 대화가 정겹게 느껴졌다. 동시에 그들의 어쩔 수 없었던 트레일 중단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찾아온 병증에 의하여 잔뜩 불편해진 나의 현재의 삶을 투영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다시 한 번 (그것이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리라... (리뷰를 쓰는 동안 마침 열 두시가 넘었고, 생일이 되었다. 다른 방에서 책을 읽던 아내가 불쑥 얼굴을 내밀더니 생일 축하해요, 이제 얼른 건강해져야죠, 라고 말한다. 살짝 울컥해지려고 하는데, 곧이어 다시 조용히 다른 방으로 돌아간다. 참 쿨한 아내다, 책 속에 나오는 저자의 아내가 저런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빌 브라이슨 / 홍은택 역 / 나를 부르는 숲 (A Walk In The Woods) / 동아일보사 / 423쪽 / 2011, 2002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