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속담과 미제국주의 비판이라는 오묘한 결합...
‘20년 동안 매일 7권의 독서’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학다식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여지는 유머, 여기에 러시아어 통역사로 일하면서 얻은 통찰력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가진 에세이스트 요네하라 마리 여사의 책이다. 이미 2006년 고인이 되었지만 (이 책은 일본에서는 작가가 죽은 그 해에 출간되었으며, 2003년에서 2006년까지 일본의 잡지 ‘호오세키’에 기고한 글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2012년 출간) 이렇게 뒤늦게나마 또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니 기쁘다.
“이라크 침략은 9·11 이전, 아니 부시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계획돼 있었던 것 아닐까. 부시 주니어는 바로 그 계획을 실현하는 데 이상적인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악마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성경도 인용한다’고 하지 않는가.” (p.41)
책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세계 각국의 속담을 비교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또한 각각의 글에는 일정한 형식 패턴이 있는데, 처음에는 어떤 일화를 적고(대부분의 일화가 외설적이면서도 무지하게 웃기다. 외워두면 써먹을 일이 있을 것이다.), 그 다음에 이 일화와 연관성이 있는 각 문화권의 속담을 설명하는 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가장 중요한데, 그러한 속담의 뒤에는 반드시라고 할만큼 당시 한창 이라크 전쟁 수행중이었던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과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부시의 꼬붕 노릇을 자처하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비판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중동산 석유가 미국 소비량에서 점하는 비율은 겨우 18퍼센트다... 즉, 유럽이나 일본만큼 중동 석유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미국이 중동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집착하는 것은 바로 세계의 돈과 자원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말하자면 군사적·정치적으로 중동을 지배하여 다른 두 개의 거대 경제권인 유럽과 일본을 미국의 정치 인질로 붙들어두려는 것이다.” (p.87)
그 분석들이 또 워낙 정확하고 그 표현에 거리낌이 없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물론 그러다보니 책의 주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속담의 비교에는 눈이 덜 간다. 그것은 그것대로 나중에 살펴보면 되겠지 뭐...) 게다가 미국의 꼬붕 노릇으로 치자면 일본에 절대 뒤지지 않으니,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우리 나라의 처신이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식견까지 저절로 생긴다.
“... 북한이 핵탄두를 보유했다고 슬쩍슬쩍 드러내 보여도 미국 정부의 대응은 이라크에 비해 훨씬 더 관용적이다. 아마 미사일방어체제를 일본과 한국에 팔아먹는 데 아주 좋은 구실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한국과 통일이라도 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존재 가치는 날아가버릴 것이다.” (p.154)
이처럼 이번 책은 유머와 비교문화학과 세계정세비평이 뒤범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내용들이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는 것 또한 바로 작가의 능력일 터... 이처럼 촌철살인의 기상과 동시에 허허실실의 여유를 어떻게 얻었는지를 알려주는 부분도 있다. 작가가 아버지와 나눈 대화인데, 아마도 애연가와 애주가였던 것으로 추측되는 작가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자면, 피는 물보다 진하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달까...
『“저, 아버지. 왜 그토록 담배를 피우세요? 이젠 건강도 좀 생각하셔야죠.”
“그건 말이야, 아버지 머리가 너무 좋아 그런 거야... 뇌세포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주변에 맞추려면 브레이크를 걸어줘야 해. 온종일 그냥 놔두면 지쳐버려. 한데 담배를 피우면 뇌세포 움직임이 완화돼 아주 좋아져. 그러니 담배를 끊을 까닭이 없는 거야.”
아버지는 다시 없는 애주가이기도 했다. 그리고 음주를 정당화하는 핑계도 확실했다.
“... ‘알코올을 너무 섭취하면 뇌세포를 파괴한다. 그러니 음주는 적당히 해라’ 따위의 그럴듯한 논리를 늘어놓는 자들이 있는데, 물소 무리와 마찬가지로 알코올 때문에 파괴되는 건 가장 약하고 느린 뇌세포야. 말하자면, 그래서 매일 술을 마시면 느린 뇌세포를 파괴해주니까 결과적으로 뇌수 전체의 움직임은 빠르고 효과적으로 되는 거야.”
“아버지, 머리 회전이 너무 빠르면 힘들잖아.”
“그러니까 그걸 담배로 조절하는 거잖아.”
“…….”』 (pp.73~74)
요네하라 마리 / 한승동 역 / 속담 인류학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속담으로 세상 읽기 / 마음산책 / 311쪽 / 2012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