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까닭인지 자꾸 기억에 남는, 그러나...
요시다 슈이치의 이번 책은 제목부터 참 직관적이다. 하늘 모험... 작가가 2008년 가을부터 2010년 여름까지, 일본의 항공사인 ANA 그룹에서 발행하는 <날개의 왕국>이라는 (잡지 제목도 참 직관적이구나) 기내 잡지에 실었던 글들의 모음집인데, 그러니 그 채의 제목도 하늘 모험, 쯤으로 딱 정한 것이다. 그렇게 이 하늘 모험집에는 일반적인 단편 소설의 1/3 혹은 1/4 정도의 분량인 장편소설 12편 그리고 11편의 수필이 담겨져 있다.
물론 제목이 하늘 모험이라고 해서 딱히 익사이팅한 내용이 들어 있지는 않다. 비행기 안에서 주로 읽히리라는 컨셉을 가진 잡지에 싣는 글인만큼 지금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곳 보다는 지금 자신이 몸 담고 있는 곳과는 다른 곳을 주로 배경으로 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흥분으로 벌름거리는 가슴의 여행객을 진정시키기에 좋은 글들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아 참, 너희 어머니가 몇 살쯤 돌아가셨지? ... 쉰아홉 살... 맞아, 그랬지. 그럼... 그래, 우리랑 같은 나이야... 어머나, 정말 그러네.”
오래 된 친구들이 다시 만나서 나누는 이런 대화를 읽다보면 충분히 차분해 질 수 있을 터, 자칫 여행의 흥분으로 인하여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를 방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국의 땅으로부터 고국으로 복귀하는 사람들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제 곧 복귀해야 할 일상을 눈 앞에 두고 추스러지지 않는 감정을 다스리는 데도 이런 대화 정도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급성장하는 심천의 한 모퉁이를 입을 굳게 다문 채 청년과 같이 몹시도 천천히 걸었던 그 3분이 지금은 무슨 까닭인지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되었다.”
실려 있는 글들의 내용에는 여행을 하는 동안에 대한의 기록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주로 위와 같이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기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하였으나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엉뚱하게도 자꾸 그 부분만 기억이 나는 지점, 때로는 메인 디쉬보다 거기에 곁들여 나온 후식이 요시다 슈이치의 글에서는 더욱 주목받는 셈이다.
“어느 마을에서 전기 공사 이야기가 나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전기를 설치하면 학이 오지 않게 된다. 마을사람들이 내놓은 대답은 ‘전기는 필요 없다’는 결론이었다... 선택이라는 행위는 참으로 윤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택한 그 무언가에서 그 사람의 풍요로움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히려 그러한 작은 지점들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욱 풍부해지는 법이니, 저자가 방문한 또 다른 나라 부탄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더욱 안타깝다. 마을사람들이 그렇게 필요 없다, 고 외치는데도 바위를 계속 폭발시키며, 자신들이 뿌리 내려 살고 있는 터전에 대한 선택의 의지를 어떻게든 꺾으려는, 부질없는 안보의 논리와 발전의 논리는 도대체 얼마나 더 우리의 삶을 각박하고 빈곤한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인지...
요시다 슈이치 / 이영미 역 / 하늘 모험 (空の冒険) / 은행나무 / 235쪽 / 2012 (2010)
ps. 책을 다 읽고 난감해 하는 중이다. 블로그의 카테고리를 해외소설, 여러산문 등으로 나눠 놓았는데, 이 책에 대한 리뷰를 어디로 넣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확 양쪽에 다 넣어버릴까보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실려 있는 각 소설의 분량이나 메시지의 행색 등을 고려해서 소설보다는 산문 쪽으로 넣기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