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의 역사를 담고 있는 그림들을 보고 읽고 해석하는 즐거움을 전파하라.
폭넓은 지식으로 미술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작가이다. 책날개에 소개되어 있는 지은 책을 살펴보니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과 <화가와 모델> 두 권을 읽은 것으로 기억되는데, 두 권의 책 모두 나쁘지 않았다. 딱히 미술에 대하여 일정 정도의 지식이 없더라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문학적인 소양을 습득하는 데에도 소흘하지 않는 안정적인 글들이었다.
“미술은 시대의 자식이다. 예술은 시대를 초월한다고 하나 그것은 예술이 주는 감동의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지, 작품에 담긴 사고와 의식, 스타일은 시대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미술은 작품을 탄생시킨 시대의 모순과 한계를 어떤 양태로든 전달하게 된다.”
이번 책은 주로 서양의 역사화들을 주요 소재로 하여 씌어지고 있다. 그러니까 당대의 역사적 인물에 대한 그림 등을 통하여 그 시대를 읽어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작성된 글들이다. (그러니까 그러한 주제를 가지고 잡지에 게재된 글들을 다시 모아 놓은 글들이다.) 예를 들어 첫 번째 챕터인 알렉산드로스 편에서는 알렉산드로스가 그려진 그림들을 통하여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이해를 돕고 동시에, 그 챕터의 마지막에 마케도니아의 역사를 정리하는 글을 함께 실음으로써 그 시대를 정리하는 식이다.
“인생이라는 이 소극笑劇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충분히 잘한 걸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역사에 골똘하여 집중할 필요는 없다. 더불어 서양사를 통사적으로 살펴야 할 필요도 없다. 역사적 인물과 이들이 포함되어 있는 역사화를 풍성한 설명과 함께 확인할 수 있고, 그러한 역사화의 배경이 되는 역사 자체를 단편적으로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고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 세상에서 가장 존엄한 자로 불리운 황제가 죽으면서 남겼다는 위의 글귀 같은 것을 읽는 재미 정도로도 충분한 것이다.
“창조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자질 가운데 하나가 직관력이다. 직간력은 창의력과 상상력, 통찰력의 뿌리가 되어주는 힘이다. 뛰어난 창조자는 남다른 직관력을 지니고 있다. 꼭 위대한 예술가와 과학자만이 이런 직관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 스포츠, 어느 분야에서든 위대한 성취를 이룬 사람은 대부분 뛰어난 직관력을 지니고 있다...”
그렇게 책에서는 알렉산드로스와 아우구스투스를 비롯해 루이 14세, 나폴레옹, 이반 뇌제, 스탈린, 클레오파트라, 퐁파두르 부인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비롯하여 전염병, 왕들의 처형, 일차세계대전,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들 그리고 매춘과 오달리스크, 카리스마, 그리스의 지성, 다비드의 역사화, 네이처리즘이라는 어떤 역사적 현상이나 주제를 다루고 있다.
“중간층의 창부들은 신분상 노예가 아니었으므로 좀더 자유롭고 능동적인 방식으로 활동했다. 외국이 거주자나 가난한 과부, 자유 신분을 획득한 포르나이(포르나이는 포주에게 예속된 가장 낮은 계층의 창부)들이 구성의 대부분을 이뤘다. 이들은 ‘홍보’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매우 요란하게 꾸미고 다녔으며, 심지어 샌들에 ‘날 따라와요’라는 문구를 파 넣어 걸을 때마다 땅바닥에 이 홍보 문구가 새겨지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재미있는 것은 위와 같이 은근히 끼어드는 미시적인 가십거리들이다. 매춘을 다룬 챕터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리스의 창부의 저 창의적인 홍보 전략을 볼라치면, 큰 가슴의 일본 AV 배우들을 인쇄한 찌라시의 범람은 얼마나 치졸한가, 하는 남다른 역사의식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한눈에 역사를 통찰’ 할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지만, 읽는 내내 즐거운 책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단언할 수도 있겠다.
이주헌 / 역사의 미술관 : 그림, 한눈에 역사를 통찰하다 / 문학동네 / 365쪽 / 2011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