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함에서 나온 말이 아니라 그야말로 잡문들로 가득한...
음... 무라카미 하루키 개인적으로야 이렇게 오랜 시절 어딘가에 처박혀 있는지도 몰랐던 글 그리고 어떤 서문이나 해설 그리고 추천의 글 등으로 작성했던 글 등을 모아서 하나의 책으로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일반 독자에게는 글쎄... 아, 이와 함께 무라카미 하루키 연구자 등에게도 유효한 책이라고 우겨볼 수는 있겠다. 이러한 잡문 속에서 그의 어떤 정수로 향하는 작은 틈바구니를 발견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나에게는 아니었지만...
스스로도 산문집이라거나 아니면 다른 제목을 정하지 못하고 그저 편집의 과정에서 불렀던 잡문집, 이라는 명칭을 그저 책의 제목으로 삼았다고 토로하고 있지만 책에 실린 글들은 정말 잡문들이라고 봐야 하겠다. 다른 사람의 책에 붙인 서문이나 해설, 각종 상의 시상식에서 자신이 한 수상소감, 하루키가 좋아하는 음악에 관하여 작성한 작은 칼럼이나 해설, 자신의 소설 『언더그라운드』와 관련한 몇 개의 글, 번역가이기도 한 하루키가 자신의 번역서에 붙인 글을 비롯해 잡다한 인터뷰까지 중구난방 실려 있는 책이다. 게다가 꽤 두꺼운데, 그래서 아래와 같은 재미있는 대목들이 실려 있지 않았다면 끝까지 읽어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늘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이번 <잡문집>의 일러스트를 그려준 작가이기도 한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딸의 결혼식에 하루키가 축사로 보낸 글귀인데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라는 대목에서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와 함께 1995년 옴진리교의 지하철 독가스 살포 사건과 관련하여 소설까지 쓴 바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급을 읽을 때에는, 하루키가 바라본 옴진리교 사건 당시의 일본의 사회상이 바로 지금 우리의 사회상과 너무 흡사하여 두려움의 소름이 돋기도 한다.
“... '사회의 경제적 발전이 그대로 개인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 실감한 최초 세대가 이 시점에 등장한 것이다. 설령 수입이 두 배가 되었다 해도 땅값은 그보다 훨씬 더 뛰어올라 사람들은 직장 가까이에서 제대로 된 집을 살 수 없었다. 그들은 훨씬 먼 교외에 집을 마련하고, 매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씩 살인적인 만원전차에 시달리며 출퇴근하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시간 외 근무까지 하며 소중한 건강과 시간을 소모했다... 직장내 경쟁은 혹독해서 유급휴가도 변변히 받을 수 없었다. 밤늦게 귀가하면 아이들은 이미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주말과 휴일은 주로 피로를 풀기 위한 휴식으로 소진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을만한 글들로 가득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금까지 수상한 상의 목록, 혹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음악 취향이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고 주로 번역하는 미국 작가가 궁금하다면 모를까 굳이 읽어야 할가치를 지닌 책은 아니다. 다만 이런저런 이유에서 소유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면 소유할만한 책일 수는 있겠다.
무라카미 하루키 / 이영미 역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村上春樹 雜文集) / 비채 / 501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