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하는 뻔뻔한 성담론, 토하거나 묘하게 설득되거나...
인간적으로 흥미만점인 작가 릴리 프랭키의 에세이집이다. 순박한 감수성으로 무장한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라는 소설의 작가라는 사실은 잠시 잊는 것이 좋겠다. 이 작가가 보여주는 전방위적인 서브컬처에로의 몰두와 대중예술 멀티플레이로서의 기질이 예의 소설에서는 잘 단도리가 되고 있었다면, 이번 산문집에서는 (사실 소설 <도쿄타워 :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는 이 산문집 출간 후 칠년 뒤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그 사이 철이 든 것일 수도 있겠다...) 전혀 단속되지 않은 상태로 폭발하고 있다고나 할까...
“내 친구 중에 로즈라는 남자가 있다. 십여 년 전에는 고쿠분지 근처에서 <릴리&로즈>라고 하면 그 이름만 들어도 모든 여자가 조개를 따다닥 클랙슨처럼 울리면서 기절을 하고, 잠깐이나마 그 얼굴을 알현하고자 오우메 도로에 정체 현상을 일으킬 만큼 수많은 걸들이 밀려들던 섹시 콤비였다...”
그러니까 대략 위와 같은 문장 구사에 웩, 토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할 판이다. 대략 작가가 서른 여섯이라는 아주 팔팔한 나이, 그러니까 성적으로 고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기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육체적으로도 여유가 조금 있고, 또한 어느 정도의 쇠락을 상쇄할만한 여러 주변 여건이 조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는 (작가의 주변에는 에로 관련한 종사자가 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이니 그럴만도 하지, 하면서 참고 보아야 한다.
“육체는 늙을수록 추하지만 정신은 늙은 쪽이 아름답다... 육체는 가능하면 일 년이라도 젊어지고 싶지만 감성이 하루라도 젊어지는 건 견디기 힘들다... 반 년 전에 내가 했던 말들은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창피하다. 젊음이란 육체적으로는 기쁜 것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창피한 것이다.”
그러니까 책 제목에는 ‘미녀’와 ‘야구’가 들어가 있는데도, ‘야구’는 학창시절의 막가파 야구부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오는 것에 비하여 ‘미녀’에 대한 이야기는 차고 넘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릴리 프랭키라는 작가가 그리 녹녹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니 그렇게 페니스와 조개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간혹 저기 멀리 있는 해탈의 경지를 항하여 조금씩 전진해 간다고 해야 할까...
“인간은 근거 없는 자신감과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야심에 불타는 모습이 가장 추하다. 요즘 잘 팔리는 책 중에는 마구잡이로 긍정적인 사고를 추천하는 것이 많지만 이토록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사상도 없다... 어느 누구에게나 개성과 가능성이 있다고 떠들면서도 그곳에 등장하는 ‘성공’이라는 건 항상 한 가지 세계뿐이다. 사람이 백 명이면 백 가지의 ‘성공’이 있고, 그것이 반드시 빛이 잘 드는 자리, 화려한 자리일 리는 없는 것이다.”
이와 함께 대중예술 멀티플레이어인 이들의 공통점이기도 한 것인지 (책을 읽으면서 기타노 다케시의 산문집이 종종 오버랩 되었다), 상식으로 통하는 우리 사회의 일반화된 어떤 경향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도 작가의 글이 보여주는 특징이다. 그러니 작가는 자신이 만난 SM 전문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읽다보면 토가 나올 정도의 하드고어한 행태를 아무렇지 않게 서술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아래와 같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진짜 프로는 무엇보다 삶의 방식이 스마트합니다. 앞에 말한 바보들과는 달리, 왜곡된 존재 증명을 갖지 않고, 그야말로 말끔합니다.”
아마도 이 작가의 글에 대하여 묘하게 설득력이 있다고 말하는 축과 쓰레기 서브컬처에 경도된 마초적 글쓰기일 뿐이라고 말하는 축이 있을 것이라고 혼자 상상해 본다. (아, 그러고보니 최근 불거진 정봉주 석방을 위한 비키니 인증샷 논란이 은근슬쩍 오버랩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축이냐고? 음, 그저 서브컬처에 대한 애정은 무한한데 비하여, 마초 스타일의 글을 쓰기에는 아직 수줍음이 많다, 라고 해야 할까...
릴리 프랭키 / 양윤옥 역 / 미녀와 야구 (美女と野球) / 중앙books / 269쪽 / 2011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