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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라는 금융자본과 신자유주의의 대항마..

by 우주에부는바람

부제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사회학자이며 기아문제와 관련한 연구자이기도 한 저자가 자신의 아이에게 들려주는 형태로 집필하고 있는, 현존하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당대의 굶주림의 구조를 밝혀 보고자 작성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굶주림으로부터 어느 정도 탈피한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나, 바로 그 대한민국도 불과 6,70년 전만 하여도 보릿고개라는 극단적인 기아를 주기적으로 겪어야 했으니 아주 남의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겠다.


“...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 Food and Agricultrue Organization)는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 가고 있으며,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7분의 1에 이르는 8억 5,000만 명이 심각한 만성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런 기아의 상태가 문제인 것은 그것이 피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이런저런 구조의 문제를 파헤치기에 앞서 그저 순리적으로 생각하여도, 어느 한 쪽에서는 음식물의 섭취의 과잉으로 인한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반면 (실제로 FAO의 평가에 따르자면 1984년 기준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농업 생산력을 가지고 있고 한다), 다른 한 쪽에서는 기아에 허덕이다 못하여 난민 캠프를 향하여 허기진 몸으로 며칠을 걷고, 그렇게 당도한 후에도 적절한 구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는 사실이 문제인 것이다.


“... 어떤 선별작업이었느냐고? 긴 여정에서 살아남아 아고르다드 난민 캠프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대개 특별한 영양섭취와 집중치료를 필요로 했어. 하지만 식량이나 의약품은 한정되어 있어서, 간호사들은 누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순간의 상태로 보아 누구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해야 했어...”


그리고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기아의 문제가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곳은 바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제외한) 아프리카 대륙이다. (실질적인 기아 인구로만 치자면 아시아의 기아 인구가 더 많지만) 이들 아프리카에는 (아마도 전지구적인 환경 오염으로 인한 이상 기후의 영향일) 환경적 재난과 함께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재정’, ‘기생적인 관료들’이라는 다양한 문제들이 수많은 주민들을 기아의 상태로 내몰고 있으며, 동시에 기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을 방해하고 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문제를 부르키나파소의 실패한 혁명가였던 토마스 상카라의 예로써 설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


FAO의 구분법에 의하면 기아에는 돌발적인 경제적 위기로 인해 발생하는 ‘경제적 위기’와 장기간에 걸친 식량 공급의 문제로 발생하는 ‘구조적 기아’가 있는데 저자는 이중 ‘구조적 기아’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시적인 위기로서의 기아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패러다임이 조장하고 있는 기아라는 문제를 저자는 다룬다. 그렇게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문제를 차근차근 따지다보면, 자연스럽게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패러다임이 지니고 있는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 신자유주의 원리는 자본의 흐름이 완전히 자유로워지고 그 유동성이 완전하게 용인되면 이윤이 가장 많은 쪽으로 자본이 집중된다는 것, 즉 자유로운 세계시장에 맡기면 진정으로 공평한 사회가 실현된다는 것이다... 무엇이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 무엇이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인가를 따지지 않은 채, 그저 ‘경제 합리성’이라는 구호만이 난무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자본의 가치가 63배나 많은 사회 (1999년 기준), 세계의 부호 225명의 총 자산이 전세계 가난한 사람 25억명의 연간 수입과 맞먹는 사회, 세계 15대 부호의 총 자산이 남아프리카를 제외한 대부분 아프리카 나라들의 국내총생산보다 많은 사회, 그리고 지구에서 가난한 나라 120개국의 수출 총액이 100대 글로벌 기업들 각각의 매출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회를 문제가 없는 사회라고 부를 수가 있겠는가.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금융자본의 득세와 신자유주의라는 가치 체계에서 문제 해결의 방도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저자는 ‘인도적 지원의 효율화’, ‘원조보다는 개혁이 먼저’, ‘인프라 정비’라는 해결책을 제시함과 동시에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만이 희망이라고 했던가. 되돌릴 수 없으니 어쨌든 계속 나아가야 한다, 라고 말하며 현재도 문제의 확대 재생산이라는 방향을 수정하지 못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이미 십여 년 전 맹렬히 비판하였던 이러한 책을 통하여 그나마 우리는 희망을 찾는 수밖에 없다.



장 지글러 / 유영미 역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유엔 식량특별조사관이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 (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s) / 갈라파고스 / 201쪽 / 2007 (199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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