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좌하여 읽지 못한 허투루 독자는 그저 수박 겉 핥듯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일반 대중의 사랑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밑밥과도 같았던 첫 번째 책을 낸 이후 둘째 권에서부터는 문화를 대하는 우리들의 안목을 키우는데 역할을 해보고자 하였다면 이제 세 번째 책에 접어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우리 문화유산이 가지고 있는 ‘미학의 성격을 드러나게 하는 방법’, 결국은 ‘문화유산의 생산과 소비자로서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르게 되었다고 작가는 이야기 한다. (사실 그러다보니 일반적인 독자의 입장에서 갖는 읽는 재미라는 것은 조금 떨어진다고나... ^^;;)
“... 서양 중세의 문화는 기독교문화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했고 기독교 건축과 조각이 발달했지요. 그런데 오늘날 어느 누구도 유럽의 중세문화를 이스라엘의 아류라고 하지 않아요. 필요하면 얼마든지 갖다 쓰는 것이지요. 다만 맹목적 모방이었냐, 주체적 수용을 통한 재창조였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그렇게 이번 책에서는 백제의 미학, 경주 불국사의 이상미(理想美), 안동 문화권의 양반문화의 미학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는 우리 문화에 대한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국수적인 방향으로 빠져들지 않아서 편안하다. 그렇게 있는 사실 그대로를 토대로 하여 우리가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또한 그 인정 안에서도 충분히 자긍심을 가져 마땅한 우리의 문화, 그 속의 미학에 대하여 탐구하는 정도 正道를 걷는다.
“한국사회에는 불교가 갖고 있는 도덕적 순수성과 유교가 지닌 공동체 지향적 윤리의 전통이 있습니다. 이것을 결합시킨다면 한국사회는 새로운 문화적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학자들은 왜 이런 것에 대해 좀더 깊이 있고 진지한 연구작업을 진행하지 않고 (하버마스를 연구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하버마스의 인터뷰 기사 중
그러한 자긍심은 또한 반성으로도 이어지는데 90년대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철학자 하버마스의 인터뷰 기사에서 그 일단을 발견하기도 한다. 우리의 것에 대한 천착 없이 나아 보이는 외부의 것에 눈 돌리는 우리들에 대해 오히려 그 외부자가 보내는 조언이 오히려 의미심장함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무거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안동 문화에 대한 작가의 글들 중, 제사 문화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은 구라쟁이로서의 작가의 면모가 아주 재미있게 드러나 있다. 제사를 하는 중간중간 밀고 당기기가 진행되는 (그 서열 따지기 좋아하는 안동 분들의) 이들 사이의 주고 받는 대화, 그리고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는 이들 사이의 작은 알력과 굴복 등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저절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 언젠가 나는 답사엔 초급, 중급, 고급이 있다고 했는데 불국사는 당연히 초급 코스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초급자가 초급 코스를, 중급자가 중급 코스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초급자가 오히려 중급 코스를 더 가고 싶어하고, 중급자는 고급 코스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그런데 고급자가 되어야 비로소 초급 코스의 진가를 알고 거기를 즐겨 찾게 된다. 그런 진보와 순환의 과정이 인생유전의 한 법칙이고 묘미인지도 모른다. 결국 불국사는 답사의 시작이자 마지막인 것이다.”
여하튼 이렇게 백제와 안동과 불국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작가의 여정을 지켜보는 일은 여전히 재미있다. 좌정하고 앉아서 읽어줄 것을 작가가 요구하였지만 그러하지 못하였다. 그러니 보다 진지하게 읽어주기를 바랐던 작가의 마음에는 작은 빚을 지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하지만 이렇게 돌고 돌다보면 고급의 답사가 초급의 답사로도 이어지는 법도 있듯이, 수박 겉을 핥고 또 핥다보면 수박의 속엣맛을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은 또 이 허투루 독자의 변명이 될 수도 있겠다.
유홍준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3 : 말하지 않는 것과의 대화 / 창비 / 434쪽 / 1997 (2011)